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보다, 듣다, 사랑하다

by 그설미

염소 뿔이 물러 빠지고 소뿔도 꼬부라진다는 한여름 더위. 그래도 7월 한 달, 폭염의 강을 잘 건너왔다. 8월은 말복이 버티고 있지만, 입추와 처서를 보며 위안을 삼는다. 작년 이맘때 계곡 나들이를 떠났는데, 올해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작년에도 덥다고 했지만, 올해는 상상 이상이다. 아침 열 시, 집안 온도는 32도를 가뿐히 넘어섰다. 오늘은 작년 8월 3일의 기록을 톺아보며 더위를 이겨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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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계곡3.jpg 제천 덕동 계곡 2024. 08. 03



돌멩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한여름에 캠핑을 떠났다. 몇 년 만이다. 집 떠나는 걸 즐기긴 하지만, 캠핑은 순위 밖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남편의 말에 따라나섰지만, 더위라는 복병은 예상 못 했다. 일단, 남자들이 텐트 치는 동안 여자들은 계곡으로 피신했다.

계곡은 너럭바위를 휘돌아 내려온 물이 군데군데 소를 만들 정도로 물이 제법 흘렀다. 물에 들어가니 발목에 닿던 깊이가 주르륵 미끄러지며 무릎쯤 닿았다. 거울처럼 투명한 물속을 들여다보니 계곡 상류라 모래보다는 크고 작은 자갈돌 세상이다. 바위도 돌도 얼마나 오랜 시간 구르고 씻겼는지 모두 모서리 없이 매끄럽다. 너럭바위 끝자락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물속의 돌멩이를 하나씩 꺼내 봤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돌멩이를 보고 있으니 장석남 시인의 <돌멩이들>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책상 위, 읽던 책갈피, 세간 기울어진 자리에 쉼터를 만들어주고 그것들을, 잠 안 오는 밤에 쳐다보다가 맨 처음 돌멩이 있던 자리까지 궁금해한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시에서는 ‘저기 뒹구는’ 돌멩이도 있고, ‘돌 가웃된 아기의 주먹만 한’ 돌멩이도 있다고 했다. 어떤 시에서는 아이가 주워 온 두어 개의 자갈 속에 들어가 ‘뼈를 안고 잠든다’라고도 노래했다. 시인은 ‘길이 바위가 되었다가 다시 길이 되는’이라고 하며 그 바위에 귀를 대고 대답을 구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시인이 바위 속으로 난 길 이야기를 했던 게, 아마 시집 《젖은 눈》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였을까. 시집을 읽는데 유난히 ‘돌’이 자주 눈에 띄었다.

너럭바위에 앉아 있으니 십수 년 전, 바위에 귀를 대고 대답을 구해보기도 한다는 시인의 말이 물소리처럼 생생하다. 갈라진 바위틈에 귀를 대고 말하면 정말로 바위의 대답이 들릴 것도 같다. 지난해 시인의 강연을 다시 들었다. 여전히 차분하고 느린 어조로 말하는 시인을 보며 지금도 돌멩이, 바위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어보지는 못한 말이다.

바위는 아니어도 돌멩이를 반려로 곁에 두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에 아이돌 가수가 자신의 반려돌을 공개하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지금은 반려돌, 애완돌, 펫락, 펫스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온갖 치장을 한 돌멩이를 판매한다. 심지어 돌에 이름을 지어주거나 옷도 입힌다. 한 배우는 작은 조약돌에 밀짚모자까지 씌워주며 뿌듯해하는 얼굴로 친구에게 예쁘지 않으냐고 묻는데, 그 얼굴이 참 해맑았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가족처럼 여기며 함께 살려면 보살핌이 필요하다. 먹이고 씻기고 용변 뒤처리도, 강아지라면 가끔은 산책도 시키고 놀아주기도 해야 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시기에 맞춰 물을 주거나 빛과 바람도 쐐줘야 한다. 자기 일을 하며 혼자 사는 사람에게 그런 일은 노동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려돌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름을 지어주고 ‘반려’라는 이름에 맞게 곁에 두고 고민을 나누면 된다. 나누기보다는 넋두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커다란 돌덩이의 한 부분이었을 작은 돌멩이들이 마치 바위의 귀 같고 눈 같다.

그날 밤, 텐트에 누워서 밤새 바위와 돌멩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다음 날, 차에 짐을 싣는데 자동차 뒷좌석에 나보다 먼저 돌멩이 하나가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동글 납작한 돌멩이가 작은 내 손안에 쏙 들어왔다. 돌멩이에 발이 달렸을 리도 없는데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지인이 자기가 챙긴 거라고 말했다.

지인 부부는 주말마다 산행이나 여행을 즐긴다. 처음엔 낮은 산도 힘들어하던 그녀가 이제는 웬만한 산은 제법 탄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그녀가 백(百)산 오르는 걸 목표로 삼더니 가는 곳마다 인증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거기다 다녀온 여행지를 기억하려고 챙기기 시작한 게 돌멩이라고 한다. 잘 닦아서 돌을 챙겨 온 곳과 날짜를 적어 둔다고, 하는데 내겐 ‘돌의 고향’을 적는다는 말로 들렸다.

고향이라고 하니 돌이 생물처럼 느껴졌다. 아까는 그저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했는데, 그녀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밤중에 조약돌에 귀를 대면 계곡 물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다. 그녀의 집에 있을 서로 다른 지역의 돌멩이들. 오늘은 제천의 한 계곡을 고향으로 둔 돌멩이를 새로운 이웃으로 만나겠다. 시인이 돌을 쓰다듬으며 맨 처음 돌이 있는 그곳을 떠올리듯, 그녀도 이곳에서 챙겨 간 돌멩이를 보며 지난밤 두통으로 힘들어했던 시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2024


덕동계곡2.jpg 제천 덕동 계곡 2024.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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