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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l 22. 2021

만반잘부를 아십니까?

핑거 제너레이션에 은근슬쩍 묻어가며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어린 나를 앉혀두고 대화하기를 즐겼다. 당신의 배움이 짧았던 탓에 학업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사고思考의 폭을 넓혀 주었다. 아버지와 마주한 모든 순간들이 언제나 좋았다. 특히나 비가 와서 일을 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내 차지였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늘 이런 말로 시작되었다.


“요즘은 뭐가 재미있노?”


그러면 나는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친구들과의 일을 각색하거나, 이주일의 춤을 흉내내기도 했다. 반응이 시원찮다 싶으면 그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코미디언들의 유행어流行語였다. ‘영구 없다’에서부터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또는 ‘잘될 턱이 있나’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행어를 총망라한 다음,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다.


“아버지, 이거 모르면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도 않아요.”


그 말이 먹혔는지 아버지는 어색한 몸짓으로 ‘영구 없다’를 흉내내기도 하고, 손을 문질러 턱에 가져다 대면서 ‘잘될 턱이 있나’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엄마가 부침개를 들고 우리 옆에 앉을 때까지 부자父子의 유행어 수업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다. 물려받은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공부야 학교에서 어련히 잘 가르쳐 주실 테고, 모자란 것은 학원에서 보충할 테니 내가 아들의 학습에 끼어들 틈은 다, 아니 거의 없다. 대신 아들과의 자유로운 대화가 내 역할 중 하나인 것이다. 마치 그때의 내 아버지처럼 말이다. 아들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싫어하면 용돈이 끊긴다.


“요즘은 뭐가 재미있어?”


패턴은 똑같다. 학교에서의 이야기, 친구들의 고민, 그것에 대한 아들의 생각. 때론 내가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폭이 넓은 아들의 관심사. 시대가 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아쉽다. 눈치를 보다가 내가 슬쩍 묻는다.


너희들만의 유행어, 이런 거 없니?”


절대로 유행에 뒤쳐질 수 없다는 욕심이지만 웬만한 건 모두 따라잡고 있다는 나만의 너스레다. 영구 없다와 잘될 턱이 있나를 예로 들었더니 아들의 답인 즉, 요즘은 유행어보다 줄임말이 대세란다. 줄임말? 충분히 예상했다. 갑분싸 이런 거 말이지? 그러자 아들이 퀴즈를 낸다.


“아빠, 강직인이 뭔지 아세요?”


강직인? 성격이 강직한 사람? 땡! 아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정답은, 강아지를 키우는 직장인이란다. 상상도 못 했다. 난감해하는 내 모습에 신이 났는지 곧 다음 문제가 날아온다. 롬곡옾눞. 그건 잘 알지. 폭풍눈물을 거꾸로 한 거잖아? 오오, 아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세 번째 퀴즈가 바로 줄을 선다. 삼귀자. 삼귀자? 세 가지 귀한 물건? 아들이 바닥을 구른다. 그러면서 한마디. “아빠, 심각한데? 이러면서 직원들과 대화는 가능해요?” 뭐라고, 이 녀석이? 채점만 할 것이지 딴소리는 왜? 은근히 부아가 난다. 정답은, 사귀자 직전의 단계를 말한단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우리 삼귀자’ 이런단다. 사귀자 직전이라 삼귀자.


그날 아들이 ‘출제'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도 한 번 맞춰보시길. 채점은 인터넷 검색으로.


나일리지, 내또출, 능지, 누물보, 만반잘부, 별다줄, 선즙필승, 애빼시, 핑프, 힘숨찐


내 점수는 당연히 낙제였다. 아들에게 만원을 뺏기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새로운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이 지배하는 메시지 전성시대이니 이른바 에프 세대(Finger Generation 핑거 제너레이션)에게 있어 줄임말은 필수 항목이다. 복잡한 의미와 감정을 달랑 몇 개의 문자에 담아서 재빨리 보내야 하는 시류時流의 반영이다. 정신없이 바쁜 시대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를 언제 일일이 타이핑하고 있을까, 그냥 ‘만반잘부’ 네 글자면 충분한 건데 말이다.


멍멍이를 댕댕이라 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작을 띵작이라고 표기해도 거슬리지 않는다. 유행인 것이다. 방가방가, 하이루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유행流行이란 언제나 한시적限時的인 것이었다. 줄임말을 배우는 것은 유행을 알고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즐겁다.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의 적절한 줄임말 공유는 기존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더욱 밝은 대화를 유도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입에 달고 다녔던 수많은 유행어들처럼 말이다. 줄임말 그까짓 거 모르면 좀 어때 할 수도 있겠으나, 시류의 뒤쳐짐은 언제나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다만, 줄임말의 참뜻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들었을 때 모두가 위트와 재치를 감탄하며 짧게 웃을 수 있는, 밝은 공감의 틀 안에서만 줄임말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아들의 마지막 퀴즈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아빠, 호옹이가 뭔지 아시겠어요?"


알겠어요도 아니고 아시겠어요에는 약간의 냉소마저 섞인 것 같다. 하지만 참는다. 어떻게든 정답을 맞혀야 한다. 조심스럽게 답을 말해본다. 호옹이? 호랑이와 야옹이의 자녀 아닐까? 그 말을 듣자 아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입을 틀어막으며 방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그 틈으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마치 구름을 타고 저 멀리로 사라지는 산신령 같다. 호옹이의 정답은, 충격이다.


호옹이는 으아아아를 세로로 본 거예요. 비명소리 말이에요.
호랑이와 야옹이라니. 호랑이와 야옹이라니. 하하하하하하.


시대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각도로 봐야 한다는 말, 그 각도가 이 각도였음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Image by Oguti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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