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지는 쓸데없는 잡학상식
"훌륭하지만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
"내일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지는 쓸데없는 지식"
20여 년 전 일본에는 "트리비아의 샘(トリビア の泉)"라는 버라이어티쇼가 있었다.
시청자로부터 쓰잘데기 없는 잡학상식을 모집하여, 프로그램이 검증하는 비디오를 제작, 출연진에게 보여주면, 출연자들이 그 비디오에 대한 반응으로 "헤~~~" 버튼을 누르는 횟수만큼, 제보자에게 상금을 지불하는 잡학지식 버라이어티쇼였다.
2002년에서 2006년까지 후지 TV에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평균시청율이 20%, 최고 시청률이 무려 27.7%에 달하는 초대박 히트 프로그램으로, 후지 TV는 당시의 방영 내용을 시리즈로 출간해 20년이 지난 아직도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펀지"가 "트리비아의 샘"을 표절했다는 논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탈리아의 "트레비 분수"를 일본어로는 "트레비의 샘"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잡학상식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Trivia"를 빗대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참 영어단어를 단순 암기하던 고등학교 시절, "Trivial = 사소한, 가치 없는, 쓸데없는"이라고 외웠던 기억은 나는데, Trivia가 잡학상식이라는 건 몰랐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같은 장소를 두고도, 한국과 일본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재미있는 문화의 차이인 것 같다. 한국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분수"에 초점을 두고, 일본은 고요하게 고여있는 "샘"에 초점을 둔 것일까? 이탈리아 이름을 검색해보니, Fontana di Trevi라고 하니, 연못, 샘을 의미하는 Fond가 더 가까운 듯하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나는 "내일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훌륭하지만 쓸데없는 잡학지식"을 무척 좋아한다. 마흔을 훌쩍 지나 어느덧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인생에 도움이 되니, 무조건 외워!"라는 말을 듣고, 연습장에 밑줄까지 쳐가며 외웠던 "학교지식"은 온 데 간데 없이 머릿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희한하게 쓸데없는 잡학지식은 언제까지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아무 생각 없이 행하는 풍습의 기원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해서, 세월의 흐름 속에 전혀 최초의 발생 경위와는 관계없는 형태로 발전하거나 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도 모르게 "트리비아의 샘"에 출연했던 출연진이 열심히 눌러댔던 "헤~~~"버튼을 누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트리비아"를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래의 이유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1. 지적인 호기심을 편안하게 충족할 수 있다.
자동차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최근의 전기자동차 (EV)의 혁명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EV 관련 기사나 자료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뒤쳐진 않고 "밥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관련 지식이나 업계 움직임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새로운 지식이나 업계 동향을 업데이트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트리비아"는 듣고 그냥 흘려버린다고, 내일 밥을 못 먹을 걱정도 없고, 상사한테 "넌 그런 것도 아직 모르냐?"라고 핀잔 들을 일도 없다. 어쩌면 풀코스 요리 중에 애피타이저나 디저트처럼 가볍게 그리고 달콤하게 소비할 수 있는 지식이 "트리비아"가 아닐까?
2. 상대방에게 거부감 없이 지식을 자랑(?)할 수 있다. 특히, 데이트에서...
"RE100이 뭔지 아십니까?"
"중동지역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수십 년째 분쟁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런 전문적이거나 시사에 관련된 정통지식(?)을 상대방에게 전할 때는 전달 방식을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뭐야 이 사람, 잘난 척하네...'라는 인상을 주기가 쉽고, 심한 경우 인간관계에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가벼운 쨉을 던지듯
"영어로 차를 세우다를 의미하는 Pull Over는 원래 마차를 세울 때 말고삐를 위로 당기는 행동에서 유래한 거래..."라는 식으로 "트리비아"를 적절히 사용하면, "헤~~~"와 함께 친근감이 높아지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데이트에서 Ice Breaking로는 최고의 스킬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정통 지식과 잡학상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될까?
아마도 정통지식은 만인의 관심사가 아닌, 관련 업계 종사자나 연구자, 아니면 이른바 가방 끈이 긴 고학력자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예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트리비아"는 모든 사람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항이면서도,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 정도의 가벼운 패스트푸드 같은 지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3. "트리비아"로 무장한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들어온 "트리비아"를 생각해 보니, 책에서 본 건 거의 없고, 친구나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티브이에서 본 이야기 등등... 책상에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냥 우연히 주워모은 지식인 것 같다.
그 "트리비아"의 수집에 많은 영향을 준 분들이 계시는데, "팟캐스트 일당백의 진행자, 정박사님", "전 굿모닝팝스 진행자, 조승연님",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의 진행자, 썬킴님"이 그런 분들이다.
이 분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에 대한 정통지식도 상당하신 분들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유래나 의미를 중간중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그들의 지식의 깊이와 넓이는 어디가 끝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부터 이미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뇌색남" "뇌색녀"라는 단어도, 그 쓰임새를 잘 생각해 보면, 물리학이라면 전 세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듯한 아이쉬타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도 못한 분야에 대해서도 자잔한 지식을 재미있게 썰풀듯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가 "뇌색남" "뇌색녀"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여러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경험을 해 왔다는 것을 그들이 재미있게 전달하는 "트리비아"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살면서 하나 둘 모아 온 "트리비아"를 그냥 나의 작은 뇌 속에 정리하지 않은 채로 놔두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이자도 거의 붙지 않는 보통계좌에 매달 얼마의 월급이 들어오는지도 모른 채 보통예금으로 그냥 잠재워 두고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기왕이면, 이자가 높은 정기예금으로 얼마, 주식투자에 얼마, 부동산 투자에 얼마...처럼, 용도를 생각해서 계획적으로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능한 지금까지 모아 온 "트리비아"를, 조금의 인터넷 검색을 통한 검증을 거쳐, 분류해서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트리비아"는 가벼운 잡학상식이 단어의 정의인 만큼, 학자들이 자신의 평생을 걸고 연구할 만한 내용이 아닌 만큼, 그냥 설로만 남아 있는 케이스도 많다. 그러니, 내가 앞으로 정리할 내용들도, 반드시 옳은 설이라고 볼 수도 없고, 옳다 그르다 따지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냥 삶의 한 양념이 될 지식을 정리하고, 내일 누군가와 재미있게 공유하고 즐기는 정도로 봐 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 떠나 보시지요~ 트리비아의 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