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 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
지난번에 소개한 "지구촌 시대, 글로벌 인재는 없다!"라는 글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마치 하나의 작은 동네처럼 작아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에게도 한국이 아닌 더 넓은 세계 무대에서 원하는 꿈을 펼쳐 보일 시대가 왔다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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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은 인터넷은 커녕, 기차도 비행기도 없던 1,200여 년 전의 신라시대에, 해외취업으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해상왕 장보고"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위한 암기를 목적으로 연습장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해상왕 장보고" "해상왕 장보고" "해상왕 장보고"를 반복해서 쓰기는 했지만, 부끄럽게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최근, 최태성 님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읽고, 왠지 모르게 "해상왕 장보고"가 해외취업의 대선배(?)로서 급 친근감을 느끼는 인물이 되었다.
"역사의 쓸모"의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힘"에 소개된 장보고의 일생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9세기의 신라시대, 장보고는 삼국유사에 출신이 미천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어떤 부모에게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낮은 신분, 심지어 이름조차 없었던 흑수저중의 흑수저인 평민 출신으로 태어났다. 당시의 평민은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건 가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장보고는 자신의 신분에 연연하지 않고 꿈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건너간다.
활 쏘는 걸 좋아하고 창검술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인 장 씨로 성을 정하고, 당나라의 용병으로 지원한다. 외국인 용병이지만 연이어 큰 공을 세워, 고위 장교까지 출세하게 되면서, 아메리칸드림 아니... 당나라 드림을 이루어 낸다.
용병으로 당나라에서 입지를 다진 장보고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국제무역을 시작하여, 당나라, 신라, 일본을 넘나들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거상이 된다. 일본에서는 장보고가 외국의 귀한 물건을 가져다줘서, 그와 거래한 자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으니, 재물을 가져다주는 "재물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절들이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가지로 갈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의 신분을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고난 환경을 그냥 탓하고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굴레를 탈피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최태성 님은 역사의 쓸모에서 "장보고도 신라가 아닌 낯선 땅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됩니다."라고 서술했다. 1,200년 전의 장보고에게도, 10여 년 전의 나에게도, 앞으로 도전할지도 모르는 여러분에게도, 해외취업이란 인생의 흐름을 송두리채로 바꿀 크나 큰 "인생의 변곡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결심과 각오가 필요하지만, 또한 그에 따르는 보상도 크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한국분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나름대로 꿈을 펼쳐나가고 있고, 그분들 나름대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지난 십여 년을 한국이 아닌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며 느낀 해외취업 시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해외의 어느 나라로 느닷없이 취업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일본에서의 취업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MBA 유학 도중에 여러 가지 인연이 있어 취업을 하게 된 케이스다.
내 경우, 원래 재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MBA를 졸업했기 때문에, 다시 사무직 샐러리맨으로 복귀했지만,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꿈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이런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조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최고의 디저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으면 프랑스의 요리학교나 카페에 취업을 할 것이고, 멸종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면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곳에서 NGO 근무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각자 달라도, 꿈꾸고 있는 무대가 정말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곳인지, 목표로 하는 회사나 조직의 업무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업무인지, 그곳의 일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등등의 사전조사는 사실 한국에서 구글만 뒤져서는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우선 어떻게든 그곳에서 일정기간 "사전 탐사"를 해 보는 방법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부나 대학원을 현지에서 다니는 방법이다. 어느 정도 현지에서 인지도가 있는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면, 현지에서의 취업이 유리해진다. 한국에서의 학벌은 서울대 출신이 아닌 이상 별로 고려대상이 안된다. 왜냐하면, 서울대 외에는 모르니까... 스미토모 상사에는 재일교포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성장한 한국인 (New Comer라고 부르기도 한다)으로서는 내가 최초로 입사한 사원이다. 내가 입사한 2년 후부터 매년 몇 명씩 한국인이 입사하고 있는데, 대부분 와세다 같은 유명대학의 학부를 졸업한 친구들이다.
일본의 경우,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문부성의 국비유학생 제도도 많고, 다른 공공기관의 장학제도도 많아,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공짜 유학의 기회는 다른 나라보다 찾기 쉽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잘 모르지만, 미국의 경우,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제도라는 것도 있다.
외국 정부나 기관의 장학금 외에도 국내의 공공기관 혹은 기업장학금을 노려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등교육재단, 삼성장학회 등이 있다.
유학이 여의치 않으면, 어학연수나 워킹 홀리데이, 혹은 국제기구의 자원봉사를 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선 현지에서 생활해 보면서, 자신이 꿈꿔온 무대가 정말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곳인지도 확인해 보고,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방법을 현지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간 개개인의 생김새와 성격이 모두 다르듯, 국가별로 생활환경과 문화는 모두 재각각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문화적으로도 가장 비슷한 일본마저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국가별로 모두 장단점이 다르겠지만, 무조건 좋은 것만 있는 나라도 없고, 무조건 나쁜 것만 있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근무하면, 우선 어느 나라에 가든, 한국처럼 끝없는 경쟁의 루프에서, 자신과 가족들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남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일도 적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일본을 따라 해서, 입시지옥도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도 세계적으로 보면 만만치 않은 경쟁사회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널널한 경쟁이다.
동경대, 케이오대, 와세다대에 입학하는 엘리트 고등학생들도 오후 3시만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활동인 럭비부, 밴드부, 체조부 등에 집중한다. 고 3이 오후에 체조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말로는 여러 번 들었지만, 아직도 상상이 안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조건 클럽 하나를 정하라 하여, 유도부를 신청했는데, 시간표에는 일주일에 한 시간 있던 클럽활동은 3년 동안 딱 한번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자율학습...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에 밀려, 예전처럼 잘 나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버틸힘이 있는 기업들은 여전히 종신고용을 고집하고 있다. 종신고용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회사도 직원도, 입사부터 퇴사까지 40년 넘는 기간을 고용하고 근무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 때문에, 그에 따른 신뢰와 안정감, 충성도는 확실히 다르다.
학교나 직장에서 극심한 경쟁은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항상 대지진에 대한 두려움과 아직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원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내가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근무한 최근 4년간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된 한일관계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자카르타에서는 못 느끼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항상 따뜻한 여름만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국민들이 가난하면서도 모두 여유가 있고, 항상 웃는다. 갤럽 인터내셔널 (Gallup International)이 2018년에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자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낙관적인 국가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인들 73%가 스스로를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며,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보다 인도네시아가 행복한 나라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인도네시아에 4년 넘게 살면서, 정말 맞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돈이 없어도, 차가 없어도, 집이 없어도 항상 밝은 그들의 얼굴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참 신기하게도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미래에 대한 대비도 없고, 조급함도 없으며, 꼼꼼하게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도 부족하여, 업무적으로는 힘들 때도 많다. 미래를 위해 저축한다는 사고도 거의 없어서, 월급날인 25일에서 30일 사이에는 어디를 가도 정체가 심각하다. 월급을 받았으니, 1주일은 여기저기 쓰러 다니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예까지 들 수는 없지만, 분명 그 나라의 환경과 우리나라의 환경을 비교하면 반드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나라가 없으니, 각국의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일본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름도 개명한 재일교포는 은근히 많지만, 한국에서 성장하고 고등교육까지 받고 넘어온 이른바 New Comer는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10년 전에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을 때, 부서의 동료들로부터 수없는 질문세례를 받았다. 군대, 대기업 문화부터, 당시에 최고의 인기였던 "카라"와 "소녀시대"의 누구를 좋아하는지까지... 수년 전에 "강남스타일"이 대유행하던 시절에는, 회사의 큰 행사에서 반 강제로 "강남스타일"을 불러야 했다. 원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 요즘은 "이태원 클라쓰"나 "사랑의 불시착"이 대유행이라,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현상들이 진짜냐고 물어보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그래서, 화제가 되는 한국 드라마는 보기 싫어도 일단 동료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봐 두는 편이다.
경영기획부 시절에는, 인사부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할 때, 외국인 사원 대표로 자주 불려 가 외국인으로서의 근무조건이나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역할도 자주 맡았다.
대학원 선배 중 한국인 선배 한 명은 유명한 유통업계의 인사부에서 근무했었는데, 어느 해에 실험적으로 중국인 사원을 엄청난 비율로 채용해 일본 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해에 대량으로 입사한 중국인들이 한해를 채우지 못하고 다시 대량으로 퇴사하면서, 그 회사 내부에서는 중국인 채용에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한국인 대표가 될 수도 없고, 될 마음도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이너리티(Manority)가 되면,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과 말을 통해, 한국인 전반에 대해 판단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전 인류가 모여 사는 미국의 대도시나, 싱가포르, 런던 같은 경우는 좀 상황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아직 그런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서는, K-Pop, K-Drama 붐이 대단하다.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으로 본다. 회사 여직원들은 Mr. Park이라고 부르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대부분 "제이 오빠"라 부른다. "오빠" "대박"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는 이제 International Language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한국 남자들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로맨틱한 말들만 쏟아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왠지 그 기대에 부응해, 로맨틱한 말과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을 느낄 때도 있다.
한국 여자들은 피부가 하얗고 날씬하고 패션감각이 좋고... 뭐 이런 식의 고정관념도 있다. 그러니, 한국화장품을 사려고 난리다. 그런데, 내게 보여주는 한국화장품의 한국어가 이상할 때가 많다. 중국 회사가 한국화장품이라고 속여, 라벨링만 구글 번역을 해서 붙여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한국인은 이렇더라, 저렇더라"의 근거가 될 수 있으니, 항상 긴장하고 행동과 말에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역시 해외에서 생활하면 가장 힘들고 안 좋은 점이,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소중한 사람들인 가족,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어머님께는 정말 죄송하다. 일 년에 한 번 꼴로 한국에 가니, 매일매일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고, 정작 어머님과는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일 년에 한 번 안아보는 손녀가 볼 때마다 몰라보게 커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어머님을 보면,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화상통화는 되도록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마음이 씁쓸할 때, 친구랑 소주 한잔 같이 못하는 건 항상 아쉽다. 요즘은 Zoom 켜 놓고 같이 술 마시기도 한다마는...
한국음식도 문제다. 동경에는 널린 게 한국음식점인데, 사실 말이 한국음식점이지, "야키니쿠야"라는 고깃집이다. 그러다 보니, 메뉴가 천편일률적이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곰장어, 짜장면, 찜닭, 순댓국 같은 음식들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신오쿠보까지 가야 겨우 먹을 수 있다.
그나마, 자카르타는 동경보다 상황이 훨씬 낫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한국분들은 동경보다 훨씬 적은 4만 명 정도라는데, 희한하게 없는 메뉴가 없다.
가족과 자주 볼 수 없다는 점과, 좋아하는 음식을 원할 때 먹기가 힘들다는 점이 해외에서 생활함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위에 나열한 네 가지는 지금 생각나는 대로 써 본 예 일뿐이고,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많은 것이 다른다.
장점도 단점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다 보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틀이 넓어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이 반드시 당연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고, 반대의 상황도 겪게 된다. 이런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악센트가 되는 것 같다.
국적이 다른 마이너리티(Manority)로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마조리티 (Majority)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만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한국에서 멀어져 있지만, 우리는 어디에 가도 영원한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자신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꿈을 펼치고 있는 지역의 문화와 언어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 지역에서 네트워크를 잘 형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으로 돌아와도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 지역의 마켓을 개척하려는 회사에 있어, 이런 인재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1,200년 전의 평민 출신 장보고도 해 냈는데,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