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Oct 29. 2015

5. 고독의 취향

<무의미의미무미의무> 다섯 번째 밤.

"그는 성공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시샘을 불러일으킬까 걱정했고,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지만 추종자들을 피했다."


다만 라몽은 나르키소스가 아니라는 점이 달랐다. 그는 성공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시샘을 불러일으킬까 걱정했고,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지만 추종자들을 피했다. 사사로운 생활에서 몇 차례 상처를 입은 뒤, 특히 퇴직자들의 음울한 무리에 합류해야 했던 해부터 이런 조심성은 고독을 즐기는 취향으로 변했다.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



석양 너머로 불안이 드리운다. 그리고 이내 찬란했던 순간들을 잠식해온다. 

@세운상가에서 바라보는 석양


 첫 번째 전시가 그렇게 끝나간다. 첫 전시를 무사히 끝내 가는 지은이는 오늘도 세운상가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과 반복되는 일상.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또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자질구레한 감정들은 나중에 본인에게 듣기로 해야겠다. 말보다 조금 더 솔직한 감정을 녹여낼 수 있는 글을 통해서 혹은 이 공간을 통해서. 그 감정이 무엇이든. 궁금하다.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지은이


 예전에 인도 봉사를 다녀와 전시를 하면서 느꼈지만, 전시장을 계속 방문하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누군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어떤 날은 방문객이 많기도, 또 어떤 날은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또 그들을 배웅하면 밀려오는 아주 약간의 허전함과 공허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뒤늦게 방명록을 확인하며 마주하지 못하고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확인하고, 내심 미안한 감정도 함께. 


@How to die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어느샌가 부터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것이 나에게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교수님께 듣게 된 이야기지만 한 번 초대를 안 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초대장을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서운한 감정을 느끼게 될 순간들.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된 이후의 나의 선택은 초대장을 넌지시 인터넷에 올려놓고 방관하는 측에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올 사람은 오겠지.. 하면서 아니 사실 와주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런 사소한 고민들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월요일, 작품 철수 / 첫 번째 전시 종료.


 또 다른 월요일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요일에 간격을 두고 작성했다.) 첫 번째 전시를 담당했던 지은이가 퇴장하고 철수와 동시에 금보가 셋업 할 차례. 지은이의 전시 철수는 금보가 도와주기로 했고, 나는 오후 느지막하게 금보를 도와주러 세운상가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우리의 홍보와 에코백을 담당하고 있는 은주도 와 있었다. 굳이 먼길 오지 않아도 될 텐데, 일손이 필요할  때마다 자주 찾아와 우리를 도와주곤 한다.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작품 셋업, 두 번째 전시 셋업.


 수업을 마치시고 교수님 께서도 예대 후배들과 함께 세운상가로 오셨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가끔 교수님과 우리들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참 재미있다. 학교의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큰 동지애.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함께  공존한다. 다른 학교 학생과 교수님들이 예대에서 학생과 교수님들이 함께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종종 접하게 된다. 


@전시 셋업을 도와주었던 15학번 후배님들
@노하우 전수중이신 김도균(KDK) 교수님


 전시 셋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항상 그렇듯 어김없이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예상보다 액자의 프레임이 주는 느낌이 강해서 사진을 다 빼고 디스플레이 방식을 변경해 보기도 하고, 벽으로 세워져 있는 합판에 어떻게 붙일 것인지에 대한 방법도 다시 고려해야 했다. 덕분에 금보는 액자 값과 끈끈이를 구입하게 되면서 비싼 수업료를 내야 했다. (그러고 그는 좋은 경험을 했다며 돈을 아끼지 말라는 덕담을 남겼다.ㅋㅋ) 



@두 번째 무의미, 김금보.
@작품 디스플레이


 전시 셋업을 끝내고 멍하니 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게도 월요일에 수업이 없어 셋업 할 때마다 함께 하고 있는데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때마다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유용한 방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작품 제작하면서 느끼지만,  칼질부터 시작해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절대로. 그리고 고생한 만큼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금보의 든든한 동기들


 셋업이 끝나고 난 다음 날, 화요일. 두 번째 무의미 전 오프닝 타임이 다가왔다. 첫 번째 전시엔 간단하게 맥주와 탄산수를 준비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없이 가기로 했기 때문에 조금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서있기 어색할 땐 뭔가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 



@지각 반장 다운 킴.
@희주의 선물. 국화와 소주.


 일찍 나오려다가 깜빡 잠들었다는 반장! 다운이가 도착하고 희주가 센스 있는 선물과 함께 전시장에 도착하였다. 희주는 졸업 논문으로 우리 전시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였는데, 작은 사례로 들어가겠지만 나름 기대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시선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작품을 구매하시는 교수님
@작품 판매 현황


 금보의 데이터 복구 비용과 (전시를 보시면 아신다.) 액자 값을 위한 작품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 작품당 10,000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이 수익료는 알바하다 날린 돌 사진 복구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죽음을 맞이한 사진 데이터, 환생을 고하노라.

 



전시 시작 후의 첫 수업. 4시간을 넘게 힘차게 달렸다. 언제나 맛이 좋은 Made in KDK 커피와 함께.

@다운 킴 발표 중.


 돌아오는 주말만 넘기면 벌써 두 명의 전시가 끝나간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휙휙. 나름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분명 미흡한 점들도 있었을 테고, 전시를 끝낸 친구들의 이야기, 아직 전시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계획 같은 것들을 나누고 공유할 시간들이 필요했다. 카카오톡으로 항상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언제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대화들은 그저 흘러가는 숫자들에 불과하다.


@예전에 찍은 전시 순서를 나타내는 단체사진. 돌아와 여진아.


 벌써 두 명이지만, 따지고 보면 아직 절반도 안 왔다. 뭔가 끝나가는 듯한 아쉬운 기분이 자꾸 드는 것은 왜 일까.

 

 오늘 오전 커뮤니티 디자인 수업에서도 배운 것이지만, 시작을 이러 이러!@#!% 해서 시작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과정과 과정 속에서 변한 것들, 그리고 그 결과가 어찌 나왔든지 간에, 이러한 일련의 시간들을 잘 이어 단단하게 조이는 마무리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들 끝까지 잘 부탁합니다. :! 



(촬영 최인호, 네 번째 무의미)







이번 프로젝트 전시의 로고.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다섯 번째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



글을 쓰면서 찾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기록하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 함께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게 생겼다는 것.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매주 수요일 발행하려고 노력 중이나 목요일 새벽에 겨우 발행되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4. 쇼펜하우어가 생각한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