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부패 감지기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에

by 그설미

오늘 할 일은 텃밭 주변 풀베기와 대파 옮겨심기다. 넓은 밭은 트랙터로 갈아엎어 그나마 할 일이 줄었다. 대파 옮겨 심을 만큼만 잡초를 뽑고 거름을 뿌려 흙을 고르면 되는데, 문제는 날씨다. 오후 네 시인 데도 나가자마자 들숨에 불덩이가 느껴진다.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무색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 주 만에 온 데다 늘 바깥일만 하다가 허겁지겁 올라갔으니 이런 날은 냉장고 정리를 해야 한다.


먼저 냉동실부터 열었다. 최근에 넣어둔 것들은 놔두고 오래된 먹거리를 살펴서 버릴 것들을 챙겼다. 얼린 밥과 누룽지를 담은 작은 비닐봉지가 대여섯 개나 나왔다. 플라스틱 포장재에는 고등어와 조기 토막 등을 담아놓았는데 고등어는 얼마나 오랫동안 냉동실에서 굴렀는지 수분이 없고 색깔도 누렇다. 서리태로 만든 콩물도 만들어다 드린 지 몇 달이 지났는데 그대로다. ‘미수가루’라고 써서 붙여 놓은 봉지 안의 가루는 푸르스름한 거로 보아 쑥을 넣어 만든 것 같다. 쑥을 뜯을 만큼 바깥 활동을 하실 때이니 적어도 십 년 가까이 되었을 거다. 감자수제비 몇 조각, 떡볶이 떡 몇 개, 순대, 물만두 서너 개 등등, 알뜰히도 챙겨 두셨다.


냉장고에서는 밭에서 뜯어다 다듬어 넣어둔 부추가 녹아내려 성한 걸 고르기 쉽지 않다. 밭에서 따다 놨을 가지도 잘라보니, 속이 검다. 메추리알 조림은 꽈리고추만 남았는데, 적어도 이 주 전에 해다 넣은 거니 버리는 게 낫다. 그때 사다 넣은 콩나물도 조금 먹고 그대로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으나 손으로 만져보니 끈적끈적하다. 오래전에 만들어다 드린 도토리묵 몇 조각, 먹다 남은 국과 죽까지 있다.


냉동실과 냉장실에서 나온 버릴 것들이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가득 찼다. 대개는 다시 먹을 거라고 넣어 두신 걸 거다. 몰래 들고 나가려는데, “그게 뭐냐?”라고 하신다. 상하지 않았다고, 먹을만하다고 역정을 내는 엄마를 보며 ‘음식 부패 감지기’ 생각이 났다. 2023년에 튀르키예 연구진이, 음식 부패 감지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잘 쓰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나무와 양배추 추출물을 활용해 만든 부패 음식물 감지기도 개발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니 다섯 시가 다 되어가는 데도 더위는 여전해서 지열에 데게 생겼다. 퇴비장을 뒤덮은 호박 넝쿨을 한쪽으로 걷어내고 삽으로 구덩이를 만든 후 들고나간 음식물을 쏟고 다시 덮었다.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물이 얼마나 많을까. 안 먹어서, 상해서 오래되어서 등등, 가장 많은 음식물이 나오는 곳이 가정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일단 나갔으니, 풀을 뽑고 파를 옮겨심기로 했다. 아랫마을 친구분께서 비료포대 가득 담아 온 파는 열흘이나 지났는데 웃자라기는 했어도, 이 더위에 썩지 않고 잘 견뎌주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적당히 자른 파를 눕혀 심고 흙을 북돋아줬다. 사우나에서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서 옮겨 심은 파에 땀을 받아 줘도 될 정도다. 물을 뿌려주고 내가 심은 파를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잘 자라준다면, 아마도 이 파는 버려지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엄마의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2025.08.23



대파 옮겨 심기.jpeg 2025.08.23






음식 부패 감지기


금방 아침을 먹은 것 같은데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요즘 들어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한 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사흘 전에 만들어 둔 콩국이 보인다. 여름이라 괜찮을까 모르겠다. 어제는 올해 첫 폭염특보가 내려지기도 했고 사흘이 지났다면 점검이 필요하다. 그래봐야 먼저 냄새를 맡아보고 다음은 먹어보는 건데, 문제는 내 후각과 미각을 못 믿는다는 데 있다.

일단 색깔은 괜찮아 보인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는데 잘 모르겠다. 이번엔 맛을 본다. 괜찮은 것도 같고 조금 이상한 것도 같다. 썩 나쁘지 않다. 일단, 국수 삶을 물을 올려놓고 김치를 꺼내려는데 오래된 반찬들이 눈에 띈다. 며칠 전에 먹고 남은 삼겹살 한 쪽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냉동실에 넣어둔다는 걸 깜빡했다. 꽈리고추 조림이랑 콩조림, 가지무침, 나물 등을 꺼내놓고 생각에 잠긴다. 어제 종일 집을 비웠으니, 손도 안 댔을 게 뻔하다. 만든 지 며칠이 지났으니 찜찜하다. 조림은 그렇다 해도 나물 종류는 그날 먹지 않으면 다시 먹기 어렵다. 버리는 게 늘어날수록 반찬을 더 적게 만드는 데 그래도 버리는 게 생긴다. 마지막으로 고기는 색깔이 변한 것 같아서 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나 육류는 색깔이 조금만 변해도 께름칙하다.

콩국수와 잘 익은 오이김치를 먹으며 휴대전화기로 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앞으로는 오늘처럼 냄새나 색깔, 맛으로 상한 음식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튀르키예 연구진이 음식물 표면에 붙여서 부패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감지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 크기도 손톱만 한데, 특히 육류나 어류의 단백질이 상할 때 나오는 물질을 감지하고 분석해 근거리무선통신으로 의뢰자의 휴대전화로 전송한다고 한다.

대형마트에서 삼겹살을 산 적이 있다. 저녁에 장을 봐 다음날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런데 이튿날 고기를 꺼냈는데 변색이 되어 있었다. 전날의 선홍빛은 온데간데없고 푸르딩딩한 것이 보기에도 안 좋은 데다 포장을 뜯으니, 냄새까지 났다. 매장에 전화했더니 가지고 오면 교환이나 환급해 주겠단다. 종일 움직여서 피곤하고 귀찮았지만, 가격표를 보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집 근처 마트에서 오징어를 몇 마리 샀다. 손질해 주지 않는 대신 가격이 쌌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오징어끼리 겹친 부분들 색깔이 많이 안 좋았다. 냄새를 맡아봐도 싱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알려야 할 것 같아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그런데 얼마 후 직원이 싱싱한 오징어를 가지고 집까지 찾아와서 놀랐다.

이제 음식물 부패 감지기가 상용화되면 환급이나 교환을 위해 다시 갈 일도 없을 테고 직원이 직접 들고 오는 일도 없겠다. 내가 겪었던 일은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요즈음 유행인 새벽 배송은 물건이 안 좋다고만 해도 바로 환급해 주고 새 물건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색이 조금 변해서 버리고 보관 기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버리는 음식만 줄여도 음식쓰레기 양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오늘만 해도 갈변하여 화석처럼 변한 바나나를 비롯하여 나물 반찬에 오래된 장조림, 고기까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다. 먹을 만큼만 사고 만들어도 식구가 적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기사를 보며 콩국수를 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말끔해졌다. 김치를 얹어 먹었으니 내가 기억하는 콩국수 본연의 맛도 모른 체 말이다. 아마 변했다면 혀에서 먼저 느끼지 않았을까. 오늘이 아닌 내일 먹으려고 했다면, 께름칙해서 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물의 3분의 1은 사람의 입이 아닌 쓰레기통에 버려지며 그 양은 연간 14억 톤이나 된다고 한다. 남은 음식을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이유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음식물 부패 감지기가 상용화되면 음식 쓰레기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도 남은 음식, 상한 음식을 버리며 다음부터는 조금 덜 만들어야지 다짐한다. 식구도 줄고, 식욕도 줄고, 그러니 음식 만드는 작은 손이 점점 더 작아진다.

23.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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