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충(益蟲), 당랑거철(螳螂拒撤), 지극히 인간의 입장에서
이 주 만에 친정에 가니 마당인지 풀밭인지 모를 정도로 풀이 자랐다. 풀은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알아챈다. 순서대로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다음을 기약한다. 마당을 뒤덮은 민들레와 바랭이, 괭이밥을 뽑아내는데, 온갖 벌레들 세상인 풀의 그늘에서 생각지도 못한 곤충이 튀어나왔다. 아주 작은 데다 갈색인 거로 보아 좀사마귀 같다. 벌레와 곤충이라면 기겁하는 내가 친구 덕분에 사마귀에는 좀 관대해졌다.
지난해 여름, 친구가 사마귀를 키워서 독립시켰다. 친구는 사마귀를 발코니 고추 화분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그녀 집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아파트인 데다 14층이다. 가까이 공원이나 숲도 없다. 그러니 친구 말대로 사마귀는 하늘에서 떨어졌는지도 몰랐다. 암컷은 수컷보다 많은 데다 몸이 무거워 잘 날지 못한다는데, 아마도 고층 아파트까지 날아온 걸 보면 수컷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그런데 첫날 보내온 사진을 보니 머리며 몸통 등, 사마귀 태가 제법 나지만 아직은 날개도 없는 아주 어린 사마귀였다. 한껏 꼬리를 말고 가는 다리로 아파트 발코니 벽면에 매달린 모습이 마치 꼬마 발레리나 같았다.
사마귀를 발견한 지 오 일째, 관찰에 들어간 친구가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화분에 심은 고추에 진딧물이나 벌레가 없으니 뭘 먹는지 슬슬 걱정이 되었던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탈피하는 과정까지 보게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그날 한참이 지나도록 다리 한쪽 껍질을 벗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살짝 도와줬는데, 다리를 저는 것 같아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같이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나까지, 친구 집에 얹혀사는 사마귀가 잘 있는지 궁금하여 종종 안부를 묻기에 이르렀다.
이 주 째 되었을 때 두 번째 탈피를 마친 사마귀 사진을 보내왔다. 다리도 굵어졌고 꼬리도 통통한 게 이젠 성충이 다 된 모양이라 했더니 사마귀는 일곱 번이나 탈피한단다. 사진을 보며 ‘넌 성충이 되려면 당당 멀었구나.’라는 혼잣말을 했다. 고작해야 7개월이나 1년을 살면서 일곱 번이나 탈피해야 하니 사마귀의 삶도 참 쉽지 않겠다.
사마귀가 온 다음부터 친구는 산책하러 나가면 벌레를 찾아다녔다. 날이 더워서인지 흔하게 보이던 파리 한 마리도 안 보인다며 속상해하던 날, 집에 돌아가 갈치살을 발라 먹이는 사진을 보내왔다. 아주 작은 생선 조각을 야무지게 잡고 먹는 사진 속의 사마귀, 얼핏 보면 고추 이파리로 보였다. 돼지비계도 잘라 줬더니 잘 먹는다고 한다. 이젠 반려 곤충이 다 되었다.
며칠 후, 이번엔 사마귀가 파리 한 마리를 사냥해서 먹는 사진을 보내왔다. 육식을 즐기는 곤충이라서일까. 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고 전사처럼 톱니 달린 날카로운 앞다리를 낫처럼 구부려 파리를 잡고 있다. 크기로 보아 그동안 여러 번 탈피를 마친 모양이다. 발코니 고추 화분이, 살 만한 공간인 걸까. 가끔 파리도 날아와 주고 그도 없는 날에는 집주인이 먹을 것도 챙겨주는 데다 천적인 개구리나 뱀, 새가 근접하기 어려운 곳이니 그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겠다. 친구네 반려 곤충이 된 사마귀 소식을 들은 것과 비슷한 시기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카야에게 생명의 안식처는 습지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엄마도 그녀를 떠났고 형제와 자매도 그녀를 떠났다. 그녀 곁에 남은 건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인데, 그마저도 떠났다. 습지 밖 어딘가로 연결된 오솔길로 떠난 가족들, 가족이 모두 떠났을 때 카야의 오솔길은 사라졌다. 그리고 바다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각종 깃털을 주고 글을 가르쳐 준 소년, 테이트가 습지와 카야를 떠났을 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했다. 비틀거리는 카야를 지켜주는 건 언제나 습지의 땅이었다. 그러니 혼자 남은 카야에겐 습지가 엄마였고 아버지였으며 가족이었다. 그녀를 향한 습지 밖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건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선택은 싸워서 물리치는 거였다. 사마귀가 길에서 만난 장애물을 향해 앞발을 들고 날개까지 펴듯이 말이다. 사실, 사마귀는 동물이나 사람, 마차에 덤비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도망갈 수 없을 뿐이라고 한다.
습지에 살던 카야에게는, 그녀가 채취한 홍합을 사주고 옷가지를 챙겨주던 점핀 부부 외에 모두 포식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자연이 부모이고 선생이었으며 의지처였을 거다. 그래서 암컷 사마귀가 수컷을 잡아먹고 반딧불이도 불빛으로 수컷을 유인해 잡아먹는 자연의 섭리를 보며 카야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래서 자신을 겁탈하려는 체이스를 없애는 것이 사는 길이라 여겼을 거다. 그건 카야 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습지의 주인이 카야였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친구는 다 자란 사마귀를 양파망에 담아 공원 잔디밭에 풀어줬다고 했다. 그날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영화로 보고 있었다. 카야가 그린 사마귀 그림이 친구가 보내온 사마귀 사진과 같았다. 카야가 체이스를 죽인 건 그와는 다른 이유였으나 친구가 키워 보낸 사마귀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카야가 사마귀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친구가 보살핀 사마귀와 카야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풀을 매다 보니 어느새 마당이 깔끔해졌다. 사마귀를 올려 둔 에어컨 실외기 근처로 가보니 구석 자리에 그대로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와 더듬이 등이 멀쩡한 거로 보아 호미에 상처를 입지는 않은 것 같다. 사마귀를 휴대전화기로 찍었다. 그리고 커다란 호박잎을 따다가 사마귀를 태워 풀밭으로 옮겨 줬다. 안전한 한살이를 위해. 2025. 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