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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Mar 20. 2019

자기소개 글을 통해 생긴 일.

2019년 1월 2일. 우아한형제들(이하 우형)에 입사했다.


NEXT에 입사한 것이 2012년 9월이니 거의 6년 만이다. NEXT가 교육 기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 회사로의 이직은 2010년 4월 이후 거의 9년이나 되었다. NEXT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살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아무리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라 하더라도 회사는 회사인지라 입사 후 몇몇 활동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의해 강제하는 이런 활동이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지만 '어차피 참여할 것이라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라 생각하고 참여했다. 그로 인해 느끼는 몇 가지 일상을 공유해 본다.


우형은 입사를 하면 1, 2주 이내에 전사 직원들에게 자기소개 메일을 보내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입사 후 자기소개 메일을 보낸 적은 없었다. '직원 수가 천명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소개는 의미가 있을까?',  '직원 수가 적을 때는 분명 의미가 클 텐데 지금도 의미가 있을까?', '다분히 형식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무엇인가 시키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도 되련만 꼭 의심해 보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의심하는 습관이 좋을 때도 많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피곤한 면도 많다.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이왕이면 나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기로 했다. '어떤 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까?', '대부분의 자기소개가 취미를 위주로 작성되어 있는데 나도 같은 형식으로 작성할까.'라는 생각을 하다 내가 교육자로서 추구하는 방향, 내가 지향하는 삶, 나 자신의 성향을 보여주기로 했다. 나를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다른 사람과 더 깊이 있는 소통을 만들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끝에 쓴 나의 자기소개 글이다.



안녕하세요. 교육코스개발팀에 합류한 박재성입니다.


교육코스개발팀 생소하죠? '교육코스개발팀'은 개발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올해 우아한형제들에 새롭게 탄생한 신생팀입니다(팀 소개 문구 잘 만들어 준 원미님에게 감사).

저는 12년 동안 개발자의 길을 걷다 프로그래밍 교육에 뜻을 품고 넥스트(네이버에서 설립한 소프트웨어 교육 기관)에서 5년 동안 교육자로 살았습니다. 아쉽게도 넥스트가 문을 닫아 교육자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개발자의 삶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는데요. 교육자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살아가는 의미와 보람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자의 길을 다시금 걷고 있습니다.


반란군을 키우는 포비

제가 추구하는 교육과 살고 싶은 삶의 의미를 담아 제 책상의 소개 문구를 위와 같이 정했어요.

저는 반항아적인 기질이 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넥스트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던 어느 날 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이 고구려 시대에 태어났으면 반란군이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기분이 상하기보다 나를 잘 표현한, 나를 잘 이해하는 문구라 생각해 '반란군'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반란군'을 키우는 교육자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큰 욕심부리지 않고 1년에 한 명의 '반란군'이라도 발굴하고 키워내고 싶네요.


포비는 제가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영어 닉네임입니다.

포비는 미래소년코난의 친구 포비(뽀로로의 포비를 생각했다면 당신은 젊은 사람)입니다. 저는 미래소년코난의 친구 포비처럼 때 묻지 않고 순수함과 저돌적인 모습을 간직하며 살고 싶은 바람이 있어 정했는데요. 하지만 포비만큼의 순수함을 가지고 살기가 쉽지 않네요. 어차피 바람은 바람일 뿐이니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해봅니다.


외향성 점수 8점

제가 어느 교육을 받을 때 저의 성향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요. 저의 외향성 점수가 100점 만점에 8점이 나왔어요. 저도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네요.

저도 한 때는 외향적인 성향이 되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얼굴 잘 생기고, 외향적인 성향만 인정해주는 쓰레기 같은 세상"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됐는데요. Quiet라는 책을 읽으며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불확실성이 높은 문제들이라 생각하는데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큰 기여를 하리라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자뻑만 늘어나네요. 젊은 시절 이런 인간들 정말 싫었는데 말이죠.


저에 대한 소개 글이 너무 진지해졌네요. 맞아요. 제가 좀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교육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글귀로 제 소개글을 마칩니다.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자

--- 박웅현의 여덟 단어 중에서


우리 모두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뭐 그렇게 산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자기소개 글을 보내고 몇몇 분에게 환영의 메시지도 받았다. 자기소개 글의 의미는 여기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소개 글이 회사 생활을 지속하면서 계속해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에피소드 하나

좋은 SW 교육자를 키워라. 글에서 언급했듯이 우형 대표로 과기정통부에서 주관하는 "SW 인재 부국(富國)을 위한 100분 토론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회에 참석할 때 나 혼자 참석하지 않고 대외협력팀 분과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 앞의 자기소개에도 있지만 외향성이 낮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내 시스템에서 이름을 검색했더니 입사할 때 작성한 자기소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자기소개 글을 읽다 보니 농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지금은 대외협력 업무를 맡고 있단다. 나도 농학과를 졸업한 후에 개발자,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서로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택시가 아닌 타다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규제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전공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야기까지 나누다 보니 과기정통부에 도착해 있었다. 한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눈 후 제법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에피소드 둘

우형은 매달 우아한런치라는 시간을 가진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장을 만들기 위함이다. 자신과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들(어떤 경우 완전히 없는 경우도 있다.) 4명을 무작위로 매칭해 점심 식사를 같이 한다. 다른 날은 점심시간이 1시간이지만 이 날은 대화를 장려하기 위해 2시간의 점심시간과 일인당 만원의 점심 비용을 지원한다.


3월 초에 우아한런치를 했다. 4명이 한 조로 배정됐는데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졌다. 감사팀에서 일하는 6년 차 친구, 영업팀에서 일하는 2년 차 친구(첫 직장이 우형이다.), 20년 차의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전향한 나. 이렇게 3명이 한 조가 되었다. 명단을 받았을 때의 나의 첫 느낌은 '점심시간이 참 힘든 시간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문제가 아니라 2년 차 친구는 어떠했을까? 한 명은 그렇지 않아도 어딘가 모르게 거부감이 있는 감사팀의 팀원, 또 한 명은 20년 경력에 이사라는 직함까지 달고 있는 사람.


이런 조합의 세명이었지만 우리는 두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공통분모가 없을 것 같은 세명의 조합이었지만 공통분모가 있었다. 공통분모와 관련해 후배는 자신의 현재 고민을 털어놓고,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이 부족해 조만간 다시 한번 만나기로 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식사 후 회사로 돌아오면서 2년 차 후배가 한 마디 했다. "자기도 내향적인 성향인데 외향적인 성향처럼 보이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이사님 자기소개글 보면서 자신도 내 색깔을 유지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내가 자기소개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을 알아가려고 했듯이, 이 친구 또한 나를 알기 위해 자기소개 글을 읽고 왔구나.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강요하는 일은 하기 싫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다. 하지만 가끔은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했던 경험 때문에 새로운 배움과 경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나만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지금까지 익숙하던, 습관적으로 행하던 틀을 깨 보는 것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시야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나는 끔찍이도 누군가 강요하는 것이 싫지만 나 또한 경력이 쌓이고, 리더가 되면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위치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거부감을 줄이면서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가 내 삶의 큰 화두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회가 되면 이 주제로 글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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