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사진관 : 내 손안의 작은 기록들
외장하드에 쌓여가는 기록물들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쌓이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질수록 어느샌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거의 없음을 인지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헌데 그렇다고 손에 잡히는 사진으로 인화해둘 만큼 그리 부지런한 성격이 아님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난 꾸준하지 않다. 흥미가 당기는 일이 생기면 푹 빠져들었다가도 끝이 나면 금세 뒤를 돌아보지 않는 그런 부유하는 삶의 경계에 가까운 편. 시작했다가 그만둔 것들의 리스트를 나열하자니 벌써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예술대학을 다니던 학창 시절 한 교수님이 나에게만 과제를 내 주신 적이 있다.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사진 1만 장을 찍어 볼 것. 나는 의기양양하게 필름으로 기록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 당시에 무엇을 찍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필름은 남아있지만 굳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다만 어렴풋이 숫자만 채우기에 급급했던 내 모습의 잔상이 남아 있을 뿐.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지만, 어영부영 그렇게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채 졸업까지 해버렸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순간의 기분에 잘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끝까지 오기 있게 하는 그런 것들을 나는 잘 하지 못한다. 이걸 왜 하고 있지? 라며 스스로를 자주 합리화하며 끝내지 못한 것들이 참 많다. 그런 나의 삶의 태도는 여전한지 졸업 후에도 부유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량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불안함이 밀려오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종종 물 위를 표류하듯 둥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내는 순간들이 있는데 나이를 먹어서 인지 문득문득 파도에 휩싸여 영영 떠내려가버리진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들도 하곤 한다.
길을 잃었을 땐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걸까 노를 저어 나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야 하는 것일까. 조심스럽게 핸드폰 사진첩을 뒤척이며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