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빛내며 그리움을 뻗는 꽃
어제도 동화천을 읽었다. 며칠 만이다. 몇 페이지가 넘어간 들판 풍경이 다르다. 어느새 참깨를 베어낸 밭도 있고 벼 이삭도 패기 시작했다. 지난봄 모를 심고 물을 대주지 않아 말라가는 벼를 보며 주인의 게으름을 탓했던 논도 푸른 숲이 되었다. 세 번째 다리를 지날 즈음 참새들의 놀이터인 키 큰 쥐똥나무 숲을 만났다. 건너편에도 쥐똥나무가 있는데 주기적으로 전지를 해서 울타리 같다. 쥐똥나무 뒤편으로 며칠 전 노을빛과 같은 진분홍 능소화가 한창이다. 지난달에 수목원 산책길을 붉게 물들였던 능소화보다 색이 더 진하다. 미국 능소화라고 한다. 능소화가 필 때마다 마이산 탑사 암마이봉의 능소화가 생각난다. 다녀온 지, 7년. 일곱 번 피고 졌을 테니 그만큼 둥치가 굵어지고 더 높이 자랐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네 번째 다리를 돌아 집으로 오는 길, 능소화를 한 번 더 올려다봤다. 어제 내가 읽은 동화천의 마지막 페이지는 8월을 빛내는 능소화다.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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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칠팔월의 더위를 표현하기 위해 ‘너무 덥다’라는 말보다 더 극적인 단어가 필요한 요즈음이다. 방송에서는 연일 더위의 끝을 알 수 없다는 예보를 내보내고 있다. 절기상으로 입추와 말복만을 고대하며 견뎠던 이전 더위는 먼 옛날이야기 같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피해 가는 비 소식에 사람도 식물도 지쳐간다.
집 앞 화단을 녹색 바다로 만들었던 비비추의 보라색 꽃대를 보고자 했던 기대는 이미 포기했다. 활짝 피기도 전에 시들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겹꽃 삼잎국화도 만개 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그 큰 키를 접어버렸다. 하지만 더위에도 화려하고 생기를 놓치지 않는 꽃이 있으니, 바로 능소화다.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운 능소화를 봤다. 주택의 벽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는 잎보다 꽃이 더 많아 화려했고 붉었으며 고왔다. 꽃은 이 층 베란다 난간을 덮고 옥상으로 뻗어가며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오래된 농담》에 나오는 현금이네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당에는 떨어진 꽃송이도 제법 널려있을 거다.
능소화는 흡착근이 있어 어디든 붙어 자랄 곳만 있으면 타고 올라가 늘어지거나 터널을 이루거나 숲을 만든다. 옛날에야 양반만 심을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장소를 가리지 않으니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능소화는 송이째 떨어져서도 고운 빛이 남아있다. 동백이나 무궁화처럼 송이째 낙화하지만, 꽃을 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전설 때문인지 어떤 비장함도 느껴지고 노을 같은 꽃 빛이 주는 아련함도 있다. 여러 가지 색깔로 피는 무궁화나 동백과 달리 오직 한 가지 빛깔인 점도 그렇다.
능소화는 기찻길 옆 담장이나 고속도로와 아파트 사이 방음벽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높은 담을 뒤덮은 꽃을 볼 때면 박상천 시인의 <능소화>라는 시가 생각난다. 시인은 고속도로 저편 아파트 담장에 심은 능소화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궁금하기도 하여 소음차단벽을 타고 이쪽 세상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뿌리내린 세상과 꽃을 피운 세상이 다른, 참 특이한 꽃이라고. 여름의 능소화 줄기는 무성한 잎과 꽃송이로 뒤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줄기는 비가 오면 생기는 연못처럼 잎과 꽃이 져야 드러난다.
잎도 꽃도 없는 계절의 능소화 줄기를 제대로 볼 기회가 있었다. 마이산 탑사에서다. 서른다섯 살이 넘었다는 능소화의 굵은 줄기는 수백 년 된 고목 같았고 명아주 지팡이 같았으며 배롱나무 둥치 같기도 했다. 나무줄기는 부챗살처럼 퍼져 올라가 바위와 한 몸처럼 붙어 자라고 있었다. 기둥도 아니고 휘감고 올라갈 것도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러 그루 심은 것 중 하나이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뭇 능소화보다 키가 더 자라고 있다는 그 나무를 목이 아프게 바라보고 사진도 찍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 태풍이 와도 흔들리기는 하되 쓰러지지 않는다는 탑사 내의 탑들보다 암마이봉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내 가슴에 흡착근을 내렸던 날이다.
여름에 와서 꽃이 핀 것을 보라던 스님의 말씀이 물처럼 지나가고 있다. 지금쯤 활짝 피어 바위를 뒤덮었을 텐데. 능소화가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온다는데 꽃은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었어도 비는 올 기미조차 없다.
능소화를 볼 때마다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화려함으로 무장했으나 연약하고 슬픈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픈 건 전설 때문일 수도 있고, 연약하다는 건 무언가 기대 자랄 것이 필요해서 든 생각일 수도 있겠다. 화려한 빛 뒤의 독성은 자기를 보호하는 한 방편이 되겠다. 하지만, 능소화는 연약하나 더위에도 지치지 않는 강인한 꽃이다.
오늘, 계획에 없던 셔츠를 하나 샀다. 빨강보다는 진분홍, 아니 능소화꽃 빛깔에 가까운 색이다.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걸 본 친구가 뜻밖이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옷을 입은 나를 보더니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내서 얼른 샀다. 물론, 상상 초월의 가격 인하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희소성이 결정 요소가 되기도 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찻길 옆 담장과 철길 주변을 뒤덮으며 활짝 핀 능소화를 봤다.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 덕분일까, 모처럼 구름 끼고 바람 부는 오후에 보는 능소화는 발랄한 사춘기 아이들처럼 보였다.
오늘은 우리 집 옷장에도 진하디진한 빛의 고운 능소화 한 송이 피어나겠다.
2018
202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