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리만 제이 Oct 26. 2020

소년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브런치 편지

Interlude: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


"I truly believe that everything that we do and everyone that we meet is put in our path for a purpose. There are no accidents; we're all teachers... if we're willing to pay attention to the lessons we learn, trust our positive instincts and not be afraid to take risks or wait for some miracle to come knocking at our door."

나는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목표를 향한 여정에 놓여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 어느 것에도 우연이란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스승이다... 만약 우리가 배운 교훈을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인 본능을 믿으며, 모험을 함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떠한 기적이 문 앞으로 찾아올 것이라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Marla Gibbs, 미국 가수, 영화배우, 코미디언, 작가, 프로듀서...)



지금까지 여러 편에 걸쳐, 내가 20대에 어떤 인연을 만나 어떻게 공대에서 상대로 진로를 바꾸었는지, 그 후에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특히 일본 MBA 유학 후 어쩌다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입사한 일본의 종합상사에서 과거 10년간 어떤 일을 해 왔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이 매거진의 전반부에서 주로 내 인생의 2 쿼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중점적으로 소개한 이유는, 나 스스로 잘 났다고 자랑하고자 함도 아니고, 종합상사가 최고의 직장이라고 권장하려 함도 아니며, 일본으로의 취업을 권하고 싶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그렇지만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샐러리맨일 뿐이고, 평소에 썰렁하거나 야한 농담이나 하는 실없는 빼박 "동네 아재"일 뿐이다. (작가명은 제이오빠이지만...)

일본의 종합상사에서 지난 10년간의 나의 경험담을, 회사 기밀을 밝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상세히 기술한 이유는, 결코 내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그 과정에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준다면, 어느 나라의 어떤 조직에서든 "외국인 혹은 이방인"으로서의 아웃사이더 (outsider)가 아닌, 그 조직의 진정한 일원으로서의 인사이더(insider)로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는 널려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노력하는 많은 젊은 분들에게, 자신의 무대를 굳이 한국으로 제한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 취업하라고 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일관계가 해방 이후 최악인 작금의 상황에서,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대지진과 규명되지 않은 원전 방사능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일본 취업을 권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에 취업하고 싶다는 분을 말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해외취업"이라는 뭔가 그럴싸한 단어를 조금이나마 경험해 본 나로서, 해외취업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을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는 무대가, 내가 취업한 일본과 현재 주재 중인 인도네시아 밖에 없다는 이유뿐이다.


오히려 솔직히, 반일감정이 최악을 넘어서, 일본이 한국의 국가적 주적처럼 되어 버린 현상황에서, 일본에서 그것도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에서의 경험을 브런치를 통해 소개한다는 것에 대해 초반에는 많이 망설였다. 나 스스로는 나를 "지일파(知日派)"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의도치 않게 맹목적인 "친일파" 혹은 "토착 왜구"로 오해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런 고민을 뒤로하고 글을 쓰도록 독려해 준 것은, 한국의 대형 로펌 법무법인 태평양의 잘 나가는 변호사로 자카르타에 장기출장 와 있었던 주원이의 응원의 힘이 컸다. 주원이가 파견 근무하던 로펌과 내 회사 사무실이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는데, 2년 전 건물 휴게실에서 딱 봐도 한국 사람처럼 생긴 주원이가 대뜸 내게 말을 걸어왔다.


주원: "Excuse me. Your Batik (인도네시아 전통의상) looks great!" (엄지 척!)

나: "감사합니다. 한국분이시죠?"

주원: "헉! 일본분인 줄 알고 영어로 했는데..."


이런 웃긴 인연으로 알게 된 주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과거 다른 시기에 같은 LG Display에서 근무했었고, 내가 유학을 위해 LG를 퇴사한 후에, 내가 소속해 있었던 영업부서를 담당했던 사내변호사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도 이어질 수 있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로,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지금까지의 힘들고 즐거웠던 과거 경험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의 풀장에서 주원이와 와인을 마시며 나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주원이가 한 말...


"형, 책 한번 써라. 고민하고 방황하는 젊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될 거야."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 누군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해 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인생 2 쿼터에서 뭘 했느냐가 아니라, 인생 1 쿼터인 소년 시절과 2 쿼터인 청년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경험들을 통해 뭘 느끼고 배웠는지를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뒤돌아보면서, 나 나름대로 "인생 규율(life Principle)"을 정립해 남은 인생 3, 4 쿼터를 더욱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우고 싶다는 것과, 이제 막 1, 2 쿼터를 시작한 많은 젊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힌트가 되는 이야기였다.


뒤돌아 보면, 나는 많은 시행착오를 해 왔고, 그 시행착오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온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남으로 태어나 형도 누나도 없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진학상담을 해준 선생님들은 계셨지만 인생의 방향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은 불행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과, 방황하던 공대 시절에는 밥과 술을 사주는 선배는 있었어도 인생에 대해 조언해 주는 선배는 만나지 못해서 더 많이 둘러왔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상대로 진로를 바꾼 후에는, 내게 남의 조언을 소중히 들을 수 있는 심적인 여유가 생겨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거나, 혹은 말과 행동, 존재 자체가 나의 귀감이 되는 많은 소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오늘날까지 나름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의 경험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는 것이 화면 너머의 그 누군가에는 형으로서, 혹은 삼촌으로서, 혹은 선배로서, 조그마한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유년시절, 그리고 청년시절의 나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영상편지"가 아닌 "브런치 편지"를...

 

내가 앞으로 쓸 글들은, 내 인생 1, 2 쿼터에서 나를 바꿔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소년" 혹은 "청년"의 나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채워나갈 생각이다. 당시의 나에게는 없었던 형으로서, 혹은 삼촌으로서, 혹은 선배로서...


이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후기)

이 글은 순서상, 종합상사에서의 경험담과 소년시절, 청년시절의 경험담 사이에 이어주는 글로 썼습니다만, 매거진 구성이 그렇게 잘 안되네요... 추후에 브런치북 발행시에 순서를 재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의 다른 이름은 “기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