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과기정통부에서 주관하는 "SW 인재 부국(富國)을 위한 100분 토론회"를 다녀왔다. 일단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은 그렇다 치고 토론회에 참석하는 구성원들을 보는 순간 이 사람들이 모여 토론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삼성전자 전무, LG CNS 대표, KCC 정보통신 대표, 네이버 랩스 대표, 국민대학교 학장 등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들이 모여 좋은 SW 인재 육성과 관련한 토론을 한다니...
역시나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 토론회의 목적은 좋은 SW 프로그래머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장관이 교체되기 전 치적을 쌓기 위함이었다. 예상한 결과가 현실이 되는 순간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이 글을 쓰게 됐으니 아주 의미가 없는 시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 또한 이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페북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 글은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정리한 내 생각을 정리해 봤다. 토론회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몇 마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토로일 수도 있겠다.
2019년 우아한형제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일반 사용자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뽑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취업자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순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보려 한다. TV 토론에 나오는 것처럼 데이터 기반이 아니라 교육자로 살고 있는 나의 감에 의존한다.
며칠 전 컴공과 인기 의대 넘본다와 같은 글이 기사로 나왔다. 맞다. 최근 컴공과에 대한 인기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비전공자 중에 프로그래머로 도전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다 프로그래머로 전향하려는 사람들 또한 상당히 많아졌다. 점점 더 좋은 인재들이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알파고 이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면이 있고, 다른 분야에 비해 취업이 잘 되는 것 또한 주요한 원인이라 생각한다.
좋은 인재를 배출하는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좋은 인재들의 관심과 참여, 좋은 교육, 현장의 좋은 개발 문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이 세 가지 중 "좋은 인재들의 관심과 참여"는 이미 진행 중이다. 더 이상 프로그래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2019년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이 친구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여야 한다. 즉, 질문을 "어떻게 좋은 SW 프로그래머를 양성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좋은 SW 교육자를 발굴하고 양성할 것인가?"로 바꿔야 한다.
나는 6년간 SW 교육자로 살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로 의미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뛰어난 SW 교육자가 너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역량 있는, 뛰어난 현장의 프로그래머들이 후배를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교육자로 전향하는 수가 너무 적다. 현재 프로그래머로 인정받고, 처우도 점점 좋아지는 상황에서 굳이 교육자로 전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자체도 상당히 흥미 있고, 재미있는 분야인데 굳이 사람을 상대하는 힘든 교육자로 살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보다 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교육자의 처우가 개발자에 비해 그리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명감만 가지고 교육자로 살면서 후배들을 키우며 살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정부에 제안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SW가 정말 중요하다면 "좋은 SW 교육자를 발굴하고 양성하는데 투자하라."라고... 교육자들의 처우를 좋게 만드는데 돈을 투자하고 정책을 펴라.
좋은 SW 교육자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정부, 기업, 학교가 같이 협력할 때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좋은 SW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진행했으면 하는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보다 낫다.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주도할수록 SW 교육자들의 설 자리는 줄어든다. 오히려 SW 교육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너무 극단적인가? 맞다. 극단적이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SW 교육을 주도할 것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그래도 투자할 계획이라면...
대학과 민간에 많은 부분을 위임하라.
정부는 미래 핵심 산업이라는 명목 하에 SW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실패하고 있다. 최근 정부 주도하에 SW 아카데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다양한 교육 과정이 있는데 또 하나를 추가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주도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SW 교육에 투자할 계획이라면 돈만 투자하고 빠져주는 것이 SW 교육의 성공을 높일 수 있다. 돈만 주고 빠져라. 교육의 성과가 나타나는데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실패하고,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찾아나갈 수 있는 시간을 줘라. 이 과정 속에 다소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어느 분야보다 불확실함이 큰 분야이다.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을 찾아 나가는 과정 속에서 불합리함과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SW 교육에 투자한 돈의 불합리함과 비효율에 비하면 훨씬 적은 비용일 수 있다. 지금까지 실패하지 않았는가? 기존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혁신적인 교육 또한 없다.
국비 지원 교육 과정에 대한 재검토
SW 교육 관련해 수많은 국비 지원 과정이 있다. 하지만 좋은 프로그래머를 배출할 수 있는 양질의 국비 지원 과정은 많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지원하는 교육비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교육자의 강사료는 적고, SW 교육 품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국비 지원 교육 과정에서 배출하는 학생 수에 집중하기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집중해 개선해야 한다.
교육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생활비 대신 일정액의 교육비를 받아라. 좋은 교육이 되려면 같이 수강하는 친구들의 열정이 중요하다. 교육이 목적이 아닌 생활비가 목적인 친구들로 인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과정에 참여하는 수강생의 질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SW 중심 대학에 대한 재검토
이번 토론회에서 SW 중심 대학을 5개 정도 늘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SW 중심 대학이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SW 중심 대학의 수를 늘리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는 것처럼 비쳤다. SW 중심 대학이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 지원을 중단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SW 중심 대학이 성공하려면 SW 중심 대학에 참여하는 교수진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나는 SW 중심 대학에 교수로 참여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본 적이 있다. 3년(또는 5년 계약직), 내가 받고 있는 연봉보다 낮은 수준으로 제안을 받았다. 현장의 좋은 프로그래머를 교수진으로 채용했을 때 SW 중심 대학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 이런 처우로는 교수진으로 참여할 현장의 프로그래머들은 거의 없다. 진정 SW 중심 대학이 성공하려면 교수진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SW 중심 대학의 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현재 지정한 학교들만 제대로 운영해도 역량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상당수 배출할 수 있다. SW 중심 대학 수보다 진행하는 과정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는지를 어떻게 검토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이다.
교육자로 6년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프로그래머의 삶을 살 때는 교육자들에게 참 욕도 많이 했다. "정말 그 정도밖에 못 가르치나?", "나 같으면 짧은 시간 내에 역량 있는 친구들 키워낼 수 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이런 생각이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역시나 밖에서 볼 때는 쉬워 보인다. 교육 속으로 들어와 보니 실상은 많이 달랐다. 프로그래머일 때 경험했던 단기간의 교육과 교육자로 살면서의 장기간의 교육은 완전히 달랐다. 지속적으로 동기 부여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고, 학생들의 성장 속도는 생각보다 더디었다. 교육 과정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고통과 좌절, 가끔씩 느껴지는 기쁨과 보람. 이 둘 사이의 절충안을 만들어가며 교육자로 살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프로그래머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고 재미없는 삶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교육자로 살 계획이다. 가끔씩 느껴지는 기쁨과 보람이 내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자로 살기 전에는 교육의 참 맛을 느끼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재미있고, 처우도 좋은 프로그래머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는 선택은 쉽지 않다. 따라서 교육자의 길을 걷을 걷기로 선택 하는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현재보다 훨씬 더 좋은 처우, 교육자로 참여했다가 다시 프로그래머의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선배 교육자의 멘토링과 같은 다양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어떻게 좋은 SW 프로그래머를 양성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좋은 SW 교육자를 발굴하고 양성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라. 지금과 다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SW 교육자가 많아지면 좋은 SW 프로그래머는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