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싱(Earthing)

숲과 흙에 새기는 발 도장

by 그설미

맨발 걷기 열풍이다. 공원마다 운동화보다 맨발로 걷는 사람을 더 자주 만난다. 도시마다 공원에 조성한 맨발 걷기장 덕분이다. 맨발 걷기는 어른들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전국 초·중학교에도 맨발 걷기 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24년에만 500여 곳의 학교에서 맨발 걷기를 도입했고 시 교육청에서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요즘은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는 손수건이라도 준비해 나간다. 공원이나 산 입구, 어디든 맨발 걷기장이 있어서다.

우리 집 근처 작은 동산에도 맨발로 걷는 길이 있다. 최근에는 황톳길까지 생겼다. 길을 걸을 때마다 일 년 반 전의 일이 생각난다.



2024년 초였다. 처음에는 고양이 길 같던 숲길이 비질로 폭이 한 보 정도 늘어나 말끔한 길로 바뀌었다. 울퉁불퉁한 곳은 편평하게 다듬었고 반환점에는 앉아서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구멍 난 시멘트 벽돌까지 몇 개 갖다 놓았다. 어느 날 다시 가보니 길은 오고 가는 사람이 서로 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배로 넓어졌다. 입구에 있던 벽돌이 치워지고 신발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수납장에 의자까지 생겼다.

날마다 비질을 막 마친 말간 흙길을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다. 길은 하루하루 달라졌다. 소나무와 참나무, 산벚나무에 맨발 걷기 코스를 알리는 이정표가 걸렸고, 길옆의 관목이나 원추리에, 없던 지주대도 세워놨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곳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우회로까지 만들었다.

걸으며 마주 오거나 같은 방향을 걷는 분들로부터 길을 만든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시(市)에서 만든 것인 줄 알았던 그 길은 한 사람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자기 시간을 내는 것도 모자라 쉼터 조성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자비로 마련했다고 했다. 만나는 분마다 한결같이 고맙다며 표창장이라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오며 가며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로 드디어 ‘우리 동네 건강지킴이’가 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년 전쯤, 그에게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함께 왔다고 한다. 약을 먹으며 체육공원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는데 트랙만 돌다 보니 지루해서 주변을 해찰하다가 우연히 200여 미터의 맨발 걷기장을 발견했다. 맨발로 걸어보니 좋았는데 길이 짧아서 아쉬웠던 차에 숲으로 이어진 지금의 오솔길을 만났고, 공원 관리소장님의 허락을 받아 작정하고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힘은 들어도 걷는 분들이 좋아하시니 땀 흘린 보람이 있다며 웃었다.

처음엔 삽으로 시작하여 빗자루도 사고 괭이며 신발장이며 의자도 손수 만들어 놓았다. 맨발 걷는 분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힘을 주고받는 덕분에 함께 만들어가는 길이 되었다. 길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걷지 않으면 ‘길’이 될 수 없다. 그 길을 걸으며 건강을 챙기는 분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힘이 모였던 거다.

한 회원이 대량으로 사 온 상사화 구근을 같이 심기도 했는데, 그분은 상사화뿐만이 아니라 꺾꽂이한 수국도 뿌리를 내리면 옮겨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상사화는 2~3년 후면 꽃이 핀다고 하니 그때는 더 빛나는 ‘맨발 숲길’이 될 것이다. 빗물에 드러난 뾰쪽한 돌멩이를 빼내는 분, 세족장에 발 닦는 수세미를 챙겨놓고 오가며 청소하는 분, 비가 오지 않아 땅이 굳으면 물을 받아다 뿌리고 작은 유리 조각을 빼내거나 곳곳에 세워 놓은 비로 길을 쓰는 분들 덕분에 ‘맨발 숲길’은 늘 깨끗하다.

맨발로 걷는 길은 왕복 1킬로미터다. 네 번만 오가도 십 리를 걷는 셈이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 마주 오던 할머니가 양말 신고 걷는 나를 보더니

“아이구, 쯧쯧, 양말을 벗어야제. 그러고 이런 데를 밟아주며 걸어야 혀.”

라며 길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다 좋은 길이 주는 선물이다.


전국에는 맨발로 걷기 좋은 길이 많다. 하지만, 가장 좋은 길은 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길이다. 오랜만에 집을 나서서 맨발 숲으로 들어간다. 숨기고 감췄던 발, 이젠 맨발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천천히 걸으며 발바닥에 전해오는 흙의 감촉도 느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아무 일’에서 시작한다. 오늘도 쓰레기를 줍고 비로 쓸고 산책로 주변의 풀을 뽑는 분들 덕분에 길이 빛난다. 맨발 숲길엔 새벽부터 저녁까지, 비가 오는 날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을 걷는 ‘우리’가 만드는 맨발 숲길이 모두의 명품 길이 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신발 벗고 어싱, 시작이다.

20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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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발, 네 번째 발가락

눈을 감고 제자리 걷기를 시작했다. 스무 발자국쯤 걸었을 때 눈을 떴다.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 이상 벗어난 곳에 두 발이 멈춰있다. 눈감고 제자리 걷기는 어지러운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시작한 운동 아닌 운동이다. 그런데 눈을 떠보면 늘 한쪽으로 치우쳐 서 있다. 중심을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써 보지만 매번 허사다.

이상하게 넘어져도 왼쪽 다리만 다치고 눈을 뜨고 걸어도 종종 왼편으로 치우쳐 걸으며 팔목이며 손가락에 문제가 생겨도 늘 왼쪽인 경우가 많다. 작은 발 때문일까. 왼쪽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무래도 나는 왼발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발은 적당히 크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내 발은 너무 작다. 작은 키와 갈대 같은 몸피에 발까지 작아서일까. 얕은 나무뿌리처럼 센 바람에 휘청거리는 것은 예사고 가끔은 걸을 때도 중심 잡는 일이 힘들어 애를 먹는다. 마음만으로 몸의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생각은 꼭 왼발, 네 번째 발가락으로 모인다.

물건을 잡으려면 손이 중요하고 흔들리지 않고 서 있으려면 발이 중요하다. 손이 예쁜 사람은 얼굴도 예뻐 보인다. 잘생긴 발은 튼튼한 나무를 보는 것 같다. 남의 손과 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내 손과 발은 그저 남 앞에 자신 있게 드러내놓지 못하는 신체 부위 중 하나라 여겨서다. 가리기 쉽지 않은 손에 비해 발은 양말이나 신발을 신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홀대해도 무던하던 발이 한동안 애를 먹였다.

잘 다듬고 가꾸고 보살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발이다. 그 발을 얼마나 혹독하게 부려 먹었던가를 깨닫게 된 것은 두 해 전부터다. 발바닥이 아픈데도 양말 벗은 발을 내놓을 용기가 없어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족저근막염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평발이라 낫더라도 다시 재발할 확률이 높다는 말로, 병원에 가면 나을 거라는 희망의 싹을 잘라내기까지 했다. 특수 깔창을 생각해보라며 건네는 명함은 족쇄 같았다. 좀 더 일찍 갔더라면 하는 후회만으로 통증을 줄일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왼발의 통증이 더 심했다.

지금도 너울가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도 또래보다 느리고 유난히 숫기가 없었다. 거기다 잔병치레도 잦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나를 두고 ‘무녀리’라거나 ‘생기다 말아서’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생기다 만 것은 성향만이 아니어서 내 몸에도 있었다. 바로 왼발, 네 번

째 발가락이다.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발가락 사이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매달린 작은 발가락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나의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은 그렇게 기둥 하나를 놓친 채 미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내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건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그건 흠도 아니고 어떤 일을 할 때 받는 핸디캡도 아니다. 그런데 짧은 발가락에서 싹튼 열등감은 너울성 파도처럼 자존감까지 삼켜 버릴 때가 많았다.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기대치에 맞춰 만든다. 기성품으로 친다면 내 발은 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를 낳을 때마다 발가락부터 가장 먼저 살폈다. 나를 닮지 않은 아이들의 발가락은 성격만큼 제각각 다르게 생겼다. 특히 딸은 자라면서 남편과 묘하게 닮아갔다. 둘은 성격도 많이 닮았고 긴 손가락이며 엄지발가락 생김새까지 비슷하다. 심지어 발가락의 벌어진 간격이며 양말에 구멍 내는 오른쪽 발의 엄지발톱 모양까지 똑같다. 가끔 남편과 아이의 구멍 난 양말을 꿰매면서 투덜대다가도 생각이 내 발가락을 닮지 않은 것에 이르면 울퉁불퉁했던 마음이 절로 수굿해진다.

성인이 된 아들의 큰 발은 안정감 있어서 듬직하다. 또 발가락까지 다 드러내 놓은 샌들 신은 발은 어딘가 당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맨발로 성큼성큼 바닥을 걸을 때는 고른 발가락이 세상을 움켜잡은 것 같다. 또 살짝 벌어지는 균형 있는 발가락들의 모습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모두 내 발가락을 닮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사람의 성격을 발가락 모양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모두 여덟 개로 나누어 놓았다. 엄지에서 새끼까지의 길이가 사선인 ‘로마인의 발가락’은 대개 침착하고 친절한 성향이 있다고 한다. 또 인내심이나 정직함이 있으나 최종 판단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농민의 발’도 있다. 발 모양은 다섯 개의 발가락 길이가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발가락 사이가 벌어진 형태의 ‘여행자의 발가락’도 있다. 서로 붙을 염려가 없는 발가락 모양은 언제든 출발 준비를 마친 여행자 같다.

여덟 개 중에 나와 닮은 것들을 골라봤다. 그런데 어느 것은 모양이 닮았으나 성격이 다르고 모양은 다른데 성격이 딱 들어맞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양이라는 것도 내 오른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나의 왼발은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나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왼발 모양이 신경에 거슬릴 때가 또 있다. 신발을 살 때다. 신발을 사려면 여전히 왼발, 네 번째 발가락부터 살피게 된다. 발가락이 너무 드러나지는 않는지 신발에 눌려 아프지는 않은지, 신어보고 걸어보고 서 있어도 본다. 그렇게 오랜 생각 끝에 사 온 신발도 정작 신고 나가 걷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왼발, 네 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거나 조심하느라 한쪽에 힘을 실어주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신지 못하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내 왼쪽이 부실하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 건 뇌동맥류의 발견이다. 갑자기 생긴 어지러운 증상이 사라지지 않아 찍은 뇌 CT에 뇌동맥류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뇌혈관 조영술을 했는데 큰 게 하나 더 있었다. 의사는 둘 중 하나는 잘 터지는 위치여서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도 둘 다 위치가 왼쪽이라고 했다. 꽤 오래전이었거나, 아니면 최근에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는 부푼 풍선 같고 꽈리 같은 혈관은 못난 발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발과 무릎에 이어 머리까지 내 왼편의 수난은 그렇게 머리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래저래 부실했던 왼쪽이 요새 호강하고 있다. 또 여전히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하는 발이지만 집에서만큼은 족욕에 크림과 마사지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런저런 대접 덕인지 족저근막염은 나날이 호전되어 견딜 만해졌고 뇌 시술도 잘 되어 큰 근심을 덜었다. 하지만, 어지럼증에서 비롯한 왼쪽의 감각이 무뎌졌던 순간은 정신적 충격으로 남아 자꾸만 왼편을 살피게 된다.

몇 달 동안 왼쪽 발과 무릎, 어지럼증에 뇌동맥류 시술로 걷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214,573. 지난 한 달 동안의 걸음 수다. 하루에 평균 6,900보 정도 걸었다. 만 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걸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 그리 서운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이 걷는 날도 걷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못나서 미완성이라서 비정상으로 생겼다며 내놓지 못했던 발의 도움으로 걸었던 거리라고 생각하면 내가 디뎠던 모든 곳이 의미 있다.

스물여섯에서 하나가 빠진 스물다섯 개의 뼈로 된 나의 왼발, 무엇이든지 부족하고 못난 것은 잘못이 없다. 하다못해 굽은 나무도 길마가지가 된다 했고 눈먼 자식이 효도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내 무게를 버텨준 나의 왼발, 그 발이 버텨줘 걷고 뛰고 서 있었다. 나의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은 내 몸에 붙은 죽비와 같았다.

조금은 부실한 나의 왼쪽, 그리고 바닥에 제대로 닿아본 적 없는 나의 왼발, 네 번째 발가락. 앞으로 남은 시간, 더 긴 다리품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걷는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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