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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만 제이 Jul 01. 2023

인도네시아어에 관한 짧고 얕은 지식

하루종일 축하하는 인도네시아인들...



2016년에서 2021년 말까지 약 6년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자카르타에서 동경으로 귀임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카르타에서의 생활이 그립다.

20년 전 LG시절, 자카르타 주재원이 했던 이야기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격하게 공감이 간다.

"자카르타 주재가 결정이 되면, 주재원 부인은 부임 한 달 전부터 울지... 그런 후진국(?)에 어떻게 사냐고...

 그런데, 한국으로 귀임이 결정되면 1년 전부터 울어...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계약직 5년을 포함하면, 우리 회사 정년은 65세이니, 나도 아직 정년까지 16년 정도 근무기간이 남아 있는데, 정년까지는 어떻게든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고 싶어, 회사 내에서 인도네시아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부서가 없는지 모색 중이다. 10년 넘게 살아온 일본보다 더 애착이 가고, 인도네시아는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인도네시아 사랑은 회사에서도 유명해서, "인도네시아의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실은 나도 납득이 될만한 설명을 못 하겠지만, 아무래도 인도네시아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가난해도 친절하고 여유가 있다. 쇼핑몰에서 하루종일 변기청소하는 청년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라고 밝고 맑게 인사해서,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화장실에서 그 청년에게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인도네시아가 좋아져서, 좀 더 인도네시아를 이해하고 싶어 졌고,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어학을 좋아해서, 일본으로 귀임하는 주까지 인도네시아어 개인레슨을 매주 2번씩 받았다. 지금도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를 인도네시아어 자막으로 보면서 인도네시아어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7년간 쓰면서 느낀 인도네시아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1. 인도네시아인들은 대부분 Bilingual

인도네시아에는 확인된 지방어만 300개가 넘고, 소수민족 언어까지 합하면 약 1,000여 개의 지방어가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자와어, 순다어, 발리어 등이 있는데, 표기는 같고 발음이 다른 중국어 방언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어 지방어는 서로 단어 자체도 너무 다르다.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세계 4위인 2억 7천만 명.

그러나, 인도네시아어를 집에서도 사용하는 인구가 약 20%, 나머지 80%(2억 명 이상)는 집에서는 자와어나 순다어 같은 지방어를 쓰고, 학교나 직장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쓰는 이른바 Bilingual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가 공용어가 된 이유가 재미있다. 2억 7천만 명 중 약 60%는 자와인이다. 당연히 자와어가 공용어가 되는 게 당연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역사를 살펴봤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이던 1928년에 인도네시아 청년회의 라는 모임에서 인도네시아를 자와인의 국가가 아닌 모든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하나의 인도네시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된다는 선언을 발표하고, 말레이시아에 인접한 말라카해협 인근의 지방어인 "Bahasa Melayu"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그 당시에는 단순한 선언문이었지만, 일본이 패망하고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1945년 이후, Bahasa Melayu의 공용화 정책이 본격화해 불과 100년 만에 거의 전 국민이 Bilingual 이 되었다. 참 대단하다. 영어와 불어를 병기하는 캐나다나 여러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300개가 넘는 지방어를 한 언어로 통일한 언어정책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용인구수로는 인도네이시아인의 60%가 자와어, 15% 정도가 순다어... 나머지를 합해도 25% 정도인데 왜 하필 소수민족의 언어인 말레이어를 국가공용어로 채택했을까? 그것은 말라카해협이 서양 및 중동과 동양을 연결해 주는 지리적 요충지로 예전부터 상업과 무역이 성행했고, 말레이 언어가 문법이 엄청시리(?) 간단해 누구든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배가 많이 지나다니는 지역중의 하나인 말라카해협


2. 외국인도 첫날부터 인도네시아어를 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는 알파벳으로 표기한다. 러시아어처럼 알파벳을 뒤집어쓰는 단어도 없고, 독일어처럼 알파벳에 점두개 찍어서 쓰는 움라우트도 없는, 진짜 알파벳 그대로 쓴다.


인도네시아는 350년간 네덜란드 식민지였다. 근대화가 되기 이전의 인도네시아는 통일된 공용어도 없었고, 각기 다른 지방어는 표기가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어떤 지방어는 억지로 아랍어를 사용해 표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약 20년 전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이 자기네들 지방어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이 뉴스가 된 적도 있다.


아무튼, 네덜란드 식민지배에 의해, 자연스럽게 알파벳이 도입되었고, 인도네시아어의 표기는 알파벳으로 정착했다. 그런데, 한국어를 알파벳으로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가? 한국어는 발음이 복잡해서 알파벳으로는 정확한 표현이 안되지만, 인도네시아어는 어려운 발음도 없어,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알파벳으로 정확하게 표기가 가능하다. 예외라고 해봐야 아래의 2, 3개 정도이지만...


① C는 영어의 Ch와 같다.

Coba는 시도하다, 해보다 이런 뜻인데, "초바"라고 읽는다. 나는 C만으로 Ch(ㅊ)을 발음하는 것을 힌트로 골프 캐디나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대화에서 농담으로 많이 써먹었다. Coca Cola를 주문하면서 "초차촐라 주세요~"라고 하면 다들 빵 터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Cello는 켈로가 아닌, 첼로이다. C 발음은 어쩌면 이탈리아어의 영향인가? 


② E는 2가지 발음이 있다. 

어떨 때는 "에"이고 어떨 때는 "으"와 "어"의 중간 발음(예전에는 영어의 Urgent의 U 같은 으와 어의 중간발음을 삿갓발음이라고 했는데...)으로 읽힌다.


Depok 데폭 (자카르타 근교의 도시이름)

besok 베속 (내일)

Enak 에낙 (맛있다. 기분 좋다)


Empat 음팟, 엄팟 (숫자 4)

Delapan 들라판, 덜라판 (숫자 8)

Depan 드판, 더판 (앞)


언제 "에"가 되고, 언제 "으, 어"가 되는지 인도네시아어 선생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그냥 배우면서 외우는 수밖에 없다.


③요상한 위치에 간혹 H가 나온다.

Khawatir 까와틸, 혹은 하와틸 (걱정하다)

Terima kasih 뜨리마 카시 (감사합니다)


h가 가끔 뜬금없는 장소에 나타난다. 발음도 하는지 안 하는지 좀 애매하다. 대충 h가 나오면 목 안쪽에서 하... 하면서 공기 빼주는 느낌으로 약간 길게 발음하면 되는 것 같다. 친구들 말로는, 아랍어에서 온 단어들이 이렇단다. 암튼 자주 나오는 단어는 아니다.


위의 3가지 예외가 끝이다. The End이다. 이런 언어 본 적이 있나? 내일 자카르타 가도, 뜻을 몰라도 읽을 수 있다는 거...


3. 어순은 영어와 거의 비슷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수업에서 "영어의 5 형식"이라는 어순구조를 배웠었다. 이 영어의 5 형식에 익숙한 사람은 인도네시아어 배울 때 깐딱 놀란다. 어찌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영어와 같은 어순을 쓰는지.


I lived in Jakarta for 6 years with my family. 이걸 인도네시아로 쓰면...

Saya(I) tinggal(lived) di(in) Jakarta selama(for) 6 tahun(years) dengan(with) keluarga(family) saya(my).

한글로 쓰면...

사야 띵갈 디 자카르타 슬라마 으남 따훈 등안 끌루아르거 사야.

놀랍지 않나?


나는 아직도 넷플릭스의 한국드라마는 인도네시아어 자막으로 본다. 그런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Notion에 영어단어로 정리한다. 이렇게 해야 오히려 자연스럽게 인도네시아어가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넷플릭스로 한국드라마를 인도네시아어 자막으로 보며 정리하는 단어장

4. 동사의 시제가 없다. 명사에 단복수도 없다. 대명사에 성별도 없다.

① 시제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다 느꼈으리라. Eat이 왜 과거형이 되면 Ate이 되고, 과거분사가 되면 Eaten이 되는지... 이유가 없다. 그렇다니까 그냥 외웠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에는 시제가 없다. 아마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따뜻한 여름만 계속되는 인도네시아에서 굳이 "언제"를 따질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Saya(I) pergi(go) ke(to) Korea.

자 이걸 어떻게 해석할까?

"나는 한국에 갔었다."

"나는 한국에 간다."

"나는 한국에 갈 것이다."


모두 다 정답이다. 그래서, 시제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가 없으면 이게 도대체 현재형인지, 과거형인지, 미래형인지가 알 수가 없다.


Saya pergi ke Korea tahun(year) lalu(last). 나는 작년에 한국에 갔었다.

Saya pergi ke Korea besok (tomorrow). 나는 내일 한국에 간다.


단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인도네시아어의 형용사는 명사뒤에 온다는 것과, 명사가 겹칠 때는 영어/한국어와 반대순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Tanggal(day) merah(red) 빨간 날... 공휴일

Tahun(year) lalu (last) 작년

cinta(love) sejati (true) 진정한 사랑


그런데, 이것도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같은 라틴어계열 언어는 이렇게 쓴단다.

Casa(house) Blanka(white) 까사브랑카


② 명사 복수형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어는 복수형도 없다. 다만, 많은 경우에 단어를 반복적으로 두 번 쓰면 복수형이 된다.

Anak (아이)

Anak-anak (아이들)


Child가 모이면 왜 Children이 되는지 모르지만, 그냥 외워야 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단순하고 실용적인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③ 인칭대명사의 성별

영어의 인칭대명사는 정말 토가 나올 만큼 복잡했다.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

He his him his

She her her hers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일본어는 성별이나 나이,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인칭대명사가 변한다.

https://brunch.co.kr/@jay0509/19


근데, 할렐루야!!!

인도네시아어는 인칭대명사에 성별도 없고, 주어나 목적어나 모두 동일하다. 일본어처럼 화자의 입장에서 바뀌지도 않는다.


Saya(I) cinta (love) dia(him/her).

이 문장만 보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가 없다.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도 이 문장만으로는 판단이 안된다. 어떨 때는 너무 단순해도 오히려 정확한 뜻을 알 수가 없어 불편할 때도 있다.

 

3. 하루 종일 축하한다

인도네시아어로 "감사합니다"는 "Terima(receive) kasih(love)"이다.

인도네시아어의 감사합니다를 직역하면, "사랑을 받았습니다."이다... 음매 로맨틱한 언어...

그런데 대답도 멋지다.


Terima kasih 감사합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Sama sama 천만해요 (same same...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Terima kasih kembali (back) 저도 사랑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이런 나라의 사람들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인도네시아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만능 치트키 같은 단어가 "Selamat"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축하한다는 뜻의 Congratulations 정도가 되는데, 하루 종일 쓴다.


Selamat pagi 좋은 아침(아침을 맞이한 것을 축하해)

Selamat siang  좋은 오후(오후를 맞이한 것을 축하해)

Selamat sore 좋은 저녁 (저녁을 맞이한 것을 축하해)

Selamat malam 좋은 밤 (밤을 맞이한 것을 축하해)


Selamat makan 맛있게 먹어 (먹게 된 것을 축하해)

Selamat istirahat 잘 자 (자게 된 것을 축하해)

Selamat tinggal 잘 가 (가게 된 것을 축하해)


Selamat datang 웰컴! (오게 된 것을 축하해)

Selamat pernikahan 결혼 축하해 (이건 그냥 결혼 축하해)

끝도 없이 슬라맛이다... 이건 정말 셀 수가 없다.

그들은 하루 종일 서로 축하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산다.


감사하고, 축하하고, 사랑을 받고 돌려주고...



인도네시아의 최저인금은 월 30만 원 정도, 수도인 자카르타는 50만 원 정도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의 연봉이 내 20년 전 연봉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그래도, 어딜 가도 미소 짓는 사람들뿐이다. 세계행복지수 같은 통계에서도 항상 10위권에 드는 항상 행복한 인도네시아인들...

나는 오늘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 일본에서 넷플릭스 한국드라마를 인도네시아어 자막으로 보며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꿈에서도 그리는 란차마야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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