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버릇이 불러온 참사

by 그설미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포장을 뜯어 책 사이에 끼워 둔 명세서와 주문서를 따로 챙겼다. 겉면을 떼어내면 바닥의 먼지 제거에 유용해서다. 테이프로 바닥의 먼지를 찍어내다 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게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양말 한 짝이 뒤집힌 채로 말라 있었다. 아마, 내가 널었다면 제대로 뒤집어서 널었을 텐데 각 잡히지 않은 채 척척 걸린 걸 보면, 남편이 널었을 거라 짐작했다. 뒤집힌 검정 양말 한 짝을 뒤집으니 그 안에 보얀 먼지가 두껍게 층을 이루고 있었다. 보고는 그냥 신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뒤집어 본 양말도 예외가 없었다. 내친김에 열두어 켤레나 되는 양말을 다 뒤집어 털었다. 세탁물에서 나온 먼지가 양말 속에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흰 양말이라 괜찮은가 싶어도 테이프로 털어보면 여지없이 먼지가 나오니 뒤집지 않고는 못 배겼다. 총 스물네 번쯤 양말 뒤집기 놀이를 한 셈이다.


그때부터 빨아놓은 양말 뒤집어 먼지 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세탁조 청소를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세탁물 넣기 전 먼지 통 비우는 일도 잊지 않고 세탁조 청소도 주기적으로 하며 몇 년에 한 번씩 세탁기를 분해하여 청소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병원 정기검진일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후다닥 집에 돌아와 그야말로 점찍듯 점심을 먹고 병원으로 달음질쳤다. 모처럼 입었던 정장 차림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꺼내 신다 보니 미끄러운 스타킹이 거슬렸다. 급히 건조대에 널어놓은 양말 한 켤레를 걷어다 바꿔 신었다. 그 와중에 양말을 뒤집어 먼지까지 털어냈다.

달음질로 육교를 넘어가는데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숨이 턱에 닿아 헉헉댔다. 그래도 뛴 덕분에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예약 시각에 맞출 수 있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가야 하는 정기검진일은 빨리도 돌아온다. 줄을 서서 접수를 마치고 진료과 앞으로 가니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복도를 서성이기를 한참, 담당 주치의를 잠깐 만나고 이번엔 원외 약국으로 직진이다.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늘 종종걸음이다. ‘천천히’를 붙들고 다니는 데도 그렇다. 몸과 마음이 다르니 그리 빠르지도 않다. 모두 습관이다.


약을 받아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다가 중간에서 내렸다. 반려견 약이 떨어졌다는 게 생각 나서다. 상가 밀집 지역이라 내리는 이도 많고 거리에도 사람이 많다. 건널목 보행 신호등이 켜지자, 사람들이 도로에 가득하다. 모두 나처럼 바빠 보인다. 강아지 약을 사고 돌아서는 나를 간호사가 불러 세웠다. 접수대에서 나온 그녀가 내 앞에서 허리를 살짝 숙이더니 내 바지에서 무언가를 떼어냈다. 택배 송장이었다.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하는 내게 간호사가 말했다.

“괜찮아요. 청바지 디자인 같아요.”


송장에는 우리 집 주소가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내 이름 가운데 글자는 별로 가려져 있으니 다행이었다. 청바지 오른쪽 허벅지에서 사선으로 붙은 택배 송장,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떼어낸 송장을 들고 집에서 이곳 동물병원까지 내가 이동한 동선을 복기해 봤다.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병원과 약국까지 손바닥보다 넓은 송장을 붙이고 다닌 걸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정말 아무도 못 봤을까.


가끔 새벽 배송을 시키며 다회용 가방을 선택했다. 가방의 투명 주머니에 넣어오는 택배 송장을 그냥 버리기에 아까워 먼지 터는 용도로 썼다. 그렇게 몸에 뱄던 습관이 불러온 참사다. 급한 와중에도 양말을 뒤집어 털어 신고 집을 나왔을 테고, 먼지를 털었던 택배 송장은 양말을 신으며 바지에 붙인 채로 집을 나왔을 거였다. 왜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았을까. 굳이 핑계를 대자면 시간에 쫓겨서라고 할 텐데, 옹색한 변명이다.


요즈음은 양말을 털 일이 없다. 고사하던 건조기를 들이고 나서부터다. 처음 몇 번은 미덥지 않아 양말을 뒤집어 확인했다. 깨끗했다. 사람들이 왜 건조기를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다. 편한 것에 길드니 이제 테이프로 먼지 털 일이 없다. 그래도 습관은 버리기 힘들어 사용할 수 있는 택배 송장을 모아두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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