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인일까2

그때그때 다른, 무엇이라도 품는 품 넓은

by 그설미

정확히 십이일 전의 일이다. 마늘종이라도 뽑으려고 내려간 길이었다. 하지만, 마늘밭을 샅샅이 살펴봐도 마늘종이 올라온 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잘 자라던 마늘은 군데군데 누렇게 떠서 썩어가기까지 했다. 풀보다 더 쉽게 쑥쑥 뽑히는 마늘을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건 자책의 날숨이었다. 심기만 했지, 풀도 겨우 한 번이나 뽑았을까. 엄마 말대로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여준 적 없으면서 잘 자라길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두어 달 전에 심은 완두콩이 잘 여물어 첫 수확의 기쁨으로 마늘밭의 아쉬움을 달랬다.

6월 하순이면 텃밭 마늘 생각에 잡혀 지낸다. 우리도 일정이 있으니 마늘 캘 날을 잡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날을 잡아 놓으면 장마철이라 비가 내려 낭패 보기 일쑤다. 올해도 그랬다. 할 수 없이 주중에 하루 내려가서 캐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기 전에, 뒷집 아저씨와 요양보호사님이 손을 보태 다 뽑아놨다. 아저씨는 얼마나 꼼꼼하신지 옮기기 편하고 마르기 좋게 한 줄로 나란히 늘어놓기까지 하셨다. 고맙게 마늘 크기도 적당했다. 아저씨 덕분에 마늘을 밭에서 마당으로 옮겨 놓고 콩을 심고 블루베리까지 딸 수 있었다. 남편과 일을 나누어서 하니 네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이 가능했다.

2025.06.26

이태 전만 해도 우리는 엄마의 아바타처럼 움직였다. 마늘은 밭에서 옮기기 전에 누런 잎을 말끔히 제거해야 했다. 밭에서 들고 온 마늘은 엄마의 지시에 따라 미리 정해둔 마당 한 곳에 펼쳐놓았다. 늘어놓을 때는 겹치지 않게, 이왕에 하는 거 보기 좋게. 각자 집으로 가져가는 건, 줄기만 잘라내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깔끔하게 다듬는지 확인했다. ‘대충’. 그런 게 통하지 않는 감독이었으니, 풀이 사람을 몰아낸다는 여름에도 마당과 터앝, 어디든 말끔했다. 그런데 이젠 풀들 세상이 되었다.

2025.06.26

작년에 콩을 거둔 뒤로 묵혀 둔 텃밭이 있다. 봄에는 제비꽃이 보라색으로 물들이더니 지금은 노란 꽃을 피운 괭이밥 세상이다. 거기다 코스모스와 끈끈이대나물, 망초, 닭의장풀에 명아주, 바랭이, 설악초, 맨드라미까지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그곳에 콩을 심으라고 했다. 몇 주 전 갈아엎어 아직 풀이 없는 곳에 심으면 수월하지 않으냐는 내 말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유가 있으시겠지.’

호미를 들고 들어가 한창 미모를 뽐내는 풀들을 뽑아내며 콩을 심기 시작했다. 콩을 심을 때는 등 뒤에서 풀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예전의 엄마 같았으면 맨드라미와 설악초, 끈끈이대나물은 뽑아서 마당 가로 옮겨 심었을 거다. 감독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그냥 뽑는다. 아니 뽑아버린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풀을 뽑고 흙을 고른다. 한 두둑에 네다섯 개 정도로 간격은 너무 베지 않게 잡아 구덩이를 파서 콩알 네 개를 넣는다. 한 알은 새 몫이라 했던가. 가끔 옛다, 하는 마음으로 다섯 개를 던져 넣기도 한다. 마음이 후해서가 아니라, 넣고 보니 다섯 개인데 다시 꺼내는 게 일이라서다. 콩을 넣은 다음 흙은 적당히, 살살 덮어준다. 몇 해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배운 덕에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2025.06.26

“이거 심어서 얼마나 수확한다고.”

“그러게.”

남편과 콩 심을 곳의 풀을 뽑으며 주고받은 말이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마늘, 사 먹으면 된다. 콩, 그것도 사 먹으면 편하다. 해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때가 되면 무언가를 심고 거두고 다시 심는다. 수확물이 보잘것없어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 대신이다. 종자가, 씨앗이, 밭으로 돌아가는 걸 보여드렸을 때, 계절과 절기를 가늠하고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함이 보여서다. 그게 당신이 지켜온 땅에 대한 도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툴고 힘든 일이지만, 효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노래자는 칠십의 나이에 어린아이가 입는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고 엄마의 땅에서 재롱을 떨고, 마늘은 어디에 옮겨 널었고 콩은 어디에 심었으며 블루베리는 얼마만큼 땄는지 낱낱이 알려드렸다. 밭에서 나온 수확물은 십 분의 일도 당신 것이 아니다.

동으로 서로 내달렸어도 심어야 한다던 서리태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챙겨 온 마늘을 풀어놓는데 엄마 말이 생각났다.

“그려, 그려. 고생했다.”

아직은 당신이 이 땅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말이다. 앞으로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

2025.6월



누가 주인일까 1

“마늘종은 아침나절에 뽑아야 잘 나온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잠시 주춤거리지만,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아침에 첫차를 타고 내려왔는데도 열 시가 넘었다. 오후 차로 다시 올라가야 하니 한낮에 그것들과 줄다리기하게 생겼다. 모자와 장갑에 토시, 마스크에 색안경을 꺼내 썼다. 마지막으로 장화까지 챙겨 신고 전사처럼 마늘밭으로 들어섰다.

살살 달래도 보고 단번에 끝내겠노라고 확 잡아당겨도 보지만 번번이 내가 지고 만다. 마늘종은 그 깊은 속을 쉽게 보이지 않고 질긴 쇠심줄처럼 잘 뽑히지 않는다. 가끔 뽀드득 소리를 내며 뽑히는 경쾌한 느낌에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늘밭을 누비고 다녔지만, 잘린 것이 대부분이다. 빈틈없이 뽑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간 밭을 돌아보니 옷차림만 요란한 가짜 농부를 비웃듯 뽑히지 않은 마늘종이 무수하다. 그래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바구니에 가득 찬 마늘종을 농로로 내놓고 명아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명아주는 줄기의 굵기와 상관없이 마늘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면 여문 씨들을 밭에 뿌릴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순서는 마늘이 죽은 빈터를 점령한 풀 뽑기다. 호미를 들고 마늘이 죽은 밭 가운데로 가보니 봄까치며 괭이밥, 환삼덩굴, 주름잎, 바랭이, 쇠비름, 별꽃아재비에 닭의장풀까지 마치 잡초 박람회라도 열리는 것 같다. 먼저 잘 뽑히는 쇠비름과 닭의장풀을 뽑아내고 나머지는 호미로 파고 긁어냈다. 풀들을 한곳에 쌓아놓고 보니 뽑히지 않은 마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다. 더구나 요령도 없이 마늘종 뽑느라 힘을 다 써버린 내가 뿌리를 드러낸 풀보다 먼저 시들게 생겼다. 그래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퇴비장에 버리며 완전차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늘을 캐러 다시 가보니 내가 바삐 움직였던 몇 배의 속도로 풀들은 자라 있었다.

여름은 작물이 자라는 만큼 풀과의 전쟁이 따로 없는 계절이다. 얼마나 힘이 들면 싸움도 아니고 전쟁이라 할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밭에는 뿌린 것만 나고 자라지는 않는다.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나고 가꾸지 않아도 홀로 잘 자라는 것도 있다. 잡초는 사람의 보살핌을 거치지 않으니, 용병처럼 더 강하게 뿌리를 박고 뽑히길 거부하며 번식을 위해 애쓴다.

인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새로 얻은 묵은 밭에 올해 처음 삼을 심었다. 그런데 그 밭에 심은 인삼보다 풀이 더 많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풀밭인지 인삼밭인지 모르게 변했다고 한다. 동네 어귀에 있는 밭이라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며 보탠 말을 거름처럼 여긴 풀들이 기승을 부리자, 친구가 일꾼을 얻어 잡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밭의 풀을 다 뽑고 돌아서 보면 다시 무성하게 자라있으니, 풀의 볼모로 잡힌 것 같아 무서울 정도라고 한다. 꽃이 예쁜 괭이밥도 인삼밭에서는 골칫덩이일 뿐이라 밥만 먹고 나면 밭으로 달음질친다는데, 그 줄다리기가 언제 끝날까 싶다며 울상이다.

어릴 때 우리는 괭이밥을 고이셩이라고 부르며 연한 잎을 따서 씹으며 새콤한 맛을 즐겼다. 지금은 샛노란 작은 꽃이 예뻐 바라보게 되는데, 친구는 그 풀과의 전쟁에 진을 빼고 있다. 심지어 괭이밥 씨가 터지며 얼굴로 튀어 두드러기까지 돋아서 풀을 뽑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 고생이 말이 아니다. ‘빛나는 마음’이라는 꽃말이 무색하도록 괘씸한 괭이밥이 아닐 수 없다.

인삼밭에서는 인삼이 주인이라 다른 것들은 모두 잡초가 되고 마늘밭에서도 마늘 아닌 모든 것들은 잡초다. 뽑아버려야 하고 논틀밭틀 길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던 봄까치꽃에 아무리 설렜어도 작물 심은 밭에 나면 가차 없이 뽑아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밭도 마늘을 수확하고 나면 다시 콩이 주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인삼밭은 아직 몇 년은 더 인삼이 주인이어야 하는데 잡초들 입장에서는 몇 년 묵힌 그 밭을 먼저 차지한 자신들이 주인이라 여기고 있으니, 당분간은 풀과의 전쟁이 계속될 것 같다.

오늘도 친구는 팔순을 넘긴 여섯 명의 할머니와 함께 그 밭에 매달렸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해 왔다. 풀들과 함께 먹고살자고 할 수도 없는 농사, 앞으로는 풀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작물들을 두고 비싸다는 말을 앞세우지 말아야겠다.

친정에 올 때마다 말간 마당과 깔끔한 텃밭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있던 모든 풀이 엄마의 몸속으로 들어가서였다. 여름 한 철, 풀에 몰리지 않으려면 풀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손과 호미, 낫으로도 잡을 수 없는 풀들과의 전쟁, 풀을 잡아보겠다고 풀을 몰아본다는 어느 시인의 풀 모는 시를 떠올리며 마늘 캔 밭에서 나도 풀을 몰아낸다.

2016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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