이만 이천 원짜리 로또

흔들리는 도서관, 내가 버스를 좋아하는 이유

by 그설미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버스가 자그마치 넉 대다. 그중에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두 대나 된다. 두 대 모두 배차 간격이 긴 버스이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한 대는 집에 빨리 갈 수 있지만 환승을 해야 하고 한 대는 갈아타지 않는 대신 시간이 배로 걸린다. 시간 절약을 돈으로 따진다면, 오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랄까. 로또는 오천 원짜리 당첨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바로 와 준 버스가 반갑다.

두 대의 버스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몇 번의 환승으로라도 집까지 빨리 가는 버스를 탔을 텐데, 오늘은 종종대고 싶지 않다. 저녁 어스름과 가방 안의 시집 한 권이 느리게 돌아가는 버스 쪽으로 등을 밀었다.

차에 올라 뒤편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시집을 꺼냈다. 《희고 맑은 무늬가 된 세계》. 시집 표지의 하얀 백자 그림이 버스 안의 불빛을 받아 빛났다. 창밖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새소리를 받아 적던 오후, 아담한 카페에 앉아 들었던 시인의 음성을 시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 같은 한낮에 오늘이 小雪이라고’ <명랑 소녀 이름은 마고>

올해 소설小雪은 며칠 뒤에 내린 장설壯雪로 대설이 되어버렸다. 그날 도서관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눈 쌓인 숲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왔다. 시끄러운 마음을 흰 눈에 뿌리고 싶었거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아무도 걷지 않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걸으면서는 소설 <삼포 가는 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휘청거리며 눈 쌓인 들판을 걷던 세 사람, 노래를 불렀던가. 어떤 기억은 반세기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선명하다. 그 하루도, 오늘 하루도 내겐 소설小說이었다. 몇 시간 전 지인들과 함께 바라본 카페 창밖의 나무, 함께 걸었던 길, 서로의 입과 입에서 풀어낸 저마다의 서사도 장편掌篇소설이었다. 몇 년 만의 해후를 위해 두 시간을 달려가 홀짝홀짝 마신 부드러운 국화차는 두고두고 남을 시 한 편이었다.

‘깨어 일어나보니 날짜가 바뀌었다/돔 안에 든 40분이 마치 무인섬에 갇힌 사나흘 같았다’ <CT>

끄덕끄덕 머리를 흔들며 내가 겪은 일을 떠올렸다. 어쩌다 구급차에 실려 갔던 날, 멀쩡해졌는데도 집에 가지 못했다. 김장 준비를 하다가 간 병원, 다듬다 만 총각무와 부엌 바닥에 펼쳐둔 쪽파와 마늘, 배추가 눈에 밟혔다. 하지만, 이상 없다는 건 내 생각일 뿐이어서 나흘 동안 병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여러 가지 검사도 모자라 새벽 두 시에도 일어나 머리 사진을 찍었다. 고요에 든 병동을 몽유병 환자처럼 링거병을 걸은 거치대를 끌며 터벅터벅 영상실로 내려갔다. 30분짜리 촬영이니 단단히 맘먹으라는 의사의 말에 원형의 통 안에서 온갖 생각을 하며 버텼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전국의 산을 누비고 온갖 나무와 꽃들을 불러냈던 그날을, 이 시 한 줄이 소환했다.


‘여기 머물 수 없는 내일의 내가/저기 또 그렇게 생생히/오늘을 점점 새기고 있다’

점점, 오늘 내 휴대전화기 화면에 찍힌 걸음 수는 사천 보다. 내가 발로 그린 오늘의 점묘화는 시작과 끝이 있다. 지금은 버스에 앉아 소묘하는 시간, 정류장 몇 개에 걸쳐 <夢遊몽유>라는 시 한 편을 읽으며 내일이면 날아갈지 모를 시간인 오늘을 그렸다.


내가 품은 온유, 네 시 삼십 분부터 사십 분 사이였다’ <온유>

오늘 내가 보낸 하루도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그중 가장 빛났던 온유는 버스 안에 있었던 다섯 시 육 분부터 여섯 시 삼십육 분까지다. 버스 타고 한 시간 반, 시집 한 권 읽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설 때마다, 시인이 넣지 않은 조연이 종종 들고 났다. 혼자이거나 여럿이거나, 조용하거나 부산스러운 조연들이 타고 내리는 동안 버스 안은 점점 나만의 아늑한 온유의 장소로 바뀌었다.

저녁 어스름에 탄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한 시집, 마지막 편을 읽고 창밖을 보니 가로등 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책등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표지 뒷장을 덮는데 내 손목쯤에 걸린 ‘만 이천 원’이라는 시집의 정가가 보였다. 두 대의 버스를 두고 오천 원과 만 원으로 비교했던 게 한 시간 반 전의 일이다. 그때 이 버스를 오천 원짜리 로또라고 여겼는데,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만 원짜리로 생각이 바뀌었다. 만 이천 원짜리 시집 한 권을 버스 안에서 다 읽었으니 버스비 1,450원을 빼도 이만한 횡재가 없다. 체로키족이 말하는 ‘다른 세상의 달’ 12월, 갑진년 한 해 마무리로 이만한 로또가 있을까 싶다.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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