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무를 뽑아왔다. 그런데 무도 아니고 총각무도 아닌, 어정쩡한 크기다. 날씨 탓으로 돌려보지만, 자꾸만 엄마의 현재 상황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엄마가 마지막으로 밟은 흙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뿌린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남은 씨앗을 더 뿌려야 한다는 말에 내가 며칠 늦게 뿌린 무는 적당한 크기로 잘 자랐다. 갈 때마다 똑같이 풀도 뽑아주고 비료도 뿌려줬는데.
뽑아온 무를 다듬어 절여놓고 찹쌀 풀을 쑤기 시작했다. 봉지에 ‘찹쌀’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지난 2월에 떠난 지인이 생각난다. 찰밥을 찰지고 맛있게 잘 짓던 분이다. 출석 수업을 할 때도 소풍을 갈 때도 찰밥을 한 솥 가득 지어오던 분, 찰밥처럼 찰진 생을 살다가 가셨다.
<다리를 걸치다>
모든 게 꽁꽁 얼어버린 그날은, 입춘이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가 추위로 약속을 취소하고, 남는 시간에 배추겉절이를 만들었다. 늦은 점심으로 가락국수를 삶아 겉절이와 같이 먹고 있는데 ‘딩동’하고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기 화면에 하얀 국화가 돋보이는 게 부고장이다.
지인의 이름으로 왔으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다. 그런데 망자의 이름이 낯익다. 지인이다. 본인이 보내는 부고에 놀라 들고 있던 젓가락이 힘없이 떨어졌다. 면 몇 가닥이 가락국수 그릇 속으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국물이 튀었다. 소식을 주고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한문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지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활기차고 밝았다.
그녀, 그, 그리고 동기, 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 이십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건강하고 밝으며 공부도 운동도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작스러운 일에 떨기 시작한 몸이 진정이 안 되더니, 급기야 이까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집에서 옆 도시의 산 중턱에 있는 장례식장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대중교통이니 돌아가는 길이 그랬고, 갈아타느라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추위 속에서 기다리는 일이 그랬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도착한 장례식장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기에 적당한 장소 같았다. 로비에 들어서니 따뜻한 공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사람 없는 홀을 망자 몇 명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 중간쯤 걸려있는, 환하게 웃는 지인이 나를 맞았다. 여덟 명 중 유일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웃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 분이었다. 가는 길에도 건강하게 고른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라니,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쯧쯧’ 혀를 찼다. 돌아보니 허리가 굽은 백발의 어르신이다. 누굴 보고 그랬을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장 나이 많은 분을 가리키며 “저 정도 살았으면 주위 사람들 얼마나 고생시켰을거여? 안 그려?” 한다. 마치 당신을 향한 넋두리 같다.
아침에 읽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망자들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자고 있으며, 이 삶은 우리가 꾸는 꿈이다.’라고 했는데, 정말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 꿈에서 깨면 열 일 제쳐두고 만나서 함께 각각의 색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을 텐데.
매사에 긍정적인 분이었으니, 다시 태어난 그곳에서 한자 1급도 따고 탁구도 치며 이곳에서 다하지 못한 열정을 불태웠으면 좋겠다. 결혼식 때 보고 처음 보는 그분의 자녀들과 오랜 지기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지방에서 한문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당한 교통사고. 망가진 휴대전화를 수리한 덕분에 최근 연락을 나눈 분들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눈빛, 말투에 언뜻언뜻 그분이 보였다.
들어갈 땐 환했는데, 나와보니 어두워졌다. 불빛이 환한 1층 홀에서 지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곳에서 며칠을 묵을 102세부터 50세까지 여덟 명 중 70대는 그분뿐이다. 이곳에서도 든든한 중심을 잡는 모습이다.
삶과 죽음 사이 서로를 놓아주는 의식의 장소, 같이 간 지인과 헤어지며 이제 우리 자주 보자,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무심히 나눴다. 약속이 아닌 소망이 될 수도 있는 말들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장례식장 셔틀버스는 산길을 돌고 돌아 나를 전철역에 내려줬다. 종종걸음으로 역사 안으로 들어가 마침 오는 전철을 탔다. 퇴근 시간이라 만원이다. 송곳 꽂을 틈도 없는 데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전화기 속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오늘 저들은 어떤 꿈을 꿨을까. 정말로 오늘 하루가 꿈이었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내일 꿀 꿈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 멈춘 건 그분의 삶일 뿐,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202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