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의 유래에 대하여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끝났다."
최근 들어 참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경제적, 사회적인 지위향상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자조적으로 "금수저" "흑수저"라는 표현도 함께 유행하고 있다. 금수저를 타고 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윤택하고 여유로운 금수저 수준의 삶을, 흑수저를 타고 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난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인 것 같다.
80년대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9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나로서는, 자신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얼마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던 마지막 시대에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중1부터 고3까지 무려 3년을 같은 반에서 단짝이었던 나의 평생 절친은 5남매에 정말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살았지만, 두 형은 서울대 법대 졸업에 두 분 다 판사, 내 친구도 잘 나가는 IT 컨설턴트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표현의 유래를 한국어로 아무리 검색해도, 자세한 유래를 설명하는 글을 찾을 수 없고, 다만 현재의 한국사회가 “개천에서 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인가”를 설명하는 글이 대부분 인 것 같다. 반면, 일본에도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의미의 속담이 있는데,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것의 유래를 “鯉の滝登り(코이노 타키노보리)”라고 부르며, “잉어가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라는 것이 유래로 알고 있다.
일본에 알려진 “개천에서 용 난다”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고서에는 황하지역에 “용문(龍門)”이라는 거대한 폭포수가 있는데, 이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가 용이 된다는 표현이 있다고 전해진다. 일본 한자에서 용을 뜻하는 龍는 약자로 竜로 쓰는데, 그래서 용이 태어나는 곳이 폭포수라는 의미로, 폭포수는 삼수변에 용 竜를 붙여, 滝(타키)라고 쓴다.
또한, 후한서라는 고서에는 이렇게 용문을 거슬러 올라 용이 되는 잉어에 빗대어, 젊은 사람이 노력에 의해 높은 관직에 올라 출세하는 것을 “登竜門(등용문)”이라 기술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등용문”이라는 표현 자체는 아주 흔하게 쓰지만, 한자어를 안 쓰니, 이것이 “용문이라는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 용이 된 잉어 처럼, 평범한 인간이 출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고난을 극복하고, 용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가진 “어찌 보면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잉어”에 대한 로망은 일본인들이 참 좋아하는 스토리로서, 일본문화에 여러 형태로 스며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월에 남자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집집마다 혹은 공공장소마다 설치하는 “鯉のぼり(코이노보리)”
성장하면서 힘들고 고난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 고난을 정면돌파 하여, 용같이 위대한 남자로 거듭나라는 뜻을 담아 잉어 모양의 깃발 같은 천을 걸어둔다.
(여자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히나닌교 라는 것도 따로 있다)
나는 2000년 경에 일 년간 히로시마 대학이라는 곳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었다. 히로시마에 본거지를 둔 Hiroshima Carp라는 프로야구팀이 있는데, Carp가 영어로 잉어이다. 당시에는 다른 팀은 Giants나 Tiger, Lion, Dragon 처럼, 용맹하고 무서운 캐릭터가 대부분인 프로야구팀 속에, 툭 치면 죽을 것 같은 잉어를 팀의 마스코트로 설정했는지 참 궁금했었다. 그때는 나도 잉어가 용이 된다는 전설을 알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잉어보다, 그냥 용을 팀의 마스코트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만, 일본인들은 그 과정의 의미와 미학을 존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패션이다.
특히, 무서운 형들이랑 누나들이 등짝이나 허벅지에 잉어가 폭포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문신을 많이 새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무서운 형님 누나들이 “차카게 살자”를 몸에 새기기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인터넷 검색하면 잉어문신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좀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해서, 대신 재킷만... 이런 재킷 입고 다녀도 왠지 피해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한국이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 하는 생각과 함께, 젊은 한국분들이 국어의 이해를 위해, 한국어 단어의 밑바탕이 되어 있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력이 좀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 용문을 거슬러 용이 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