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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l 28. 2021

아버지 뭐하시노

건달은 아닙니다만


아들이 일주일 전에 이미 여름 방학을 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격주로 진행되는 줌 Zoom 수업이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자칫 날짜 계산이 틀리기라도 하면 졸지에 무관심한 아빠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현관에 들어선 아들의 친구가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친구 홍 찬희라고 합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좋았다.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도 잘 생겼다. 쿨한 아빠인 척, 인사를 한답시고 먼저 주먹을 내민 것은 과연 오버였을까? 잠시 멈칫하던 찬희가 한 박자 늦게 맞받아주었다. 어색한 미소는 덤이었다. 아들의 짧은 한숨 소리를 얼핏 들었다. 아빠, 또 주책이야.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자 아내는 간식을 챙겼다. 억지를 부려 내가 들고 들어갔다.


찬희가 벌떡 일어섰다. 쟁반을 받아 들면서 다시 인사를 했다.

“찬희는 인사성이 밝아서 참 좋구나. 인물도 좋고.”

조금은 어색하게 찬희가 웃었다. 거기서 멈추어야 했다. 재미있게 놀아라 정도의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한 구절이 더 따라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뭐 하시니?”


찬희도, 아들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차, 싶었다.




새 학년이 되면 학교에서는 항상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난처했다. 중졸이든 고졸이든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학력은 전혀 문제없었지만 선생님들은 꼭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이 듣는 자리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다. 그것에 답할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목수’라고 답하면 선생님이 어련히 알아서 써 주시겠거니 싶어도, 우리 반의 몇몇 남 놀리기 좋아하는 개구쟁이들의 입이 문제였다. 그걸 미리 알았던 나는, 차례가 되면 애써 숨을 한 번 고르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름 당당하게, “네, 저희 아버지는 목수이십니다.”라고 하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녀석들이 뒷말을 붙였다.

“아닌데요, 점마 아부지, 노가단데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와하며 웃었다. 깔깔거리며 책상을 쳐대는 놈도 있었다. 그것이 싫었다. 선생님이 주동자 몇을 골라 벌을 세워도 내 창피함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대문을 맞대고 사는 이웃들 사이에선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목수라는 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일을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노가다’라는 것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다만 새로 부임한 선생님과의 상담이 그랬고 특히나 반 친구들과 함께, 새로 전학 온 아이의 집에 놀러 갈 때가 항상 문제였다.


간식을 가져다주는 친구의 엄마들은 항상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친구들, 아부지는 머 하시노?”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회사에 다닌다는 답이 제일 많았다. 굳이 회사의 이름까지 말하는 녀석도 있었다. 나 역시 그냥 회사 다닌다고 하면 될 것을, 열 살의 나는 쓸데없이 정직했다.

“우리 아버지는 목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 그러시구나.’로 끝났지만 공연히 나 혼자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간식을 뺏어가며 ‘다른 애들은 계속 놀고, 너는 집에 가라!’ 할 것만 같았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와 국어사전을 펼쳤다. 회사, 회사. 도대체 회사란 게 뭘까? 사전에 적힌 설명은 답답한 내 속을 풀어주지 못했다. 고등학생인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야, 회사가 뭔데?”

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출근하는 곳이 회사지.”

“우리 아버지도 매일 돈 벌러 가잖아?”

“그렇지. 매일 가시지.”

“누나야, 그럼 아버지 회사는 어디 있는 건데?”

잠시 망설이던 누나가 이렇게 답했다.

“회사가 어디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매일 출근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럼 여름이나 겨울에 아버지가 집에서 놀면 회사가 없어지는 거가?”


그날 누나는 꽤나 긴 설명을 해주었지만, 철부지 열 살의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절대로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보지 않겠다고. 그런 따위의 질문으로 아이들을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찬희에게 덜컥 ‘그 따위’ 질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빨리 수습해야 했다.


“아, 찬희야. 미안. 아저씨가 생각 없이 한 말이야. 미안해.”

뜻밖에도 찬희는 싱긋 웃더니 그런다.

“아녜요. 괜찮아요. 저희 아버지, 도배 하세요. 가끔 미장 일도 하시구요.”

“아빠, 이제 좀 나가세요. 찬희야, 이해해라. 우리 아빠는 내 친구들만 오면 저러니까.”


고마운 성화에 문을 닫고 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공연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들은 분명 따질 것이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고. 대답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우선 면피부터 하려고 두 아이에게 줄 용돈을 챙겨 두었지만 부끄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부끄러움은 꽤나 여러 가지가 뒤섞인 것이었다. 한심했다.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 멀어도 한참 멀었다.  



* 노가다는 일본어 dokata [土方]에서 유래한 말이며,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현장 노동자를 가리킬 때에는 '막일꾼'으로 순화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어대사전 참조]

* Image by Joongang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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