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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l 05. 202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작당모의(作黨謨議) 2차 문제(文題) :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이었다.


   사월이 낼모레인데 진눈깨비라니. 하기야 날씨가 제멋대로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기상 이변이란 말도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2047년에 일어난 북반구 지각 대변동 이후로 일기 예보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변덕스러운 날씨야말로 이 놈의 정부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당초 기준대로라면 1970년생生이 해당되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상자 선별 기준이 바뀌었다. 그저 변덕으로 그쳤다면 애교 섞인 놀림으로 끝났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주무부처 장관의 부친이 1970년생이라서 그 해 출생자들은 운 좋게 이 난리를 피해 간다고 했다.


   생전生前에 아버지가 그러셨다. 상賞에는 들고 화禍에선 빠지라고. 아무래도 나는 화禍에 든 것 같았다.




   2053년 1월 3일,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던 날,  아내는 오열했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하려고 했다. 캐나다에 있는 아들이 뉴스를 봤다면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에도, 그냥 별일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러나 결국 강제 소집령이 내려지고 오늘 아침 경찰들이 우리 집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옷을 적시고 말았다. 여든셋이란 나이는 그런 것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해도 노쇠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혼절 직전의 아내에 대한 배려라면서 경찰들이 내게 수갑은 채우지 않겠다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선심善心이었다. 그들은 나를 짐짝처럼 승합차 뒷칸에 던져 넣었다. 그 바람에 무릎을 심하게 부딪혔다. 먼저 태워진 듯한 노인 두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한 시간 즈음을 달려 도착한 곳은, 더 이상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어느 작은 도시의 종합 운동장이었다. 보도 통제 지침 때문이었는지 신문사나 방송국의 로고가 찍힌 차량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 사이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 나와 비슷한 또래의 노인들이었다. 하긴 1971년생들만 끌려왔을 테니...


   나는 슬그머니 전화기를 꺼냈다.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요량이었다. 혹시나 극적인 반전을 알리는 문자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했다. 역시 지난 1월 3일 수신한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귀하는 WRP (Welfare Remediation Program / 복지 재조정 프로그램) 대상자입니다.

식별번호는 1971-J-147입니다. 소집령이 선포되면 관할 부처의 안내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귀하는 이미 출국금지 조치되셨음을 알려 드립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AEK / Administration for the Elderly in Korea 대한민국 노인 관리국]


   젊은 세대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세금을 낼 수 있는 젊은이들은 점점 줄었다. 반면 늙은 세대들은 쉽게 죽지 않았다. 덜 아프고 더 오래 살았다.


   2055년 7월이 되면 대한민국은 결국 예산 절벽 Budget Cliff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젊은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어도 기존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주어지던 의료, 교통, 주거, 관광, 그리고 소득 보조가 졸지에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최소한의 복지’는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치는 동안 상상 이상으로 폭이 넓어졌다. 정치꾼들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간다며 침을 튀겼다. 물론 견제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눈이 높아진 국민들은 더 나은 복지를 장담하는 위정자들에게 자신의 표를 던졌다.


   경제학자들과 관련 부처의 사람들이 복지 확대를 두고 방송에서 연일 격론을 벌이는 것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세대 간의 반목은 극심해졌다. 무위도식하는 당신들의 뒤치다꺼리를 왜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충당해야 하느냐며 젊은이들은 욕을 했고, 너희들의 풍요를 만든 밑거름이 누구의 피땀이었나를 생각하라고 늙은이들은 언성을 높였다. 세대 간의 화해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합리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여당과 야당조차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디데이는 점점 빠르게 다가왔다.




   '특정 연도의 출생자들만 솎아내자.'


   그것은 아주 사소한 발언에서부터 출발했다. 구독자 삼백만 명을 자랑하는 어느 유튜버가, 파이를 키울 수 없다면 포크를 뺏어 버리면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즉, 일정 연령대의 사람들을 골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복지를 선제적으로 박탈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다들 유튜버를 비난했다. 하지만 모某 종편이 기습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놀랍게도 74.8%가 그 의견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고르게 차출하는 것보다 특정 연령대 하나를 지목하는 것이 국민적인 반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묘안이라는 해설도 덧붙였다. 이것이 도화선이었다. 받아쓰기와 뻥튀기에 익숙한 언론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오십 대의 젊은 대통령은 한 달 뒤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복지 정책의 축소를 언급하는 대신, 대승적 희생을 역설했다. 여론을 믿고 따르겠다면서 국민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정책 실시의 여부가 아니라 1971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찬반이라는 점이었다.


   1971년에는 무려 1,024,773명이 태어났다. 대한민국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된 2010년의 확정 인구 조사에서도 71년 돼지띠들은 모두 887,961명이었다. 이들이 82세였던 작년, 2052년에는 대략 69만 명이 생존해있었다. 출생 때보다 30% 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 인구 중에서는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이들에게 소요되는 복지 예산을 아끼면, 기존 수준의 복지를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을 아울러 발표했다.


   조삼모사였으나 그것을 문제 삼는 언론은 없었다. 그들의 부모, 그들의 친구, 그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언급하면 곧 동정론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 투표 결과 88%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국회는 지난 2052년 12월 31일, 임시 회의를 열어 이것을 신속히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국외 출장 중에 전자 승인으로 서명을 했다. 법안WRP (Welfare Remediation Program / 복지 재조정 프로그램)로 명명되었다.


   그 소식이 전해지던 날, 46명의 1971년 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부분은 SC (Suicide Capsule 자살 캡슐)를 이용한 것이었다. 노인 관리국에서 일정 연령 이상에게 무상 지급하는 자살용 캡슐이었다. 고령으로 인한 자살은 2045년부터 합법화되었고, 장례 비용 일체를 국가가 부담해왔다. 캡슐 복용에 부작용이 있던 일부는 목을 맸고, 또 일부는 투신했다. 그 어떤 방법도 택할 수 없었던 나머지들은 지금 이렇게 끌려온 것이다. 정작 대상자들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채,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것이 곧 암묵적 동의의 표시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본인 인증을 않으면 애당초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진눈깨비를 맞아가며 서 있는 것 버거웠던지 결국 몇몇 노인들이 악에 받힌 소리를 질렀다.


   “이럴 거면 차라리 쏴 죽여, 이 놈들아!”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는 거야!"

   "생존자는 1970년생이 더 많아. 그걸 왜 숨겨?”


   군인들이 그들을 골라 끌어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웅성거리던 좌중을 조용히 시킨 것은 군인이 아니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AI, 인공 지능인 것 같았다.


   “국가 정책을 신뢰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복지 재조정 프로그램, 즉 WRP의 테스트를 거치게 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대상자를 선별할 예정이오니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일체의 사적인 감정 개입을 배제하고자 앞으로의 모든 사항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만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테스트란 말에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본다는 소리 아녀? 그렇제, 이대로 죽기는 내가 너무 아깝제. 그라모 시험 잘 치모 다시 집으로 보내준단 말이가? 여기저기서 다양한 추론들이 쏟아졌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군인들의 뒤를 따라 실내 강당으로 느릿느릿 이동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당 안은 마치 커다란 PC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내 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89년 대입 시험 때도, 92년 논산 훈련소 때도 나는 언제나 자리 운이 좋았다. 왼쪽 맨 앞이 내 자리였다. 키보드를 만지면서 심호흡을 했다. 아까 부딪힌 무릎이 약간 시큰거렸다.


   “일체의 부정행위는 금지됩니다. 발각 즉시 퇴장 조치됩니다. 퇴장 후 조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 곧 실내의 불이 꺼졌다. 기침 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섞였다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딩동. 부르르. 소리와 진동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낱말을 이용하여 짧은 글짓기를 하시오. 안양천변, 방송국, 세 딸.


   한숨소리와 탄식이 강당에 울렸다. 뜬금없이 글짓기라니, 잠시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작문은 내 오랜 취미였다. 심지어 주제도 친숙했다. 운이 좋다고 다시금 느꼈다. 어쩌면 여기서 살아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같이 글을 쓰며 웃음을 나누었던 오래된 인연들이 생각났다.


   작성을 마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터키를 눌러 제출했다. 몇몇 노인들이 비명 소리를 질렀다. 부정행위로 끌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게 젊었을 때 브런치라도 하지 그랬어. 하지만 비웃어선 안될 일이었다.


   딩동, 다시 알림이 왔다.


다음 영화를 보고 나서 소감을 적으시오.


   이번엔 영화 감상인가? 모니터를 통해 시작된 영화는 30분 길이로 편집된 ‘시네마 천국’이었다. 이게 도대체 언제적 영화야? 하마터면 테스트 중임을 잊을 뻔했다. 나도 모르게 영화 속 토토에 몰입했다.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났다. 아버지께 받은 백 원, 이백 원을 모아서 신도新都극장을 집처럼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감상문 작성 역시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도 노인 대여섯이 자리를 비워야 했다. 앞자리에 배정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일 뒤에 앉았더라면 저 가슴 아픈 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또다시 딩동 소리가 났다. 알람의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의 지시대로 움직이시오.


   이번 테스트는 마치 면허 시험장에서 치르는 적성 검사와 같았다. 시력, 청력, 돌발 반응, 앉아 일어서 등의 내용이었다. 여기저기서 의자 넘어지는 소리와 아이쿠 하는 비명이 들렸다.


   딩동.


마지막 문제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기술하시오.


   나는 물끄러미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마우스를 고쳐 잡았다.




   불이 켜졌다. 갑자기 눈이 부셨다. 긴장했던 몸이 그제야 아픈 흔적을 드러냈다. 테스트를 치르는 동안, 내 나이를 잊고 있었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 후, 강당 앞에 처졌던 큰 휘장이 양쪽으로 걷히고 그 사이로 커다란 전광판이 나타났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방의 모니터 화면에서 본인의 점수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역시 백점이 만점인 것 같았다. 91점. 내 이름 옆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사람은 제 점수를 찾지 못해 엉덩이를 쭉 빼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또 어떤 노인은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대충 살지는 않았구나. 꾸준히 운동을 하고 글을 쓰기 정말 잘했구나. 다행히 난 구제된 거야. 아내에게 빨리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름 옆에 빨간 불이 켜진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 밖으로 나가 주십시오.”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섰다. 얼추 백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는 여자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여든셋이라는 나이를 잊은 듯이 보였다. 공연히 뭉클해졌다. 그들과는 달리,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운명을 예단한 듯 통곡하는 사람도 많았다.


   강당 밖으로 나왔다. 진눈깨비는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3월에 쏟아지는 폭설이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는 여러 대의 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다시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었다.


본인의 번호를 확인한 뒤, 해당되는 버스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2호차 앞에 섰다. 무인으로 운행되는 전기차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착석은 선착순인 것 같았다. 나중에 오르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하고, 감격에 겨워 서로 끌어안기도 했다. 내 옆자리에는 곱게 생긴 할머니가 앉았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했다. 대략 마흔 명의 탑승이 끝나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군인들은 오르지 않았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어디로 간답니까?”


   누군가가 뒤에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에 대한 확인도 없었다. 각자 아이디가 있으니까 자동으로 행선지 분류를 하는 것 아닐까?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아날로그 걱정을 해?” 긴장이 풀린 누군가가 농담처럼 뱉었지만 웃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약간의 웅성거림으로 번질 때 즈음, 또다시 누구에게는 진동으로, 다른 누구에게는 딩동 하는 소리로 버스에 타고 있는 모두에게 새로운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귀하는 복지 재조정 프로그램, WRP의 최종 대상자입니다.

수준급 작문 실력을 보유하였으므로 정부 정책에 맞서는 인터넷 선동을 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힌 채 신진 세대와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자가 차량 등을 운전하여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반발 위험도가 높은, 건강한 귀하에게 쓸데없이 복지 예산이 낭비되는 것입니다. 귀하는 이제 완전 격리된 곳으로 이동하여 종신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마지막 테스트에서 직접 기록하신 귀하의 인생을 다시 한번 낭독해드리겠습니다.

국가 정책에 대한 귀하의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AEK / Administration for the Elderly in Korea 대한민국 노인 관리국]


   내가 쓴 글이 음성으로 변환되어 흘러나왔다. 어지러웠다. 테스트의 결과가 결국 이것이란 말인가, 루하고 무능한 노인들만 구제받는단 말인가?!


   욕설과 한탄과 흐느낌이 금세 버스 안에 가득 찼다. 몇몇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혔고, 또 몇몇은 이미 기절한 듯했다. 나는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아내의 사진을 찾았다. 그리고 메시지 입력창을 띄웠다. 여보,라고만 했을 뿐인데 눈물이 그만 툭 떨어졌다. 가까스로 다음 글자들을 입력했다. 나는 절대로 잘못 살지 않았어. 먼저 가서 기다릴게. 미안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캡슐이 만져졌다. 빠른 72년생이라서 구사일생으로 소집을 피한 명수가 내게 준 자살 캡슐이었다. 이건 네 자존심이야. 명수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캡슐을 꺼내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차가운 감촉이 혀에 닿았다. 나는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동시에 캡슐을 지긋이 깨물었다. 메시지 전송 중이라는 시그널이 떴다. 창 밖으로 몰아치는 눈보라는 아까보다 더 맹렬한 기세였다. 눈 앞이 자꾸만 흐려졌다. 그때 전화기가 다시 한 번 부르르 떨었다.


메시지 전송에 실패했습니다.




* 제목은 코엔 형제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에서 차용했습니다.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불이 켜졌다. 갑자기 눈이 부셨다 이 문장을 다음  글 진샤 작가님이 이어쓰십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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