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말해요
나도 같이 놀고 싶어
“나도 끼워 줘~”
울긋불긋 화려했던 나무들이 며칠 사이에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나무에도 오스스 소름이 돋는 건 아닌가 싶은데, 아이들은 추울수록 힘이 나는 모양이다. 우르르 몰려가는 대여섯 명의 등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는 한 아이. 몸피로 보아 또래는 아닌 것 같다. 아이의 외침을 등에 매단 형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오솔길을 질러 어디론가 사라졌다. 따라가던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서더니 주저앉았다. 잠깐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오래전 학교에서 만난 한 아이가 생각났다.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데 한 아이가 나를 따라 나왔다. 수업하는 동안 교실 뒤편에 혼자 서 있던 아이였다.“하고 싶은 말이 있니?”라고 물었더니 대뜸 눈물부터 흘렸다. 그러고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자신은 ‘왕따’라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물었더니“우리 반 모두가 나를 따돌리는 걸 알 수 있어요.”라며 울었다.
순간, 수업을 진행했던 나도 거기에 포함된 것만 같아 가슴이 뜨끔했다. 나 또한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그 아이를 방관한 거나 다름없었다.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수업을 마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모둠 밖으로 나가 고집부리는 아이에게 계속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했다. 물론, 처음부터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와 다투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울기 시작한 것은 1교시 수업을 마친 후 쉬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모둠 활동으로 조를 만들기 위해 모두 책상을 옮겨 모을 때 아이는 자신의 책상을 교실 뒤편으로 끌고 나갔다. 혼자 서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더니 울기부터 했다. 달래고 있는 나를 보던 한 친구가 다가와 “걔는 그럴 땐 그냥 내버려둬야 해요.”라고 했다. 모둠 활동은 물론 개별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아 계속 마음이 쓰여 몇 번이나 토닥여봤지만 소용없었다.
수업 중간, 영상 시청 시간을 이용하여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진행하시면 돼요.”라고 했다. 얼른 달려와 주리라 생각했던 나는 머쓱해져서 교실로 되돌아왔다. 아이들은 뒤에 서 있는 친구를 투명 인간처럼 모른 척했고, 선생님도 그냥 두라고 했다.
그리고 모둠에 끼기를 거부하고 혼자 교실 뒤에 서서 수업 참여를 하지 않던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나를 따라 나온 거다.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하는 선생님이니 자신의 속상한 심정을 알아주길 바란 모양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지만, 같이 어울리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한창 또래 관계를 형성하는 아이들 또한 자신들과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친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일은 쉽지 않을 터였다. 친구들과 부딪칠 때마다 아이는 활동 거부와 눈물이라는 무기를 내세운 것 같았고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해결책은‘무관심’인 듯했다. 그리고 아이는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린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고 “그래서 속상했구나!”가 전부였다. 앞으로는 아무리 속상한 일이 생겨도 울지 않고 이야기하면 친구들도 너랑 놀아주지 않겠냐고 덧붙이는 내 말에 아이는 “해봤는데, 그렇게 해도 절대 안 친해져요.”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놀고 싶다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두 시간 수업을 진행했으나 첫 시간에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각각의 성격에 맞춰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일을 선생님 혼자서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 두 시간을 같이 지낸 내가 손바닥 뒤집듯 바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아이도 내가 해결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아서일까.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어깨를 토닥이며 점심 맛있게 먹고 씩씩하게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아니 지금도 가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친구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잘 모르는 그 아이에게서 늘 소극적이던 어릴 적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라진 형들 뒤꽁무니를 쫓아가다가 포기한 아이가 혼자서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타는 게 아니라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처럼 고개를 한껏 숙이고 흔들흔들하는 아이의 등에,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9년 전 그 친구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지금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어 있을 텐데. 부디 멋진 청소년으로 자랐길 바라며 그네 타는 아이의 등을 마음으로 두드려줬다. ‘토닥토닥’.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