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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Oct 15. 2015

3. 아무 의미도 없는
그 얼토당토않은 짓

<무의미의미무미의무> 세 번째 밤.


"아무 의미도 없는 그 얼토당토않은 짓,

그런데 바로 그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늘 육십 년쯤 일찍 태어났다면 예술가가 되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던 것이, 오늘날 예술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게 됐는지도 그는 몰랐다. 진열창 만드는 사람으로 변한 화가? 시인? 그것이 아직 존재할까, 시인이? 지난 몇 주간 그를 즐겁게 해 준 것은 샤를이 요새 미쳐 있는 일, 그의 인형극, 아무 의미도 없는 그 얼토당토않은 짓, 그런데 바로 그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 무의미의 축제, 밀란쿤데라 - 


@종로구 / 토요일 오후 문닫은 페인트 가게 앞.


지난 글을 발행하고 난 뒤, 정확히 일주일 사이에 전시 준비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몸은 바쁘게 움직였고 덕분에 브런치에 한가로이 글 쓸 틈을 만들어 내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매주 한 편의 짧은 글을 쓰는 건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수요일마다 발행하겠다고 했으니 억지로라도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을지로 삼화페인트 가게 / 인호랑 함께.


 그동안 우리들은 김도균(KDK) 교수님을 통해 세운상가 4층 특열에 2평 정도 남짓한 작은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고, 건축가이신 김경란(ㅋㅋㄹ)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공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세운상가의 오래된 멋과 새로움이 잘 어우러진 공간으로  <4트ㄱ004_ㅋㅋㄹㅋㄷㅋ>라는 이름도 지어졌다. 



@손글씨를 쓰고계신 김도균(KDK) 교수님.
@ 4트ㄱ004_ㅋㅋㄹㅋㄷㅋ


 세운상가는 일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가올 주말 공사를 위해 작업신청서를 작성하러 세운 상가를 방문했다. 드디어 한 식구가 되기 위한 첫 발걸음. 그러나 그곳은 생각보다 만만찮은 포스를 지니고 있었고... 영화에 나올법한 지하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야 무사히 작업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층층이 경비 아저씨들이 계신 것은 물론 2층엔 제법 계급이 높아 보이시는 대장님도 계셨고, 각 층마다 상가 반장님이 따로 계셨다. 모두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 미션 클리어. 



@작업신청서를 설명해주시는 아버님


@지하실 / 땀 삐질삐질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작업 신청서 도장 받기.


@ 개봉박두 -


@ - 하려다 퇴근



                           일요일



@불꺼진 일요일 오후의 세운상가


 문 닫은 일요일 세운상가의 모습은 꽤나 조용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 공사를 하면서 일 년 동안 들을 잔소리를 경비아저씨들에게 몰아서 듣기도 했다. 아저씨들은 자신들의 평화로운 공간을 침투하는 가난한 우리들의 존재를 잠시  적대시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영화 이끼가 생각났다. (그분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스며들어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세운상가 4층 특열 004호. (공사전 모습)
@열심히 칠 작업중
@세운상가 4층 특열 004호. (70% 정도 완공된 모습)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완성. 웃고계신 김경란 건축가 쌤. 


 계속되는 경비 아저씨들의 잔소리에 마음은 불편했지만, 완성되어가는 공간을 보며 호퍼가 생각나는 분위기에 취해 그런 것쯤은 금방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웃었다. 원두막 같아 보여 수박이 먹고 싶기도 하고,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교회도 생각나는 그런 공간으로   재탄생된 <4트ㄱ004_ㅋㅋㄹㅋㄷㅋ>. 오래되어 색이 바랜 시트지와 아담한 사이즈의 비상구 안내 등은 그 모습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는데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적인 새로움이 꼭 좋은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다가오는 졸업, 불확실한 미래

@신촌역 5번 출구 뒷 골목. B612


 공사가 끝나고 사진과 94학번 선배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카페를 방문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김없이 졸업하고 뭐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역시 이번에도 대답을 쉽게 꺼내지 못해 망설였다. (이번 달에만 세 번째 받는 같은 질문.) 사실 미리 계획을 미리 세우고 준비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남들보다 항상 느렸던 것 같다. 조금 늦더라도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기를 바라  볼 뿐이다. 


@교수님의 후배이자 매형, 교수님 누님의 남편이신 우리의 선배님. 복잡복잡. 파니니 폭풍 흡입.


 졸업시기에 꼭 찾아오는 고민과 질문들. 그러한 막연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다. 조금 더 가방끈을 늘려 고민의 시기를 가지고자 시작했던 마지막 학사학위 과정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 학기 때는 익숙하지 않은 수업에 지쳐 힘들었고, 처음으로 내 선택이  잘못되었나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좀처럼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등록금이 좀 비싸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는 예대 노동당 친구들을 조금 더 알게 되어서 든든하고 말도 안 되는 고민 상담과 땡깡 부릴 수 있는 교수님들이 가까이 계신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아니라 묵묵히 들어주시고 때론 단호박 같기도 하신 나침반 같은 존재.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래서, 

요즘은 인호에게 종종 이런 말들을 자주 내뱉곤 한다.


"좋은 시절 다 지나 가고 있네~" 








                                                           알려드립니다.



 우리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천가방 덕후 심은주 양이 드디어 가방을 골라, 포스가 넘치는 사장님이 계신 출력소에 무사히 인쇄를 넘겼고 오늘 50개 모두 무사히  프린트되어 도착했다고 합니다. 포장까지 정성을 들여 완판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에코백 투자를 맡은 사장님이  흐뭇해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실은 하나도 안 팔려 빚 더미에 오를까 봐 걱정 중). 가격은 12000원으로 책정하였고, 넘버링 까지 무사히 마쳐 모델과 함께 제품& 상세컷 촬영 후  월요일부터 페이스북과 구글 페이지를 통해 번호 예약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돈 아깝지 않게 정성껏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https://www.facebook.com/Factory64)


@방산시장 한미스크린 (사진/심은주)
@실크스크린 장인. 여유 넘치시는 사장님  / 사진 천가방 덕후 페북지기 심은주 제공



              



이번 프로젝트 전시의 로고.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세 번째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



글을 쓰면서 찾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기록하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 함께 하는 것.

매주 수요일 발행하려고 노력 중이나 목요일 새벽에 겨우 발행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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