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저런 사람, 그럴 수도 있지
기차 맨 앞 칸에 타보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기관실 바로 뒤, 첫 번째 자리다. 뒷자리에는 친구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둘이 앉았고 우리 바로 뒤 대각선 방향으로는 할머니와 손주가 앉았다. 그들의 대화 내용으로 뒤돌아보지 않아도 관계를 알 수 있다. 뒷자리에서는 기차를 타자마자 간식 꾸러미를 풀고 이야기보따리까지 푸느라 정신이 없다. 옆자리의 할머니는 손주 단속하느라 분주한데, 정작 시끄러운 건 할머니의 목소리와 헛기침 소리다. 이 상황이 뭔가 낯설지 않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탔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때도 맨 앞자리에 앉았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며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발표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역을 비롯하여 승강장 어디에도 마스크를 벗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 년 가까이 쓰다 보니 벗는 게 어색할 수도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뒷자리 손님 전화기 같았다. 벨이 서너 번 울려서야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큰 남자분이었다. 부산 가는 길이라는 소리가 우렁찼다. 우리도 몇 년 전까지 부산을 자주 갔다. 이젠 어머니가 울산에 계시니 부산 가는 길보다 울산 가는 길이 더 익숙해졌다.
통화를 마치기 무섭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앵무새처럼 앞의 통화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세 번째 통화가 시작되었다. 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로 보아 무음으로 바꿨거나 본인이 건 것 같았다. 그런데 목소리는 예의가 없었다. 바로 앞자리인 내게는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둘은 서로 잘 안 들릴 거로 생각하는 듯했다. 마치, 남편과 어머니가 통화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머니 귀가 어둡다고 소리를 높이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당신이 잘 안 들리니 크게 말한다. 아마 저분들도 서로 그렇게 생각하거나, 시끄러운 장소에 있거나 둘 중 하나였겠다. 통화가 길어지니 책 읽기에 집중이 안 되었다.
읽던 페이지 위로 아저씨의 목소리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 정도 목소리라면 맨 뒷자리까지도 들릴 것 같았다. 통화가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처럼 길게 이어지더니 이번엔 부산 가는 이유가 나왔다.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단다. ‘당숙’이라고 하니 아버지 형제다. 내게도 당숙이 다섯 분이나 계신다. 아버지는 위로 누님만 두 분인데 당숙들은 형제만 다섯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달리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니 다행이다. 그런데 당숙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저렇게 먼 길을 달려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통화하는 동안은 조금 참아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조용해져서 책을 다시 펼쳤는데 아까부터 같은 페이지에서 맴돌았다. 암막 커튼처럼 내려온 눈꺼풀에 져서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갑자기 알람처럼 울린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예의 그 뒷자리 남자분의 전화였다. 친구 같았다. 앞의 통화 내용이 반복되었다. 어느새 내가 ‘부산에 사시는 당숙이 돌아가셔서’라는 속말을 했다. 그의 친구들 이름이 대여섯을 지나 열에 가까울 무렵 보던 책을 가방에 넣었다. 챙겨 다니던 귀마개를 꺼내 양쪽 귀에 끼웠다. 그래도 바로 뒷자리라 소리가 귀마개를 통해 거칠 것 없이 들려왔다.
친구에게 부산에 가는데 다시 다른 지역에도 들러야 하고 사람 노릇 어렵다고 하소연이 늘어졌다. ‘그건 맞는 말이네.’ 또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사람 노릇 하러 가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이렇게 먼 길을 쉽게 나설까. 그의 통화 내용이 십 년 후를 내다보는 경제를 돌아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들의 사인까지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그가 읽어주는 책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동대구에 도착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던 그의 통화도 그때쯤 멈췄다. 하마터면 “우리도 부산을 자주 다녔는데요.”라고 말할 뻔했다. 아마 승무원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통화는 울산을 지나 부산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울산역에 내리면서 슬쩍 뒷좌석을 돌아봤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팔짱을 낀 채 고요에 든 남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내가, 돌아가신 당숙을 보러 가는 그의 통화를 참을 만했던 건, 오랜만에 탄 기차에 코로나19가 완화된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마다 고민한다. 몇 호차가 좋을까. 좌석은 어느 위치가 좋을까. 그런데 늘 타고 보면 좋은 자리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하듯 기차 타는 것도 그랬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참을만했던 이유를 찾아봤다. ‘출산율이 점점 떨어진다는데 아이 목소리 듣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기차여행이니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그러면서 창밖을 보니 기차는 하얀 눈이 쌓인 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문득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하나 더 보탰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기차가 달려주는 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