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성 Mar 09. 2019

흐르는 강물과 같이 살자.

어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30년을 보지 않고 살았다. 2년 전 겨울, 중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동안 망설였다. 30년을 보지 않아도 아쉬움 없이 살았는데 지금 보면 할 이야기나 있을까? 괜히 서먹하고, 어색하지나 않을까? 사회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도 많아지면서 힘든 상황들이 생기는데 굳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우려보다 30년이 지난 친구들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난 참석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중학 시절의 내 모습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어제 동창 모임에서 만난 친구에게 오늘 전화가 왔다. 내가 중학생 때 좋아했던 여자 친구다. 좋아한다는 마음만 비쳤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그런 친구다. 그 흔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2년 전부터 참석한 동창회 이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을 잡는다. 그냥 잘 살아가고 있음이 반가워 자연스럽게 손을 내민다. 그 나이 때는 대부분 그랬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유독 더 심했다.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워낙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업 중 발표는 끔찍했다. 정말 싫었다. 대학생일 때는 다음 날 발표가 있으면 너무 긴장해 잠을 자지 못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런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절대로 절대로 교육자는 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로 돈을 버는 그런 직업은 가지지 않으리라 마음먹고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교육자로 살고 있다. 벌써 6년째다. 강단에 설 때면 항상 긴장한다. 하지만 아직도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하교 길이었다. 한 친구가 사과를 샀다.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남을 만큼 빨간 사과였다. 그 날은 왜 그런지 유독 사과가 먹고 싶었다. 사과 한 개에 50원이었다. 하지만 내 수중에는 버스비를 제외하고는 돈이 없었다. 그때의 사과 색깔이 아직도 눈에 선명한 것을 보면 상실감이 컸나 보다.


가랑비가 내리던 버스 안이었다. 교생 실습을 나온 선생님이 반찬 가방을 들어주신다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아계신 선생님께 반찬 가방을 건넸다.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 때문에 나는 15살부터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반찬을 가지러 집에 가는데 그 버스 안이었다. 반찬 가방을 건네고 잠시 후 불안감이 밀려왔다. 빗물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가방이라 밑바닥이 무지 지저분할 것 같았다. 역시나 내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교생 선생님 무릎 위에 놓여있던 가방을 들자 까맣게 자국이 나버린 흰색 치마가 보였다. 무안한 마음에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렸던 기억이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문득문득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강원도 산골 마을의 가난함은 비슷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더 가난했다. 가난 때문이었을까? 다른 무엇보다 돈과 관련해서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내가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목록 1순위는 사업이었다. 나는 절대로 사업은 하지 않겠다. 작년까지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현재 사업을 하고 있다.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업을 하고 있다.


교육과 사업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며 마음을 닫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다.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틀이 깨졌다. "나는 절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하지 말아야지"와 같은 선택이 무의미함을 이제야 알게 됐다. 오히려 이런 제한을 두는 것이 내 사고의 폭을 좁히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데 걸림돌이 됨을 느꼈다.


2018년 1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또 하나의 틀을 만드는 우를 범했다. "사람들 관리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1인 사업으로 마음 편히 살자.", "그 이상의 사업 확장은 하지 말자."와 제한을 두고 시작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그 생각의 틀은 깨졌다. 내가 꿈꾸는 교육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나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꿈꾸고 싶은 목표를 찾아 도전해 보자.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제한해왔던 많은 일들이 한순간에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싫어했던 많은 일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장애물과 한계를 두지 않고 부드러운 유연함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5년, 10년 후, 나는 어떤 생각의 틀을 깨며 살고 있을지 기대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