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고 다짐하기에 적당한 날

푸른 뱀의 해를 하루 남겨두고, 붉은 말의 해를 하루 앞두고

by 그설미

을사년의 꼬리를 잡고 4집 표제가 되어 준 춘추벚나무꽃을 보고 왔다. 질러가는 길이 아닌 돌아가서 만난 춘추벚나무꽃. 올해도 시월 초부터 릴레이 하듯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지금도 여전히 몇 송이는 이울지 않고 빛났다. 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는 춘추벚나무꽃은, 올해도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었던 꽃이다.

개인으로나 사회현상으로 볼 때도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을사년이 아니었나 싶다. 지혜와 변화, 성장과 희망을 상징한다는 푸른 뱀의 해를 맞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정리하기에 충분할 수도 있고, 다가올 병오년을 어떻게 보낼 건지 생각해 보기에도 모자라지는 않을 시간이다. 모두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오늘 하늘빛은 친정엄마 말을 빌자면 ‘며칠 굶은 시어미 상이다’. 하늘을 보니, 최근 침상 환자가 된 친정엄마가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이 생각난다.


저 구름 속엔 뭐가 들었다니

바람이 들어 있나

비가 들어 있나

눈이 들어 있나

아이구, 나도 구름이 되고 싶다


저기 나는 건 또 무슨 새여?

저기, 저기 청둥오리가 날아간다

아이구, 나도 훨훨 날고 싶다


모든 게 거짓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지난 11월, 《봄에도 빛나고 가을에도 빛나는》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일 때, 친정엄마의 새로운 생이 시작되었다. “난 집에서 잠자듯이 갈 거”라던,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드라마에 주연과 조연을 맡은 것 같았다. 자식에게조차 부담 주지 않으려던 강건하고 경우 밝던 분이 침상 환자로, 초기 치매 환자로, 아기가 되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번 책에도 엄마 이야기가 네 편이 있었는데,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열두 시에서 한시 사이로 기우는 몸으로 평생 흙밖에 몰랐던 분이, 침대와 한 몸이 되고서는 땅이 아닌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반세기 넘도록 홀로 지낸 집에 지금은 요양보호사가 24시간 상주하고 간호사와 손님이 드나든다. 어르신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요양보호사의 말에 나도 자네 없으면 안 된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는 말 속에는 평생 견딘 외로움이 들어있었을 거다. 밥을 떠먹여 주고 씻겨주고 말벗이 되어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으니 어쩌면, 지금이 엄마의 화양연화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일몰 전 가장 빛나는 노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즈음 엄마는 더 많이 아파하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더 많아졌다. 그것도 해맑고 환한 함박웃음이다.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와 종종, 아니 자주, 다리를 건너거나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작별하는 연습이다.

숫기도 없고 너울가지도 없는 사람이 나를 드러내는 수필을 쓰게 된 동기는 하나였다. 일곱 살에 종기를 앓아 기역 모양의 다리로 평생을 살아온 그분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가고 싶었던 학교 대신 길쌈하고 농사일을 거들며 동생들 등 너머로 익힌 한글로 무엇이든 적바림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불구의 몸으로 서른 살에 남편을 잃고 아이 셋을 키워내느라 잃어버린 당신을 글로 찾아드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글쓰기는 친정엄마가 아닌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일이었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영혼을 기다려준다고 한다. 내 글쓰기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서 ‘호모스크립투스’의 시대라고도 한다. 덕분에 ‘생애 한 권만’이었던 꿈이 현실이 되고 어느새 네 권을 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짐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내게서 떠난 이야기가 부디 종이에 미안하지 않고, 여러 명이 공감할 수 있으며, 몇 명에게라도 위로가 되도록 하자는 마음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17년이 되었다. 15년 이상은 소수의 도반과 합평하거나 혼자서 써왔다. 그야말로 독학(獨學)이고 독학(篤學)이었다. 느릿느릿, 그렇게 수필이라는 한 우물을 판 걸 보면 무엇보다도 수필이 좋았나 보다. 한때는 재미있는 글이나 날카로운 글도 써봤으나, 결국은 나만의 문체로 돌아오곤 해서 지금은 내 깜냥만큼 즐기며 쓰려고 한다. ‘나’는 세상에 하나뿐이니까.

재주가 없는 노력형인 나는 겉절이보다는 숙성한 묵은지 같은 글을 선호한다. 그래서 어떤 글은 몇 년을 꺼내지 못하고 묵히거나 수십 번을 퇴고하기도 한다. 그런 습관은 내 성향도 있겠으나 모두 두 분 선생님 덕분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자마자 겁 없이 등단을 시도했을 때, 설익은 내 작품을 선選해 주신 평론가이신 심사위원 선생님의 말씀은 내 글쓰기의 이정표다. 아마 칭찬이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주제와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철칙으로 여기며 쓰고 있다.

또 한 분은 고전시가론을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다. 모임 후 뒤풀이 장소에서 몇 명의 제자에게 재미로 호를 지어주셨다. 그때 내게 주신 이름이 ‘반유盤流’였다. 퇴계 선생이 도산서원 앞 탁영담에 바위를 보고 지었다는 <반타석>이라는 시에서 너럭바위 ‘반盤’과 물 흐를 ‘유流’를 따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왕 글을 쓸 거면 너럭바위처럼 붙박여 앉아서 물 흐르듯 유려한 글을 쓰라’는 부탁을 부연처럼 달아주셨다. 그 말씀이 내 가슴에 바위처럼 들어앉았는데, 요즘에서야 그때 받은 또 다른 이름 ‘반유盤流’를 꺼내본다.

글을 쓰는 내게는 보이는 모든 게 선생님이다. 느리지만 꾸준히 읽고 쓰는 게 쌓여 선생이 되었고, 자연의 변화도 좋은 선생이었다. 글쓰기 안내를 하고 있으나 그분들 또한 내게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참 좋다.


이태 전에 아파트 19층으로 이사하면서 일출을 자주 본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지금은 ‘OO의 아침’이라는 방을 만들어 저장하고 있다. 해 뜨기 직전의 하늘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하는데, 마찬가지로 해가 막 넘어간 직후의 하늘빛 또한 가장 아름다웠다. 올해는 집 근처 하천에서 바라보는 일몰에 반해서 일부러 해가 지는 시각에 자주 산책했다.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뜨고 지는 해를 볼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가만히 살펴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다.


이제 곧 붉은 말의 해를 맞고 금방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잠시 휴식기를 보낸 춘추벚나무는 봄이 오면, 약속처럼 다시 꽃을 피울 거다. 그러면 나는 오솔길이 닳도록 오가며 꽃을 보러 가서, 고맙다는 말을 되뇌겠지. 그렇게 얻은 힘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천천히 나만의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으며 글쓰기의 뿌듯함을 나누면 좋겠다. 그러려면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의 풍경을 잘 기억해 둬야겠다. 그리고 엄마와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더 많이 웃는 시간을 만들어둬야겠다. 이다음에 조금 덜 슬퍼하며 울더라도 웃을 수 있도록.

을사년을 하루 남겨두고, 병오년을 하루 앞둔 날에.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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