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라면을 공짜로 먹게 해 주겠다는 말에 종덕이를 따라나섰다. 녀석의 엉뚱한 장난으로 본의 아니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도 있었지만, 천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고 공부도 곧잘 했던 터라 우리는 친하게 지냈다. 오늘은 뜻밖에 '공짜 라면'이란다.
본인이 사주겠다는 의미의 공짜는 아니니, 필시 모종某種의 잔꾀 내지는 장난이 숨어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그냥 내가 라면 값을 치르면 될 일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가늠했다. 라면 한 그릇, 삼백 원. 그 정도는 충분히 있다. 과연 어떤 방법이길래 공짜 라면을 장담하는 건지 교문을 통과할 즈음에는 그것이 더욱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정문 옆에는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환갑을 넘긴 초로初老의 영감님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다. 말이 분식집이지 실제 메뉴는 라면과 우동, 두 개뿐이었다. 라면과 우동이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요동치는 허기를 달래기에는 나름 충분했다. 그래서 자투리 시간이나 저녁 자습 전까지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 빛의 속도로 분식집을 다녀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넉넉한 웃음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학생들을 친손자 대하듯 했고 우리도 그런 구수함이 싫지 않았다.
자리를 정한 종덕이가 라면 두 개를 주문했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연신 콧노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궁금증과 함께 공연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성탕면이 곧 탁자에 놓였다. 종덕이는 그릇을 받자마자 코를 박고는 라면 가닥을 빠르게 입으로 끌어올렸다. 잠시 멈칫했던 나도 종덕이를 따라 젓가락을 놀렸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우는 데는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면은 진작에 사라졌고 이제 국물만 조금 남았다.
그릇을 받쳐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는가 싶던 종덕이가 슬쩍 주방 쪽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슬며시 끄집어냈다. 그리고 잽싸게 라면 그릇에 담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은 파리였다. 녀석이 말한, 라면을 공짜로 먹는다는 방법이란 게 겨우 파리 투척이란 말인가? 이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말리기도 전에 종덕이가 큰 소리부터 질렀다.
“에이씨, 할배요! 이게 뭡니꺼?”
그 소리를 듣고 영감님이 달려왔다. 그릇 안을 확인한 영감님은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얼굴이 벌게진 종덕이가 라면 값이 얼마냐고 또 소리를 질렀다. 주방 들머리에서는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감님은 우리에게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 나는 삼백 원이라도 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종덕이가 내 옷깃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영감님 부부는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종덕이는 앞장서서 걸었다. 또 콧노래였다. 하지만 나는 뒤통수가 달아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돌아볼 수는 없었다. 금방이라도 영감님이 따라와 내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곧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종덕이 녀석이 히히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춧가루가 낀 이를 딱딱거리며 내게 말했다.
“맛있제? 공짜로 라면 묵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뒷문에서 나를 부를 것 같아 자습 시간 내내 불안했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감님 내외분의 얼굴이 밤새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쉬는 시간마다 교문 옆에 서서 분식집을 살폈다. 3교시를 마쳤을 때 마침내 셔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재빨리 달려갔다. 가게 문을 열던 영감님이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해서 어떡허나.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말을 꺼내려니 얼굴부터 화끈거렸다. 주먹을 꽉 쥔 채로 어제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이천 원을 영감님께 내밀었다. 할아버지, 정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어떤 야단이라도 들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영감님이 갑자기 허허 웃으면서 돈을 만류했다.
“그 학생이 장난기가 참 많아요. 지난번에는 우동 먹다가 그러더라고. 괜찮아요. 우린 다 이해해요. 한참 장난치고 싶을 때잖아요. 우리 손주도 아마 그럴걸? 그래도 학생이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돈은 넣어둬요, 정말 괜찮아요.”
영감님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영감님의 손이 내 어깨를 토닥거릴 때마다 마치 매를 맞는 것처럼 아팠다. 교실로 돌아오는 내내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에 혼자 분식집으로 갔다. 얼굴을 알아본 할머니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감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음이 틀림없다. 라면 한 그릇을 시켜 후딱 먹어 치웠다. 그리고 계산대에 이천 원을 내려놓고는 후다닥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세 그릇의 라면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드렸지만 죄송함이 사라지기는커녕 어제보다 더한 창피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후로 반 친구들이 라면 먹으러 가자고 꼬셔도 별의별 핑계를 댄 다음 그 자리를 피했다. 어쩌다 하굣길에 가게 앞에 나와 있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내가 먼저 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옆에서 걷는 친구와 유별나게 다정한 체를 한다거나 일부러 먼 산을 보면서 그 앞을 서둘러 지나치곤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먹는다든지, 영감님 내외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만큼의 뻔뻔함은 내게 없었다. 졸업할 때까지 두번 다시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아내는 라면에 꽤나 인색한 편이다.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나도 굳이 아내에게 라면을 조르지는 않는다. 자기 뜻을 알고 따라준다며 아내는 좋아하지만, 내가 라면에 데면데면한 것에는 사실 나만의 그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미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라면을 볼 때마다 저절로 그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분식집 영감님 내외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