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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만 제이 Sep 21. 2020

음악(音楽)은 있는데, 왜 어락(語楽)은 없나요?

외국어야~ 놀자~~~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have another soul."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새로운 영혼을 얻는 것이다.
(Charlemagne 샤를마뉴, 프랑크 왕국 2대 국왕)


나는 언어 혹은 외국어를 좋아한다.

지금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의 4개 국어는 비즈니스가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구사할 수 있고, 60세까지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중 최소 2개는 더 익히고 싶다.

그런데, 여러분이 들으면 재수 없다고 느끼실 수 있으나, 나는 외국어를 "공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한 적도 없고, 누가 시켜서 한 적도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취미처럼 즐기면서 해 왔다.


그래서, 어느 날 불현듯 궁금해졌다.


"음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 하여, 음악(音楽)이라고만 부르지, 음학(音学)이라고 하지 않는데, 어학(語学)은 왜 어락(語楽)이라고 하지 않는 걸까? 말은 공부로만 해야 하고, 즐기면 안 되는 것인가?"


어학도 문법이나, 발음 규칙 등 복잡한 게임 룰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음악은 "3도 화음" "장조" "단조" "안단테" "어쩌고" "저쩌고"... 어머님이 평생 피아노 교사를 하셔서, 태어나서부터 서울로 취직해서 대구 집(집에서 학원을 운영하셨다)을 떠날 때까지 매일을 피아노 소리를 듣고 살았던 나 조차도 이해 못하는 음악이론이 끝도 없이 많은데, 음학(音学)이라는 단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피아노 덕분에 빵을 먹을 수 있었다...

음악이든 음학이든 영어로 하면 "Music"이고, 어학이든 어락이든 영어로 하면 "Language"이니, 즐기는 음악, 공부하는 어학이라고 정의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한자어를 만들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의 음악과 어학이 된 거 아닌가...라고 그냥 혼자 멋대로 생각해 본다. 아무 과학적, 인문학적, 역사적 근거는 없다. 누군가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




지금이야 영어 조기교육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영어태교를 시작하니, 요즘 학생들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내 또래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I am a boy." "You are a girl."을 처음으로 배운 세대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예문이 많았다. 눈으로 보면, 남자애 인지 여자애 인지 모르기가 오히려 힘들 텐데, 자기 입으로 앞에 있는 사람한테 "나는 소년이야. (소녀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평생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일제시대 이야기도 아니고, 불과 30여 년 전은 그랬었다.


중학교 입학식 1주일 전부터, 갑자기 어머님이 뭐가 답답해졌는지, 피아노 수업을 마치신 후에 밤마다 나에게 영어 기초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스파르타식 긴급 영어 특훈은 일주일 내내 매일 밤 이어졌고, 나는 G(지)와 O(오)가 붙으면, "지오"가 아니고, "고"로 발음한다, T와 H가 같이 붙어 있으면 (Th), 혀를 살짝 깨물듯 "쓰" 나 "드"로 발음한다... 등등... 도대체 코 크고, 피부 허어연 사람들은 왜 혀까지 물어가며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너무 궁금할 정도로, 희한한 글자와 희한한 발음을 밤마다 졸리는 눈을 비비며 외워야만 했다.


그렇게 영어 1주일 스파르타 캠프는 끝나고, 드디어 생애 첫 영어수업.

아주 우연한 기회로 나는 한순간에 영어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작지만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선생님 : "VIP"의 약자가 뭔지 아는 사람?

반 친구들: (모두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 "

나 : (손을 번쩍 들고) "Very Important Person 이요."

반 친구들: "자는 뭐꼬? 우에 저런 걸 다 아노?" (번역: 제는 뭐야? 어떻게 저런 걸 다 알지?)


이날, VIP 외에 "전자오락이 영어로 뭔지 아는 사람" 등의 질문에 나 혼자 손들고 답을 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1주일 영어 특훈 중에 어머님이 희한하게 VIP, Video Game 등의 단어도 몇 개 알려줬는데, 왠갖 짜증 속에 "엄마, 내 이제 잘란다. 이거 외아가 뭐하노. 시험에 안 나올끼다. VERY IMPORTANT PERSON!! 됐제!? 내 잔데이!!" 하면서 잠결에 화내면서 읽었던 그 몇 개의 단어가 첫 영어시간의 선생님 질문으로 나온 거다.


이 작은 해프닝이 이른바 나를 영어 덕후로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어 선생님이 교사 부임 첫해인 젊은 여선생님이었다는 것도 내 영어사랑의 한 (불순한) 동기였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굿모닝 팝스를 듣기 시작했고, 동네 형이 쓰다가 대학 진학으로 버릴 거라는 "윤선생 영어" 교재와 테이프를 모두 물려받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나중에는 중학생 주재에 어머님이 대학시절 보시던, TOEFL 교재까지 사전을 뒤지며 해석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몰랐던 단어들을 정해진 게임 룰대로 잘만 나열하면, 외모도, 종교도, 문화도 나와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나는 영어시험만큼은 거의 만점을 유지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영어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 동아리에는 영어로 매주 발간하는 동아리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 편집장으로 동아리 회원들이 작성한 영어 원고의 교정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독일어를 제2 외국어로, 대학시절에는 중국어도 교양수업을 중심으로 약 2년간 공부했었다. 독학으로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공부했었는데, 혼자 책 보고 진짜 공부처럼(?) 언어를 어학으로 익히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영어처럼 시험성적이 나오는 것도,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프랑스 여자랑 사귀어야겠다는 야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독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초급 수준에서 아직 멈춰있다. 아니 이제는 다 까먹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어는 내가 쓴 다른 글 "Connecting the dots..." (https://brunch.co.kr/@jay0509/5) 에도 잠시 소개했지만, 2001년 히로시마 대학 유학시절에 처음 접했다. 나조차도 이제는 믿기 힘든 20년 전의 기억이지만, 일본어는 거의 "올드보이" 스타일로 익혔다.


히로시마 대학은 이름만 "히로시마" 대학이지, 히로시마시에서 열차로 1시간 떨어진 사이조(西条)라는 완전 촌동네에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히로시마 대학 주변에는 논밭, 대형슈퍼 하나 (지금은 망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야생개(野犬) 때거리 밖에 없었다. 교환학생을 지도해 주시던 지도교수님이, 첫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대학은 전국에서 자살률 2위, 이성과의 동거율 2위이다. 할 일 없고 심심하면, 자살하지 말고, 차라리 짝을 찾아서 동거를 해라. 그리고, 장 보고 오는 길에 야생개 때거리를 만나면, 무조건 다 줘라. 물리면 위험하다. 돈 몇 푼에 목숨 걸지 마라."


첫날부터, 정말 내가 여기 온 게 잘한 것인지, 참 암담했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은 농담이 아니었다. 수업 마치면 할 게 없어서, 하루 종일 조그마한 기숙사 방에서 TV만 끌어안고 살았다. 주말은 거의 잠자는 시간외에 TV 시청이었다. 밤에 나가면 "아우~~~" 하는 야생개 때거리만 득실거리지, 술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어릴 때 한자서예도 하고, 아버지 교육으로 꽤 많은 한자를 읽을 수 있었는데, TV를 보니 출연자가 하는 말을 굳이 자막으로 넣어주는 것이었다. 요즘은 한국 예능프로그램도 재미있는 자막을 장난스럽게 넣어주지만, 2000년대 초반의 일본은 이미 그게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어는 대부분의 명사와 동사가 한자로 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한자가 자막에 나오면, 출연자의 발음과 연관시켜 따라 읽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연예계는 芸能界라고 쓰고, "게이 노우 까이"라고 읽는구나... 그럼, 세계(世界)는 "세까이"라고 읽겠구나... 하는 식이었다. TV를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 형님이 영문도 모른 채 독방에 갇혀, 수십 년 동안 TV를 보며 혼자 익힌 쉐도우 파이팅으로, 독방에서 나오자마자 수십 명의 깡패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유명하다. 히로시마 대학 코딱지 만한 기숙사 방에서 평생 볼 분량의 TV를 1년 만에 다 보고 나니, 어느새 나의 일본어는 상급 수준이 되어 있었다.

올드보이 격투씬, 출처: https://pgr21.co.kr/freedom/39681


인도네시아어는 더 이상하게 배웠다. 2016년 4월에 부임한 첫 사업회사는 회사 내 공식 언어가 영어로 인도네시아 직원들은 안내데스크 아가씨를 포함해 전원 영어가 완전 유창했다. 인도네시아 과외를 신청해서 몇 달 기초를 배웠지만, 쓸 데가 없어 금세 그만뒀다. 회사의 인도네시아 직원들은 워낙에 영어가 유창하고, 주재원들도 인도네시아어를 안 배우니, 내가 인도네시아어로 물어도, 영어로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아예 이해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간 배운 인도네시아어를 연습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인도네시아는 인건비가 싸서, 골프장은 기본적으로 1인 1 캐디, 거기에 대부분 젊고 예쁜 캐디가 많다. 골프 치는 4시간, 나는 캐디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바람은 뭐라고 하느냐" "천둥은 뭐라고 하느냐"... 4시간짜리 밀착 인도네시아어 수업이었다. 마사지는 보통 90분인데, 그때도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허리는 뭐라고 하느냐" "이마는 뭐라고 하느냐"... 내 운전수와는 지금도 많은 개인적인 대화, 인도네시아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길거리 간판이나, 포스터, 상품 브로셔 같은 것을 보면, 구글 번역으로 반드시 의미를 확인한다.

24시간 밀착지도 해 주시는 구글번역 선생님


이렇게 Street Indonesian을 3년간 쓰다가, 2019년 4월 같은 자카르타 내에서 두 번째 사업회사로 전근을 가게 됐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회사 내 공식 업무 언어가 인도네시아어 인 데다가, 회의도 모두 인도네시아어였다. 그러다 보니, 임원급 외에는 영어가 안 통했다. 3년간 골프캐디, 마사지사, 운전수를 통해 야메로(?) 배운 Street Indonesian과는 차원이 다른 비즈니스 인도네시아어가 필요했다. 새로운 업무로 정말 숨 쉴 틈도 없어, 반년간은 엄두도 못 내다가, 인도네시아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2019년 10월경. 정식 레슨을 다시 받고, 제대로 된 인도네시아를 익히기 위해, CNN Indonesia의 기사를 매일 한 기사씩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각종 회의나 거래선과의 상담을 인도네시아어로 하고 있다. 그래서, 주재원 생활이 더블로 즐겁다...


서론이 엄청 길어졌는데 (이게 서론이라고?), 내가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고, 쓰고 싶은 것은 여러 언어를 배우고 습득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언어와 관련해서 지금까지 겪고 생각해 온 왠갓 잡다한 나의 잡념들과 웃기는 에피소드를 "썰"로 한번 풀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재미있고 궁금한 것은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는 하지만, 논문을 뒤져보거나, 근거를 종합해 검증해 보거나 하듯 학술적으로 파고든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의 새로운 브런치 매거진의 글들은 그냥 재미로 한번 들어봐 줄 만한 언어에 관한 "썰"들로 채울 생각이다. 요즘말로 뇌피셜도 간혹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더 웃기는 예를 알고 있다." "그럼, 이건 어떻게 표현하느냐?" 등의 재미있는 댓글은 완전 대환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놀이 (어락)"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0년 9월

자카르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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