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 사이 그 어디쯤에서
새된 소리에 가던 길을 멈췄다. 스트로브잣나무 뒤편으로 밤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숲에서 나는 소리다. 까마귀와 꾀꼬리 두 마리, 다급한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잠시 후, 까마귀는 건너편 숲으로 화살처럼 날아갔고 꾀꼬리 두 마리도 밤나무 가지로 숨어들었다. 까마귀가 텃세를 부리나 싶었는데, 반대인 모양이다.
부부인 듯한 꾀꼬리 한 쌍이 밤나무 우듬지 주변 가지에서 계속 움직인다. 아마, 거기 어디쯤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거나 새끼를 기르는 중인 것 같다. 까마귀가 꾀꼬리 둥지 속의 알이나 어린 새를 탐낸 게 분명하다. 한 마리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주변을 살피고 한 마리는 노란 등을 살짝살짝 보이며 같은 곳에서 맴돈다.
이곳 작은 숲정이에는 꾀꼬리가 많이 찾아온다. 올해는 꾀꼬리 소리로 보아 작년보다 더 많은 개체 수가 머무는 것 같다. 주변에 농경지도 있고 맹꽁이 서식지인 습지도 있어 먹이가 풍부하다고 소문이라도 난 걸까. 공원과 오솔길이 있어 사람들 왕래가 잦아도 관목보다는 교목이 많고 잎이 우거지니 새가 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숲길을 걸으면 음악처럼 깔리는 온갖 새소리, 그중에서도 맑고 예쁘기로 꾀꼬리 울음소리는 단연 으뜸이다. 하지만, 그 고운 모습을 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키 큰 나무우듬지 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높은 곳에서만 날아다니는 까닭이다. 그렇게 높은 곳에 집을 짓지만, 천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맹금류를 포함하여 뱀도 있고 고양이로부터도 안전하지는 않다. 가끔이지만, 사람도 위험하다. 꾀꼬리 둥지 사진을 찍겠다고 나뭇가지를 다 잘라낸 사람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상에는 비에 젖은 부모 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새끼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은폐물이었던 나뭇가지가 사라지니 둥지는 훤히 드러났다. 새끼 중 몇 마리는 저체온증이나 열사병으로 이미 죽었다고 하는데, 나머지 새끼 새도 위험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위장막이나 위장이 가능한 텐트도 없이 모여 있는 사람들, 대체 무엇을 찍고 싶었던 걸까.
여름 철새인 꾀꼬리는 우리나라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에 포함된 조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2010년에 ‘국민이 관찰과 구별하기에 쉽고 기후변화 예측에 유리한 이동성이 큰 곤충과 생물계절이 뚜렷한 종’을 반영한 100종을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선정했다. 이후 2017년에는 100종에 후보 종 30종을 추가로 다시 정했다. 왜가리를 비롯하여 제비와 동박새, 쇠물닭, 뻐꾸기, 쇠백로까지 내가 자주 보는 새 몇 종이 포함된 이유가 거기 있었다.
둥지를 지키려는 사투를 봐서일까. 오늘 내가 본 꾀꼬리는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나 단원 김홍도가 그린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에 나오는 서정적인 모습으로 기억하는 꾀꼬리와는 사뭇 달랐다. 둥지를 지키려는 사투와 밤나무 가지 뒤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꾀꼬리의 날갯짓에 묻어 있던 불안이 그랬다. 조금 전에는 까마귀를 몰아냈지만, 주변에서 얼쩡대는 까치도 안전한 이웃은 아닌 것 같다. 꾀꼬리는 서른두 가지나 되는, 다양한 굴림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아까 까마귀를 쫓아낼 때의 다급한 소리도 그중 하나였겠다.
다음 산책길에는 꾀꼬리 소리에 조금 더 집중해 봐야겠다. 이제 여름 철새인 꾀꼬리 소리 들을 날도 기껏해야 한두 달 정도 남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망원경 생각이 난다. 망원경을 사야겠다는 다짐을 한 지 칠 년째,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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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다, 새鳥
수료증을 받았다. 한겨울에 시작해서 육 개월 가까이 매주 화요일 밤에 진행된 수업의 결과다, 사실, 수료증과 케이스에 어울릴 만큼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성실한 수강생에게 주는 정근상과 같다. 하지만, 추위와 원거리를 마다치 않고 다니며 저축한 것이 있을 테니 뜻깊긴 하다.
지난해 연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생태이야기관에서 환경대학 수료자를 대상으로 해설봉사자를 모집했다. 아는 꽃이나 나무를 보면 이름을 불러주고 안양천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그러니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덜컥 발을 디딘 것이 안양천생태이야기관 해설 봉사였다.
너울가지는 없어도 아이들 앞에 서고 있으니 전시관 해설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궁금한 것을 책으로만 보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깊이가 없으니 나올 물이 없어 목이 말랐다. 그러던 차에 새의 세계도 재미있으니 한번 귀 기울여보라는 봉사자의 권유로 자주 들을 수 없다는 새(鳥)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게 삼한사온이 무색했던 무술년 이월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추울 것이라는 뉴스가 날마다 반복되었다. 동파 사고 소식을 뉴스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 방송을 통해 수시로 들었다. 그 아파트에 6년 넘게 살면서 그런 안내 방송은 처음 들었다. 외출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일 층 집이 얼음집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동파로 밤새 흘러나온 물이, 베란다 밖과 화단을 지나 보도 위까지 두껍고 단단한 빙벽과 빙판을 만들어놓았다. 빙벽은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추위의 기세는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외출이 잡힌 날은 여지없어 더 추웠다. 아무리 추워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하지만 매주 화요일 밤, 새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날의 추위는 늘 절정에 달했다. 꽁꽁 싸매고 두껍게 껴입어도 손이 시린 겨울밤, 맹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사람들이 모였다. 여남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새 이야기를 듣고 새 사진을 보며 신기해하던 교실은 따뜻했다.
설렘 속에 찾아간 첫날, 수강자 대부분이 새 세계에 꽤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니 적잖이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본 새라고는 고작 참새를 비롯하여 까치, 까마귀, 오리, 뱁새, 직박구리, 왜가리, 백로 정도였다. 그도 모두 하나의 새로만 통칭했다. 내가 알고 있는 식물, 나무는 그분들에 비하면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였다.
늘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과 달리 움직이는 새를 관찰하는 일이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었다. 겨우 몇 개의 새 이름을 알 뿐이었는데 한반도에서만 기록된 새의 종류가 541종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사라지는 종도 있지만, 추가되거나 새로운 이름을 얻는 새도 있으니, 그도 불변한 것은 아니다. 관심을 두고 보니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새가 있었다.
알게 되면 보이게 되고 보이면 자꾸 찾게 된다.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관 당번인 날에 매번 옥상으로 올라간 것은 새를 보기 위함도 있었다. 그날 옥상은 돌계단 위에까지 남아있는 잔설이 서쪽으로 기우는 햇볕을 받아 깨끗하고 맑게 빛났다. 가장 먼저 망원경으로 물가 버드나무 가지 아래 쉬고 있는 원앙들을 찾아봤다. 수컷의 부채같이 아름다운 오렌지빛 셋째 날개깃이 눈에 들어왔다. 원앙들 사이에 고방오리와 청둥오리도 보였다.
비오리까지 찾아보다가 시린 손을 감싸 쥐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눈 위에 찍힌 새 발자국이 보였다. 새는 겅중겅중 뛰어 잔디밭에 들어갔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듯 발자국이 끊어졌다. 흔한 까치일지도 모르는데 선명하게 남은 새 발자국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 위의 새 발자국처럼 확실하고 정확하지는 않아도 새들을 보고 대하는 또 다른 나를 봐서였을 거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그들만의 언어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인간 이외의 언어에 둔한 편이다. 그나마 관심을 두고 보는 식물도 식물 편이 아닌 내 편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려 했다.
이제 산에 가면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동안의 배움으로 어치와 쇠딱따구리, 박새, 딱새를 제대로 본 것만도 감사하다. 그런데 받아온 수료증을 펴보니 이름도 거창한 ‘조류 탐조 안내자 양성 기본과정’이다. 안내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활자화된 수료증을 받고 보니 새에 관한 공부는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첫 수업 때 추천해 준 탐조 때 필요하다는 작은 망원경부터 장만해야겠다. 새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한 첫 숙제쯤 되겠다.
2018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