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선택의 기준
나는 외국어를 좋아한다. 아니,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인간의 언어"를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이 브런치북을 시작한 계기이다.
현재 나는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유창함"이라는 것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단어 이면서, 스스로에게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쑥스러운 단어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도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는 모국어, 굳이 따지자면 "Native 대구사투리 Speaker"이다.
영어는 아직 언어발달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베르니케 영역"이 말랑말랑하던 중학교 1학년(만 13세)부터 영어 덕후가 된 덕분에 준네이티브(Near-native)와 비즈니스 레벨 중간 어느 지점에 있지 않나 싶다.
일본어는 대학 4학년이던 2000년에 히로시마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면서 배우기 시작해서, 졸업 후 LG의 일본영업부에서 6년 근무, 문부성장학생으로 일본 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졸업 후에 종합상사에 입사해 현재까지 14년째 근무 중으로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생활한다. 이제 어떨 때는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편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준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는 주재원으로 6년간 근무하면서, 회사 지원으로 주 1, 2회씩 개인레슨을 받아, 현재는 회의주재나 비즈니스 미팅을 인도네시아로 가능한 수준이다. 기타 치면서 인도네시아 노래 부르는 것도 취미 중의 하나이다.
언어학적으로는 1개 국어만 구사하는 사람을 Monolingual 이라 하며, 전 세계 인구의 약 40%로 파악하고 있다.
2개 국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을 Bilingual 이라 하며, 전 세계 인구의 약 43%.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Trilingual이라고 하며, 전 세계 인구의 약 13%.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Multilingual이라고 하며, 전 세계 인구의 약 3%.
5개 국어 이상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Polyglot이라고 하며, 전 세계 인구의 1% 미만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Poly는 "여럿"이라는 의미의 many라는 뜻이고, glot은 "혀"라는 의미의 tougue이니, many tougues를 가진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출처: https://ilanguages.org/bilingual.php
대학 4학년에 처음으로 영어 외의 다른 언어인 일본어로 외국인과 소통이 가능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급격히 넓어지는 경험을 했고, 막연히 60세가 되기 전까지 5개 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을 인생목표의 하나로 정했다. 그때는 Polyglot이라는 표현이 있는지도 몰랐다.
일본어와 인도네시아는 어쩌다 필요에 의해 습득하게 되었지만, 나머지 한 언어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외국어를 유창한 레벨까지 구사할 정도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수 백 시간에서 수천 시간 이상의 시간과,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히 공부해 나가야 하는 끈기와 성실함이 요구된다. 거기에 어느 정도의 어학적 혹은 음악적 센스가 없으면 발음이나 액센트도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하는 고민 다음으로, 엄청시리 고민스러운 결정이라 생각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었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는 제2 외국어가 필수과목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남자고등학교는 독일어, 여자고등학교는 프랑스어를 제2 외국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나도 선택의 여지없이 독일어를 배웠지만,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수많은 과목 중의 하나였을뿐,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독일어와의 인연은 끊어졌다. Auf Wiedersehen! (Good bye)
대학시절이던 90년대 후반에는 중국이 급부상해서, 앞으로 중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지금 영어를 못한다는 것처럼 사회에서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곧 도래한다는 중압감을 느끼던 시대였다. 그 덕에 중국어도 교양과목으로 2학기를 배웠었는데, 그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再见!(Good bye)
그 후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외국어를 하나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독학으로 하다가 그만둔 언어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첫째로 발음이 너무 이쁘고, 간지 났기 때문이고, 둘째는 영어와 비슷한 문법이라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였고, 세 번째는 스페인과 프랑스 여인들이 이쁘기 때문… 웁스! 이건 농담이고, 유럽문화에 관심과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독학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언젠가 제5 언어"를 습득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몇달 전에 Duolingo라는 기막힌 어학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다. 1년에 10만 원 정도의 구독료를 내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같은 메이저 언어 외에도 40개 국어 이상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다만, 한국어 메뉴로 들어가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의 3개 국어만 선택이 가능하여, 나는 모든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영어 메뉴로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중국어로 바꿔서 현재 65일째 아침저녁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매일 빠짐없이 학습 중이다.
Duolingo에서 "제5 언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고민을 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어학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지금까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만 고민하다가, 보너스를 두둑이 받아서 찾아간 고급 중식당에서, 메뉴를 펼치며 "팔보채냐, 양장피냐, 깐풍기냐, 샥스핀 수프냐" 메뉴 전체 중에서 고민하듯이...
이번에 Duolingo로 처음에 프랑스어로 시작했다가, 중국어로 바꾼 과정에서 외국어 학습의 고려요소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1. 유용성, 가성비 (지불한 시간과 노력에 대비한 성능)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취업조건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하며, 취업 후에도 업무상 사용하는 빈도도 상당히 높다. 특히 영어는 나처럼 무역이나 투자업무를 하는 직종에서는 필수 언어이다.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 즉 그 언어의 유용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 세계의 언어사용자수 랭킹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언어에 관한 통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인 Ethnologue 가 발표한 각 언어별 사용인구에서, 영어는 15억 명, 표준중국어(만다린)는 11억 명, 스페인어 5억 6천만 명, 프랑스어 3억 명, 인도네시아어 2억 명 등이라고 한다. 영어와 만다린만 잘해도 25억 명이 넘는 인류와 부담 없이 소통할 수가 있다.
2. 사용목적
아주 오래전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다.
"신과의 대화는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여인과의 대화는 프랑스어로, 포탄 날리는 전장에서는 독일어로, 비즈니스 거래에는 영어가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이 표현을 누가 했는지, 아무리 구글링을 해봐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그냥 그 라디오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왠지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독일에서 의학을 배우고 싶다면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고, 프랑스에서 파티쉬에나 소믈리에 유학을 하고 싶다면 프랑스어를, 최고의 초밥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면 러시아를 배우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목적을 우선하면, 위에서 언급한 범용적인 유용성이 아니라, 그 언어만이 가진 특정한 유용성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있다.
3. 문화에 대한 호기심 동경
그 언어가 사용되는 국가나 문화에 대한 동경심도 뺴 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대중문화는 전 세계에 수많은 오타쿠를 양산했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서 유창해진 친구들도 많았다. 드물기는 하지만, "사카이 노리코"나 "핑크" "엑스제팬" 같은 J-Pop에 빠져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세상이 많이 변해, 지금은 K-Pop, K-Drama가 전 세계를 매료한 지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거기에 인터넷의 발달과, 넷플릭스의 보급등으로,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파급력으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그러면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는데, 인도네시아인과 일본인등의 외국인들이 마치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유창하게 한국어를 한다.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계속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창해졌단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프랑스 친구와는 완전히 한국어로만 대화를 한다. 정말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엄청 많아졌다.
생각해 보면, 내가 프랑스어에 대한 동경을 30년 넘게 가져온 것도, 소피 마르소의 열혈팬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그 어떤 유용성이나 기치효용성보다 우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서 노력하는 사람을 누가 이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BTS 한 그룹이 외교관 1,000명 이상의 애국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4. 교재의 접근성
아무리 좋아서 공부하고 싶어도, 학습교재나 환경이 좋지 않다면 학습하기가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어는 운이 좋아 주재시절 회사지원으로 공짜로 배운 샘이지만, 만약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지 않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독학으로 공부하려 했다면, 교재 구하기 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고, 원어민과의 회화연습도 거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영어나 중국어 같은 메이저 언어는, 유튜브에서 검색해도 공짜 강의가 끝도 없이 나온다. 그것들만 잘 선택해서 꾸준히 공부해도 어느 정도 레벨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프랑스어를 포기하고 중국어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의외로 프랑스어 교재나 유튜브 강의 같은 학습교재가 많지는 않았다.
5. 모국어와의 유사성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로서는, 일본어 학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한자교육을 철저히 받은 마지막 한자교육세대로, 한자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인도네시아어는 희한하게 영어와 어순과 문법이 비슷해서, 영어문법에 수십 년간 단련된 나의 뇌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처럼, 자신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의 유사성이나 관계성도 외국어 학습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시아어는 거의 비슷한데, 서로 자기 나라 말을 써서 대화해도 대충 대화가 된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인과,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인은 서로 자기 언어로 대화해도 어느 정도 대화가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중국어도 기본은 한자어이니, 영어와 알파벳 발음이 많이 다른 프랑스어보다 허들이 많이 낮았다.
여러분은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다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외국어를 공부하는가는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한다만, 내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하나 늘어간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며,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길이라 생각한다.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have another soul."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새로운 영혼을 얻는 것이다.
(Charlemagne 샤를마뉴, 프랑크 왕국 2대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