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할배, 할매 나무

율리마을과 나루공원의 수호목, 팽나무

by 그설미

2025년 12월 28일. 푸른 뱀의 꼬리가 사라질 무렵인 부산의 바닷바람은 차면서도 따뜻했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내려간 길이다. 마침, 예식장이 해운대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친구들과 나루 공원을 걷기로 했다.

나루 공원에는 보고 싶은 나무가 있다. 그 나무를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십여 년은 넘은 것 같다. 가끔 명절에 지나가며 보곤 했는데, 어머니가 울산으로 올라가시고는 부산에 올 일이 없어서 볼 수 없었다.




팽나무


몇 년 전 추석 때, 그 나무를 처음 만났다. 일찌감치 음식 준비를 마치고 찜질방에 가던 길이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녹화 테이프를 칭칭 감은 나무는 저녁노을에 물들어 노르스름하게 빛났다. 그 나무였다. 가덕도에서 50km의 바닷길을 돌아 수영만으로 이사 왔다는 팽나무.

이사 비용 이억 오천만 원. 중소도시 중형 아파트 한 채 값은 너끈히 될 가격이다. 도대체 어떤 나무기에 그런 가격이 나올까 궁금했다. 나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이 나무들은 무형의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육로를 이용할 수 없어 바닷길 돌아오느라 어마어마한 이사비용이 들었다는 팽나무. 그 앞에는 가덕도 율리 마을이 고향이며 나무의 나이는 삼백 년이라는 안내문이 서 있다. 가덕도 순환도로 개설에 지장을 주어 이곳으로 옮겼다는 사람의 측면에서 본 소개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지장을 주었다는 것일까.

베어지려는 위기에 처했던 팽나무 주변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일 년 동안 당산나무 편에 서서 지켜 내려 애쓴 마을 사람들과 중재를 통해 이사를 결정한 부산시와 공사 현장 관계자 등. 그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보호용 녹화 테이프가 그동안 상처받은 나무의 몸을 감싼 깁스 같다.

힘들게 옮긴 과정을 기네스북에 올릴 예정이라는 팽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 당산나무 중 하나다. 팽나무는 경상, 전라 지역에서 정자나무와 당산나무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다. 바닷가에서 잘 자라는 데다 생명력 강한 뿌리가 있어 태풍에도 끄떡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가끔 나무를 찾아오는 율리 주민들처럼 팽나무도 가덕도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당산나무라면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도시 한복판이다. 마을을 떠나 그 영험함이 반감되는 것은 아닐까. 고향 떠나 향수병이라도 앓게 되는 건 아닐까. 뿌리는 잘 내릴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팽나무 잔가지처럼 퍼졌다.

노을은, 내 유년의 기억으로는 그리움이다. 그래서 노을에 물든 팽나무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백화점 앞에 서 있으니 고향 동구 밖에 서 있을 때만큼 위엄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건물들의 높이에 눌려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해서일까.

팽나무를 만난 지 세 해째, 해마다 명절 때면 그 앞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그 나무의 가치를 이억 오천만 원이라는 숫자에 맞췄다. 가덕도에서 신령스럽게 받들어지던 나무는 여기서도 보호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터전을 떠나온 자체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나무의 사연을 알고 찾는 사람들은 율리 주민처럼 신령스러운 나무로 바라보기 전에 나처럼 이사 비용부터 떠올릴 것이다. 나루 공원이 이 나무들의 새 주소지만 아직은 공원 한쪽에 셋방들 듯 어정쩡하게 서 있다. 매연과 소음 속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자라는 것은 고사하고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잃지나 않고 잘 견뎌내 줄까.

이 시대에는 나무들도 사람만큼 옮겨지는 일에 익숙하다. 숲속에 나무들은 자꾸만 도시로 뽑혀 내려오고 사람들은 반대로 숲으로 들어간다. 아파트라는 삭막한 콘크리트 집의 정원수로 심기 위해 뽑은 나무들은 주로 밤에 옮겨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낮에 옮겨지는 큰 나무의 꽁무니를 따라간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도 구원의 표시처럼 흔들리던 잔가지의 환영이 오래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싶지만 이제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 아닌 곳이 더 많지 않은가.

한밤중에 다시 팽나무 앞을 지나 형님 댁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 어귀 당산나무를 대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를 올려다봤다.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은 팽나무가 가치라는 튼튼한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닐지. 점점 멀어지는 팽나무에 당당하게 잘 살라는 기원의 눈길을 담아 보냈다.

집 근처에 새로 조성되는 공원에 얼마 전부터 도로 경계석을 쌓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키 작은 관목을 심는 것은 눈에 띄지 않아 몰랐는데 키가 훤칠한 큰 나무를 심는 날은 시선을 끌었다. 늘씬하게 뻗은 줄기와 가지가 우아한 데다 건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나무를 넋 놓고 바라봤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면 저 나무 중 몇 그루는 뽑히고 말 것이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죽거나 병들어 뽑히고 그 자리엔 또 다른 나무가 자리를 잡는 것을 자주 보았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이나 나무나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요즘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의 이사가 사람만큼 빈번하다. 제각기 장소는 달라도 자기 자리에서 옮겨지는 일은 사람이나 나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저기로 옮겨지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바닷가 나루 공원에 서 있던 두 그루의 팽나무가 생각난다.

올 추석에는 수영만의 비보림(裨補林)으로 우뚝 선 할배, 할매 팽나무의 웃는 얼굴을 보러 가고 싶다.

201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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