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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만 제이 Oct 18. 2023

일본어를 네이티브처럼 말하기 힘든 진짜 이유

도적을 보고 느낀 일본어 액센트의 중요성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약간 “미스터 선샤인” 분위기도 나면서, 수십 년 전 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였다. 스토리라인이나, 액션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이라고 느꼈지만, 정말 놀란 것은, 일부 출연진의 일본어 연기.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억양이 어색해서, 왠지 엉뚱한 곳에 신경이 쓰여 몰입감이 떨어졌다.

이때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라 몰입감이 높았다!

그런데, 도적에 나온 일부 일본인역의 배우들은, 아무리 들어도 완벽한 일본 억양이라, 에피소드 마지막에 올라가는 출연진 리스트를 스킵하지 않고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한국인 배우들이었다.

그 배우들을 구글에 검색해 보니, 일본태생의 재일교포 3세들이었다. 그제야, 납득!




일본어는 어순, 단어, 뉘앙스 등이 한국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이다.


예를 들면 “그 여자분은 성격은 참 좋다.” 라는 한국어의 뉘앙스에는 “성격은 좋은데, 얼굴은 이쁘지 않다는 뜻인가?” “옷은 못 입는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른 흠이 있다는 뜻인가?”라는 묘한 찜찜함을 내포하고 있다. 영어로는 이 뉘앙스를 살리기 쉽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정확히 같은 뉘앙스의 표현을 할 수가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일본식 근대화 한자어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서로 공유하는 단어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어느 일본어 교육기관에서도 다양한 국적의 일본어 학습자 중에 유독 한국인들이 가장 우등생이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여러 국적의 외국인 중에 우등생들은 단연 일본인들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이렇게 서로 닮은꼴을 하고 있는 한국어와 일본어일지라도, 어릴 때부터 일본 현지에서 배워서 네이티브가 되지 않는 한, 외국어로 공부해서 네이티브처럼 구사하기가 가장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가 일본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어를 20대 중반인 2000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남들은 취업준비한다고 정신없었던 대학 4학년시절, 나 홀로 히로시마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유학을 했었다. 당시에는 히로시마 대학 주변에 논밭과 들개밖에 없어서, 수업을 마치면 기숙사에서 텔레비전만 주구장창 시청했다. 내 일본어는 올드보이처럼 골방에 처박혀 끊임없는 텔레비전 시청을 통해 익힌 일본어였다.

 

졸업 후 취업한 회사에서는 6년간 일본영업을 담당했고, 2008년부터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에서 MBA를 수료, 그 후에 지금의 직장인 일본 종합상사에서 14년째 근무 중이다. 지금은 주변 동료들이나 지인들이 내가 한국어를 하는 것을 들으면 , 한국어도 할 줄 아냐고 물어볼 정도로 일본어는 준네이티브(영어로 Near-Native) 레벨까지 구사한다. 처음 만나는 일본인과 대화하면, 30분 정도는 외국인임을 숨길 수 있는 레벨이라고 자부한다. 그래도 나중에 한국인임을 드러내면, 어쩐지 억양이 해외교포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 오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단다.

 

그렇다. 아무리 일본어 초고수 레벨이라고 할지라도 액센트 혹은 억양은  완벽하게 일본인처럼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어 사전에는 액센트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그 어떤 일본어강의에서도 일본어의 액센트를 강조해 가르치는 강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일본어를 끊임없이 들으면서 감각적으로 익히는 방법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일본어의 액센트는 그 사람의 일본어의 자연스러움, 유창함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간혹,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영상에서 일본어 강의 하시는 유명 강사분들을 보면, 문법은 알기 쉽게 잘 설명하시는데, 액센트가 너무 서울틱한(?) 액센트라 부자연스럽게 들리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하물며, 일본인 역할을 하는 한국배우의 어색한 일본어 액센트는 얼마나 위화감이 들겠는가.

엄청 유창한데 서울틱한 액센트의 일본어의 전형, 가수 성시경씨.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유창함!



 

언어학적으로 액센트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하는데, 영어처럼 특정 모음에 강세를 넣어 발음하는 것을 Stress Accent, 일본어처럼 높낮이로 단어를 구분하는 것을 Pitch Accent 혹은 Musical Accent라고 한단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니 구분은 이 정도로 하고.

 

영어는 모든 사전에 액센트가 표기되어 있어, 그대로 익히면 되고, 공부하다 보면 어느 정도 규칙도 익히게 된다.

예를 들면, -tion으로 끝나는 단어는 t의 바로 앞 모음에 액센트가 온다.

Creation, Valuation, Colonization, Activation

영어는 이러한 액센트 규칙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도 가능해진다.

 

최근 25년 만에 중국어를 다시 공부하고 있는데, 4성을 외우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음을 높였다가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가… 머릿속에 4성을 그리면서 발음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중국어도 정해진 4성을 정확히 익히면 사전 그대로 발음해도 네이티브처럼 발음할 수가 있다고 들었다.

고개가 오르락 내리락…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4성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 중국어나, 모든 단어에 액센트가 표기되어 있는 영어가 고수가 되기 위한 허들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어는 대표적인 pitch accent 언어로, 높낮이의 악센트가 상당히 중요한 반면, 이 높낮이를 경험치와 음악적 감각으로 습득해야 한다.


예를 들면, 높은음을 H, 낮은음을 L로 표기한다고 하면, 교량 혹은 다리를 뜻하는 “橋(하시)”는 LH가 된다. 반면, 젓가락을 뜻하는 箸(하시)는 반대로 HL이 된다 (관서사투리는 반대). 해산물의 “굴(카키)”은 HL이지만, 과일의 감(카키)은 LH로 발음해야 한다.

 

단어에 다른 단어가 첨가되면, 액센트가 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국은 일본어로 “캉코쿠“인데, HLL로 발음한다. 캉에 올리고 코쿠는 내려서 발음한다. 그런데, 여기에 인을 붙여, 한국인이라고 발음하면, ”캉코쿠진“이 되는데,  이건 LHHL 이 된다.


이런걸 귀로 듣고 익혀야 한다…

 

이런 일본어 액센트의 중요성이나, 아니면 일본어에도 액센트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가르치는 일본어 강의를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물론 액센트가 틀리더라도, 일본인들은 문맥에 따라 대개 알아들을 수 있고, 외국인이니까라고 느끼겠지만, 어딘지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완벽한 발음, 액센트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어민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의도 애매하다. 같은 영어 원어민 중에도, 인도식 영어, 싱가포르식 영어, 호주식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발음이나 액센트가 천차만별인데, 누구를 기준으로 원어민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일부지역에서만 사용되는 한국어나 일본어는, 서울지역, 동경지역 사용자들의 어휘나 액센트를 표준어로 한정하고 있으니, 외국인이 배우는 원어민 발음과 액센트의 범위가 영어보다는 상당히 좁다고는 느낀다.

표준 영어라는게 있을까?

BTS의 영어인터뷰를 들으면서, 다들 어릴 적부터 영어권에서 성장한 줄 알았다. 전혀 어색함 없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모든 멤버가 유학경험도 없는 한국 토종영어란다. 다시 한번 초급단계부터 액센트를 강조하는 영어와 초고급단계에 가도 액센트가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 일본어 교육은 정말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역할은, 근대사의 비극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이번 도적처럼 거의 모두 악역이다. 그러니, 자신의 나라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역할을 일본인에게 부탁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일본어 밖에 못 한다는 설정의 일본인역을 액센트가 어색한 한국인 배우가 연기하는 건,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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