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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만 제이 Sep 27. 2020

"우리나라""우리 마누라"는 우리만 쓴다?!

각 언어별 인칭대명사에 대한 잡념 (1인칭 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 "꽃" 중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흔히 한자의 사람 "人"의 어원에 대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철학적인 교훈은 있으나, 잘못된 어원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람 "人"의 어원이 어떠하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모든 인간의 "희로애락"의 근원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에는 알게 모르게,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문화적,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그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정서적 특징이 있는지,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논문을 분석하거나, 구체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닌 제 나름의 의견이니,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인칭 : 나 혹은 나를 포함한 집단을 일컫는 말 >

한국어 :  "나" "저" "우리" "저희들"
영어 : "I" "we" "me" "us" "my" "our"
일본어: 나 "私(와타시/와타쿠시)" "俺(오레)" "僕(보꾸)" "あたし(아타시)" "わし(와시)" 외 다수     
               우리 "私たち(와타시 타치)" "私ども(와타시 도모)" "俺ら" "僕たち(보꾸 타치)""僕ら(보꾸라)"
                         "我々(와레와레)" 외 다수, 참고: 我が国(와가쿠니/우리나라)
인도네시아어: 나 saya, aku, gue 등
                       우리 kita (청자를 포함한 우리) kami (청자를 제외한 우리) 등
                       *주: 인도네시아어 발음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영어 발음 그대로 읽으면 됨.


 한국어 1인칭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역시 "우리"가 아닐까 한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나를 포함한 집단을 더 특별히 그리고 더 소중히 여겨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언어에 비해 특히 "나"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우리나라" 심지어 "우리 마누라(?!)"까지...

이 예들을 영어로 번역하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my company" "my family" "my wife"로 모두 나를 중심으로 한 "my"가 "our" 보다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외국인에게 "Our wife"라고 하면, 아마 기겁을 할 것이다.

영어 원어민에게 "우리나라"는 "My country" "Our country" 보다는 그냥 "Korea"로 쓰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하는데, 이는 일본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은 워낙에 한일전에서 "대~한~민~국!!!"과 애국가의 "우리나라 만세~"를 많이 들어서, 한국을 "우리나라 만세! 대한민국~!"를 흉내 내면서 비꼬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일본어로 번역된 단어가 아닌,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영어 1인칭에서는 "I"가 재미있다. 다른 단어들은 문장 속에서 쓰일 경우, 다 소심하게 소문자로 변신하는데, 유독 "나"를 지칭하는 "I"만 나 홀로 꿋꿋이 어디에 서 있던 대문자 "I"로 쓰인다. 어떤 분들은, 영어권 사람들의 정서가, 남들보다 "나"를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러 인칭대명사를 나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를 의미하는 "I"와 "me"는 항상 마지막에 쓰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예: He and I, You and me)

개인적으로는 남들보다 자신을 우선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자아를 소중히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근거는 없다...


일본어 1인칭은 정말 너무 많아서, 다 쓸 수조차 없다. 위쪽에 예로 든 것은 대표적인 예 일뿐이고, 그 외에도 지방에 따라, 시대에 따라 아직도 수많은 1인칭이 더 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나" "우리"의 성별, 성격, 지위에 따라 쓰는 표현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쓰이는 상황에 따라서도 그때그때 다르게 쓴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1인칭 모음, 출처 : http://tchal.net/article/186205727.html

우선 성별에 따라서는 남자는 주로 "俺(오레)"와 "僕(보꾸)"를 쓰는데, 자기가 스스로 좀 남자답고 와일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남자들은 주로 "俺"를, 어린 남자애들이나, 성인이라도 좀 부드럽고 젊잖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僕"를 쓴다. 일본 야쿠자 영화나 만화에서 아마 "私" 나 "僕"로 자기를 칭하는 야쿠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야쿠자가 구렁이를 삶아 먹은 듯한 저음으로, 목구멍을 긁어가며 "오레가~~"라고 하는 장면은 "장군의 아들" 등의 영화에서 많이 보셨으리라...


그런데, 평소 생활 속에서 "俺"나 "僕"로 자기를 칭하는 남자들도, 보통 비즈니스 상에서는 "私"를 쓴다. "私"는 "와타시" 혹은 "와타쿠시"의 두 가지 발음이 있는데, "와타쿠시"가 "와타시" 보다 자신을 더 낮춰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쓰인다.  "わし(와시)"는 흔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들이 주로 사용한다.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이메일에 자신을 "小生(쇼우 세이)"라고 쓰는 곳도 있다. 우리말로 읽으면 "소생"인데, 내 이미지는 한국 사극에서 머리 땋은 귀부인이 다소곳하게 "소생은 전하의 뜻을 따르겠사옵니다" 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수염 덥수룩한 샐러리맨 아재들이 이메일에 쓰는 단어다.


그럼 여성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까? 일반적으로는 "私(와타시)"가 가장 흔하다. 그런데, 젊은 여성들은 귀엽게 보이려고 "あたし(아타시)"라고 자기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어릴 때 하다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졸업할 것 같은, "자기 이름 스스로 부르기"를 성인이 되어서도 꿋꿋이 유지하는 여성들도 간혹 있다. (예: 히로미(나)는 그 남자가 싫어.)


1인칭 단수만으로도 이 만큼 썼는데, 복수도 여러 가지가 있다. 대충 위에서 설명한 단수에 영어의 복수형 "s"처럼 "ども" "たち" "ら"를 붙여 복수형을 만드는데, "ども"가 비즈니스 등 공식적인 상황에서, "たち"는 중립적으로 쓰이며, 일반적으로 "ら"는 약간 러프한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私ども(와타쿠시 도모)"가 가장 정중한 "저희"이고, "俺ら"가 가장 러프한 "우리"에 해당한다.


에고, 힘들어... 날 새것네...    


마지막으로 위에 참고라고 따로 빼놓은 게 있는데,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我が(와가쿠니/우리나라)이긴 하지만, 이건 정치인들이 주로 쓰는 표현이고, 일반 일본인이 이야기할 때는 그냥 "일본"이라는 표현인 "日本(니혼/닛뽄)" 일반적이다.


1인칭만 해도 이렇게 복잡한데, 일본어는 2인칭도 복잡하다. 한국어와 문법이나 어법이 가장 유사한 언어가 일본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일본어는 한국어에 비해 유독, 1인칭과 2인칭이 복잡하게 발달했을까?


위에 몇 가지 예를 들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혹자는 일본어의 1인칭, 2인칭에 관련된 단어 숫자가 전 세계 언어 중 가장 많다고 하는데, 위키피디어를 봐도 수십 개가 나온다. 일본인들 스스로도 왜 이렇게 1인칭이 발전하게 됐는지 궁금한지, "일본어는 왜 1인칭이 이렇게 많은가"라는 제목의 논문이나 기사 등이 여럿 검색된다.


대충 설명은 비슷한 것 같은데, 메이지(明治) 시대 처음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일본인들은 "개인"이라는 개념 조차 없어서, "가" "촌" "번" 등의 지역 공동체 조직 내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당신"에게 "나(의 자아)"를 맞춰야 한다는 암묵적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신"과 "나"의 미묘한 관계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호칭을 커스터마이즈 하다 보니 수도 없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외국인인 우리가 일본어를 말할 때는 그냥 "私(나)" "私たち(우리)" 하나로 모두 때우면 되지만, 어떠한 상황, 어떠한 성향의 일본인과 대화해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일본어 최상급이 되기 위해서는,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다양한 1인칭, 2인칭의 종류와 쓰임새의 구분이지 않나 싶다.

  

인도네시아어 1인칭에서 재미있는 것은 복수형인 "우리(들)"이다.

인도네시아의 "우리"는 kita와 kami의 두 가지가 있는데, kita는 청자 (듣는 사람)를 포함한 "우리"이고, kami는 청자를 제외한 "우리"이다.

예를 들면, 회사 임원이 종업원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Perusahaan kita(우리 회사)"라고 하여, 이야기를 듣는 종업원들까지 포함한 "우리"라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거래선 앞에서 회사 소개를 할 때는 청자 (즉 거래선)는 "우리 회사"의 일원이 아니므로, "Perusahaan kami(저희 회사)"라고 하는 게 맞다. 인도네시아인 중에서도 이걸 혼동하거나, 알면서도 귀찮아서, 모든 상황에 kita를 쓰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하다만 (특히 자카르타 사람들), 문법적으로는 틀리는 표현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어도 한국어처럼, "우리나라 (Negara kita/kami)" "우리 회사(Perusahaan kita/kami) " "우리 가족 (Keluarga kita/kami)"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굳이 이때도 청자를 포함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kita와 kami로 구분해서 쓰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뇌피셜에 가까운 나의 추측인데, 인도네시아인들도 한국인 못지않게 "우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는 300여 개의 민족, 600여 개의 지방어 (주: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음)가 존재하는 나라인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에 말레이반도, 말라카 해협의 소수민족이 쓰던 언어였던 말레이어를 인위적으로 표준어로 제정하면서,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이 쓰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한번 소개할 생각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어가 인도네시아인들 전체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언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레이반도,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말라카 해협, 출처 : 나무위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태평양이 연결되는 지역으로, 유럽, 아프리카, 인도와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를 최단거리로 항해할 수 있는 통로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통과하는 선박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이 지역은 아랍인, 유럽인 등 수많은 이민족이 뒤섞여 교역을 하던 지역으로, "당신을 포함한 우리(Kita)"와 "당신을 포함하지 않는 우리(Kami)"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교역이나 이민족과의 교류에서 오해의 소지없이 유용하게 쓰였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이렇다 할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글 제목으로 돌아가서...

"우리나라"를 일반적으로 쓰는 언어(인도네시아어)를 만나서 반갑기는 하지만, 인도네시아인도 "My wife"를 "Istri kita (우리 와이프)"라고는 하지 않는다...  

  


(후기)

원래는 한편에 1인칭, 2인칭, 3인칭에 대해 모두 쓰려했는데, 1인칭 하다가 지침...

2인칭, 3인칭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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