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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25. 2021

작당모의作黨謨議의 변辯

첫 매거진 발행을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꽤 많은 연락을 받았었다. 주로 메일을 통한 것이었고, 연락처가 알려진 경우에는 직접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있었다. 역시 원고 청탁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가끔씩 강의 요청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출판사입니다. 선생님의 원고에 관심이 있어서요. 아, 본명本名으로는 안 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아무개님 맞으시죠, 출판사입니다. 공동 저자로 참여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 그렇게는 안 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처음 연락드립니다, 여기는 검찰청입니다. 고객님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어서... 반갑습니다, 출판사입니다. 저희는 작가님의 책을 내고 싶습니다. 네, 기획서와 초고 보내주세요. (한 달 경과) 죄송한데요 제가 퇴사했습니다. (또는) 진지하게 검토한 결과, 출간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아니, 작가님, 왜 욕을 하세요?"


너거 출판사 사장하고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엉?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출간 제의는 분명 기쁘고 즐거운 유혹이겠으나, 이상하게도 나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가 진행이 되지 않아도 아쉬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내 분수를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연락들을 그저 일상의 잔잔한 재미라고만 생각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글 쓰기를 즐길 뿐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그 ‘연락’의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


대부분은 회신할 가치도 없는, 스팸이나 마찬가지인 메일들이었다. 어쩌다 고민하도록 만드는 내용도 있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메일 발신자가 브런치에 남겨둔 글들이 적어도 나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콧대를 세우며 촉탁을 거절할 정도로 대단한 글쟁이가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결정은 간단했다. 죄송합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럴 위인이 못됩니다. 내가 보낸 답신의 전부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알람을 듣고 메일함을 열었다. 시작은 똑같았다. "작가님의 글을 오랫동안 지켜봤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모시려고 합니다. 저희는 책을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여타의 메일보다는 진중함이 돋보여서 본문의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메일이지만 술술 잘 읽힌다 싶었다. 글의 끄트머리에,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하려면 링크를 누르란다. 이 정도면 참 예의 바른 분이구나 하면서 기대 속에 버튼을 눌렀다. 파란 창이 새로 떴다. 그리고 거기에는,


참여하시려면 저희 프로그램을 구매하시면 됩니다. 550,000원. 할인도 됩니다.


새로 살 각오를 하고 마우스를 집어던져버렸다. 박살이 났다. 애먼 마우스가. (마! 웃어? 마우스, 미안하다. 너무 허탈해서 하지 말아야 할 썩은 개그가 튀어나왔다.)




다음날 아침, 또 알람이 울렸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짜증이 났다. 새 마우스를 미처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욕을 내뱉을지 내 입은 아까부터 저 혼자 열심이다. 어디 보자, 숫자 욕을 해 줄까, 동물 욕을 해 줄까? 짜라란 짜라란 짠짠 (feat. 아귀 in 타짜). 노트북의 패드를 어색하게 놀려 메일을 열었다.


좋은 아침 보내셨나요? (전략) 매거진에 함께 하지 않으시겠어요? (중략) 원고료는,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후략)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함께 하겠다는 회신을 써서 바로 보냈다. 메일을 받은 시각으로부터 정확하게 20분 뒤였다. 판단의 기준은 명확했다. 나를 초대한 이가 평소 애독하는 작가님이셨고, 오십 평생에 처음으로 필사까지 하게 만든 시詩를 쓰신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거진에 동참하는 작가님들의 면면이 내게는, 담 너머로 몰래 훔쳐보기만 하던 반장 집 둘째 딸 같은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둘째 딸이 난데없이 토요일 저녁에 영화 보러 가자는데 그걸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치와 유머가 듬뿍 담긴 초대 메일은 덤이었다.


며칠 후, 단톡 방이 열리고 본인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매거진의 준비에 있어서도 일말의 거침이 없는 작가님들 덕분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매거진의 제목, 운영 방향, 편집 원칙, 글의 1차 주제, 각자의 발행일자 등을 공유했다. 내가 할 것이라고는 네네 하며 답을 달거나, 재활용도 안될 썩은 개그를 투척하는 것뿐이었다.


첫 글의 발행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유가 철철 넘쳤다. 매거진 글? 그까이꺼 머 대~충 일상에서 흔한 주제 하나 골라서, 기승전결 맞춰 욱여넣고, 그럴듯한 사진 한 개 픽사베이에서 다운 받아서 붙여 넣고, 그러면 끝! 됐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던 중에 어느덧 첫 작가의 발행일이 되었다.


플레이 보올~!!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김태희와 김연아가 응원하러 왔다. 팬이 천 명이 넘다 보니 응원단의 퀄리티도 장난이 아니었다. 타격, 주루, 수비, 어느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톱타자였다. 그만큼 인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타석에 들어선 다음,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유가 철철 넘치는 행동이었다.


투수가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타자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투수의 초구를 노렸다. 자신감의 반증이다. 따악! 역시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였다. 깔끔했다. 그의 전매특허인, 거침없이 호쾌한 스윙이 일품이었다. 곡우에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 같았다.


충분히 2루를 노려볼 만도 했지만 그는 무리하지 않았다. 첫 타석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다구. 1루를 밟은 그가 대기 타석에서 기다리던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봤지? 이 정도야, 하는 표정이었다. 팬들이 몰려와 침을 튀기며 정말 잘 쳤다고 칭찬을 했다.


나는 형식적으로 손뼉을 쳤다. 쳇, 겨우 안타 하나 가지고 다들.




2번 타자가 타석의 흙을 발로 골랐다.


초구를 그냥 보냈다. 꽉 찬 스트라이크였다. 2구는 빠지는 볼이었다. 3구는 파울이었다. SBS, 투 스트라이크 원 볼로 기록되다. 카운트가 타자에게 약간 불리해졌다. 그러나 타자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국불사에서 밤샘기도를 하며 수양한 것 같았다. 4구는 볼이었다. 5구는 존Zone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볼이었다. 관중석에서 함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졌다. 스트라이크라 해도 무방한 공이었지만 심판의 손은 올라가질 않았다. 풀 카운트였다. 관중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대체 언제 치고 나갈 거냐고. 이러다가 내일 새벽까지 경기를 하겠다고.


타자는 야간 경기에 강했다. 해가 지고 나면 자신감이 넘쳤다. 다시 투수를 노려 보았다. 마지막 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투수가 회심의 일구를 던졌다. 배트가 힘차게 돌았다. 따악. 안타! 우익수의 키를 훌쩍 넘어 펜스를 바로 때리는 안타였다. 그러나 그때 1루 주자가 한눈을 팔고 있었다. 치아 교정틀을 갈아 끼우느라 타구의 방향을 놓친 것이었다. 충분히 3루까지 갈 수 있었지만 2루에서 아슬아슬하게, 그것도 겨우 살았다. 덕아웃을 향해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어쨌거나 주자 1, 2루가 되었다.


2번 타자는 펜스의 광고판을 맞췄다고 상품으로 TV 한 대를 받게 되었다. 집에 TV가 없다고 아쉬워하더니 잘 된 일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나는 건성으로 손뼉을 딱 두 번 쳤다. 딱딱. 1번 타자가 3루까지 갔더라면 세 번 쳤을 것이다.




이제 3번 타자의 차례였다.


역시 천 명이 넘는 팬을 보유한 실력있는 강타자다. 밤마다 작은 구름을 타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생활이 가려진, 신비한 선수였다. 시끄러운 것을 피한다 하여 피망避忙이라는 호號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타석에 들어선 그가 갑자기 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을 투수에게 펼쳐 보였다. 잠시 후, 투수가 갑자기 글러브를 땅에 내려놓고 노노,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모든 내야수와 심판들이 그 장면에 감동을 받았다. 그 사진을 확인한 순간, 이건 이미 끝난 경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몰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상대편 감독이 코를 풀면서 고의사구를 지시했다.


3번 타자의 내공은 그 정도였다. 공 한 개도 상대하지 않고 본인은 1루로 걸어갔다. 경기 위원장은, 마음 같아서는 경기를 바로 끝내고 싶었으나 규정상 5회까지는 해야 하는 것이 야구의 룰이었다. 그때, 관중석의 누군가가 야유를 했다. 마운틴 블루 Mountain Blue 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 남자였다. 그는 3번 타자가 고의사구로 걸어 나가는 것을 비난했다. 1루를 밟은 3번 타자가 천천히 돌아서더니 야유하는 관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디서 야유질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느새 만루가 된 것이다. 다음 차례는 나였다.


실력이 좋아서 4번 타자가 아니라 그저 네 번째 치는 타자일 뿐이라고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달랬다. 꽉 찬 관중의 함성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이전까지 수백 번, 수천번도 더 섰던 타석이다. 평소처럼 하자. 공을 보고 배트를 휘두르자.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출루한 세 타자가 나를 보려 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었으나 그들의 입 모양은 그렇지 않았다.


"어이, 늙은 양반, 신사답게 행동해. 포수 플라이, 헛스윙 삼진, 그래, 죽으려면 혼자 죽어. 만약 병살타 아니면 삼중살? 그러면 너는 정말 삼족三足을 멸하게 될 거야. 그럴 거면 차라리 무너지는 마포대교랑 같이 떨어지든가. 여기서 한 점도 못 내면, 네가 부업으로 운영한다는 한문 학원도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거기 훈장 곽 아무개 영감도 네X버로 보내 버릴 테니 각오하라구."


이글거리는 그들의 눈빛이 내 심장에 날아와 박혔다. 욕은 칼보다 강하다.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왜 이 팀에 들어왔던가. 나는 타임을 요청하고 잠시 타석에서 벗어났다. 야유가 쏟아졌다. 연습 스윙을 다섯 번 했다. 이렇게도 돌려보고 저렇게도 돌려 보았다. 그중 두 가지의 폼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면허 시험장에 도착해서 시동 거는 법을 배우는 꼴이다.


깊은숨을 내쉬면서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가 천천히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다리를 끌어올리더니 힘차게 공을 던졌다. 내게로 공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공이 내 앞을 지난다 싶을 즈음에 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정통으로 맞았는데? 코 좀 찾아봐, 눈은 여기 있고. 야 이거, 선수 생활 끝장났는데? 봐줄 만한 게 얼굴밖에 없던 친군데 어쩌니? 그래도 다행이야. 밀어내기로 1점은 냈잖아?"


나는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다행히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그렇게라도 살아난 건, 전부 너희 어머니 덕이야. 감사하면서 살아! 응원인지 꾸지람인지 조금 헷갈렸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이걸로 됐어. 1점 냈잖아. 이걸로 됐어.'   




발행을 마치고 났더니 함께 하는 매거진 가족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입에 발린 형식적인 겸양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분들의 필력筆力에 비해 나의 그것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사고思考 없이 쓴 글, 그저 폼만 잡은 글, 내용 없이 길기만 한 글, 그런 창피함을 덮어둘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매거진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매거진에 썼다고 해서 평소 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과 다른 점은 없었다. 특히나 댓글 수에 있어서 더더욱 큰 차이는 없다. (구독자와 라이킷, 조회수는 처음부터 내 관심사가 아니니 논외論外로 하고)


매거진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글쓰기 경험이다. 매거진 가족들 누구도 그런 압박을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만든 부담이었다. 혼자서 느낀 책임이었다. 안타는 못 치더라도 병살타만은 피해보자. 그래서 이전의 그 어떤 글보다 정성을 들이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없던 필력이라 어디서 빌려오거나 사 올 수도 없었고, 고작 물리적인 시간만 원 없이 퍼부은 것 같다. 그 역시 진지하게 반성하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내 첫 매거진의 첫 글을 올렸다. 모든 것이 매거진 가족의 도움이고, 보잘것없는 글을 언제나 읽어주시는 글 친구님들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져본다. 더 잘 쓸 거라는 결심이 아니다. 더 유명해질 거라는 다짐이 아니다. 다만, 변함없이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써 보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첫 번째로 매거진 가족들과의 약속이고, 두 번째는 늘 읽어주시는 글 벗님들과의 약속이며, 세 번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어떤 글을 써 볼까 궁리부터 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고작 글 한편 올린 것을 두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꼴조차 그저 좋게 봐주시기를 바라면서 덧붙입니다.


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공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공야장(公冶長)에서 이르되 자공이 묻기를, “공문자를 어찌하여 문(文)이라고 시호 하였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문이라 부른 것이다.”


나의 부족함에 언제나 따뜻한 답을 주시는 매거진 가족들,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jak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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