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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31. 2021

방학 숙제의 추억

차라리 학교 갈래요


그러니까 미리미리 하라고 안 하드나! 코 좀 그만 묵고!


누나가 또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억지로 참는다. 마음 같아선 그냥 확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건 절대로 안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누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행여 냉정한 버림이라도 받게 되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열한 살 철부지인 나조차 충분히 가늠이 되는 것이다.


누나야, 내 빨리 코 풀고 오께, 어디 가지 마라.


나는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수도가로 나갔다. 2월의 공기는 차가웠다. 난처한 상황에선 왜 항상 이렇게 콧물이 많이 나오는 걸까? 패앵. 누런 덩어리가 바닥에 철썩 떨어졌다. 손등으로 입 언저리를 쓰윽 문지르고는 나는 또다시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야, 그래도 누나가 도와주니까 방학 숙제 빨리 하겠다, 맞제?


과연 즐거운 방학일까요? (출처 : 머니투데이)


사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오늘은 탐구 생활 끝내고, 내일은 독후감 쓰고, 모레는 만들기 하고, 이래저래 하면 오히려 하루 정도가 남으니 그 날은 원 없이 신나게 놀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밀린 방학 숙제를 서둘러하기로 특별한 결심을 한 날부터는 유독 더 재미난 만화영화가 텔레비전에서 나왔다. 어른들 보는 뉴스도 재미있었고 심지어 애국가조차 재미있었다. 방송국 아저씨들은 참 고약했다.


어디 그뿐이랴. 평소 같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낡은 장난감과 딱지들이 그날따라 방구석에서 자꾸만 손을 흔들었다. 야, 한 시간만 나랑 놀자. 너 진짜 그런 냉정한 놈이었어? 나는 차마 그들과의 오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 딱 한 시간만, 딱 한 번만 너희들이랑 놀아준다. 그다음엔 진짜로 숙제하는 거다, 알겠지?


로봇들과의 의리를 겨우 지키고 나면 이젠 대문 밖에서 아이들이 자기들과의 의리도 지키라며 확성기 소리로 크게 떠들어댔다. 내 발이 그 소리를 듣고는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가 먼저 신발을 찾았다. 내가 의리와 우정을 지키는 동안, 무심한 개학은 어느새 내일, 그야말로 내 코앞으로 다가와 버렸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시면서 엄마는 누나에게 내 방학 숙제를 봐주라 하셨다. 역시 불안하셨던 게다. 자기 공부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누나가 난데없는 미션에 짜증이 났음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어서, 그 심정을 모를 리 없는 나는 누나의 구박과 꿀밤 세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긴 죄인이 무슨 선택지가 있었을까?


생활 계획표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방학 첫날엔 하얀 도화지에 컴퍼스로 큰 동그라미부터 그렸다.


기상 – 아침식사 – 공부 – 방학숙제 – 독서 – 점심 – 친구들과 놀기 – 공부 – 저녁 식사 – TV 시청 – 공부 – 꿈나라. 호기롭게 벽에 붙였던 거짓말생활계획표도 지레 떼 버린 지 오래였다. 왜 그랬을까? 하루에 한 개씩만 했어도 보름이면 족히 끝났을 방학숙제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랴. 중요한 건 지금이다.


늦어도 내일 아침 여덟 시 반에는 학교에 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남은 건 스무 시간 남짓. 잠은 이미 포기했다.


탐구 생활을 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다음은 독후감이었다. 과학, 위인전, 반공 독후감. 원고지 일곱 장이 기본이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능하면 칸을 많이 차지하게 잘 띄어 쓰고, ‘하였습니다.’ 이후에는 한 줄을 비우자. 퀴리 부인님, 이순신 장군님, 이승복 어린이님께 속으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방학 때마다 잊지 않고 다시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독후감을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요.


다음은 여행 글짓기, 기행문이었다. 방학 때 자기가 여행한 곳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딱히 어디를 다녀온 곳이 없었다. 그래, 엄마 따라 연산 시장에 다녀온 것을 쓰자. 그런데 쓰다 보니 그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무려 원고지 아홉 장을 썼다. 누나가 또 꿀밤을 먹였다. 이게 무슨 기행문이야? 비굴한 미소가 또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르는 척 다음으로 넘어갔다. 누나야, 관찰 일기 써야 하는데 우짜꼬?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던 누나가 할 수 없다는 듯 연습장에 몇 줄 써 주었다. 나는 그것을 원고지에 다시 베꼈다. 그리고 꿀벌이다 싶어 보이도록 똥파리 사촌을 그려 색연필로 대충 칠했다. 겨울에 무슨 꿀벌이냐 하겠지만 그렇다고 바퀴벌레 관찰일기를 쓸 수는 없잖은가? 누나야, 정말 고맙데이.


무시무시한 원고지 (출처 : e-금강뉴스)


대략 예닐곱 개의 글짓기와 관찰 일기를 마치고 나니 오후 두 시가 지났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팠다. 차마 말은 못 하고 누나의 눈치를 보았다. 누나는 냉정했다.


다음, 뭐 할 차례고? 싸늘하다. 누나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어린 내 가슴에 꽂혔다. 이제 만들기 숙제다. 만들기? 뭐 만들 건데? 몰라. 매를 버는 소리를 내 입으로 했다.


누나가 곧 마분지를 가져와서 이리저리 잘라 주었다. 나는 그것을 누나가 시키는 대로 풀을 발라 붙였다. 그리고 역시 누나의 지시에 맞춰서 크레파스로 대충 칠했다. 순간 작은 집이 하나 세워졌다. 누나는 천재다. 공작 숙제 완료!


이젠 그리기 숙제를 할 차례였다. 낙서에 자신 있었던 내가 이번엔 먼저 선수를 쳤다. 누나야. 이건 내가 할게. 당연히 니가 해야지. 누나는 또 꿀밤이다. 나는 스케치북을 펼쳐서 선을 슥슥 긋고, 색을 칠했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기러기 두어 마리가 날아가는 아래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 집이 들어섰다. 금세 풍경화 하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진작 좀 하지 그랬니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누나야, 태양 그리면 빵점이제? 누나가 밥그릇을 들고 들어오며 그림을 훑어보았다. 일단 밥 무라. 계란 노른자와 함께 비빈 간장 밥을 꾸역꾸역 먹는 동안, 누나가 그림에 덧칠을 해 주었다. 천사가 따로 없었다.


누나야, 이제 선생님한테 편지 써야 되는데?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일단 써라. 내일 선생님께 직접 전해드리든지 해라. 그래도 되나? 또 대답 대신 꿀밤이다. 창피함은 잊은 지 오래였다.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어요?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어쩌고저쩌고. 개학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1982년 2월 4일 제자 임 제이 올림.


우표를 붙일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곤충 채집은 없나? 응, 겨울 방학에는 곤충 채집이 없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하려다 움찔했다. 누나가 또 주먹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다시 물었다. 이제 뭐 남았노?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쩌면 제일 큰 산이 남았다. 나는 차마 대답을 못하고 조용히 일어나서 가방을 뒤적였다.


일기 남았다, 누나야.

일기? 어디 보자, 언제까지 썼노?


내가 건넨 일기장을 펼치자마자 누나가 갑자기 파리채를 찾았다. 그건 제대로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졌던 꿀밤은 그저 애교에 불과했던 것이다. 손바닥을 몇 대 맞은 다음, 두 손까지 들고 꿇어앉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데 하필 아버지와 엄마가 그때 일터에서 돌아오셨다. 그러나 이 분들은 절대로 내 편이 아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제발 날씨 적는 칸 좀 없애 주세요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오늘 드디어 신나는 겨울 방학을 했다.


첫 날짜의 첫 문장을 그렇게 썼다. 그러니까 길고 긴 오십여 일 겨울 방학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머리를 쥐어짜서 이리저리 공책 바닥을 채워 나갔다. 그런데 날씨가 역시 발목을 잡았다. 눈이 드물었던 부산이었으니 맑음, 아니면 비였을 텐데 그게 생각이 잘 안 났다. 아버지와 엄마가 거들어 주셨다.


그 날 비 왔다 아이가. 무슨 소리 하능교? 그 날, 날씨 좋아서 내가 일하러 갔는데. 에헤이, 그 날 비 왔다니까.


결국 그 날은 흐렸던 것으로 가족적 합의를 보았다.


그래도 며칠이 더 남았다. 할 수 없이 누나가 시집詩集을 줘서 몇 편을 베껴 쓰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은 날엔 포켓 가요 책 속의 유행가 노랫말을 옮겨 적었다. 손현희, 이름 없는 새. 국민학교 오 학년 어린이의 겨울 방학 일기장에,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살고 싶어라, 라는 구절이 쓰여지는 것이었다. 사실 내 심정도 그랬다. 방학 숙제 없는 곳에서 한 마리 새처럼 살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일기를 쓸 자리가 없어서 엄마가 그 늦은 밤에 현수네 집에 가서 새 공책을 한 권 얻어오고 난 다음에야 겨우 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라면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러셨다. 다음 방학 때는 숙제 좀 제발 미리미리 해라, 알겠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겨울 방학은 두 번 더 돌아왔다.




심야의 난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개학날 아침은 차분했다.


담임 선생님은 반장을 시켜 방학숙제를 걷으라고만 하실 뿐, 딱히 일일이 챙기지는 않으셨다. 애초부터 그냥 몇 대 맞고 말지 하며 밀린 숙제를 처음부터 포기했던 몇몇은 아싸~하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지만, 그래도 나는 빠짐없이 숙제를 했다는 자부심에 혼자 속으로 의기양양했던 것 같다. 비록 그것이 온전한 내 숙제는 아니었어도 말이다.


그 겨울의 끝에 나를 괴롭혔던 방학 숙제는 정말 싫었지만, 야단을 맞아가며 밀린 일기를 쓰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운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벌써 사십여 년이 흘렀다. 그리워할 오늘이 있을 것임을 그때 알았다면 그 숙제마저 즐겁게 하지 않았을까?


새 책 냄새 가득했던 살구색 탐구 생활, 그 지긋지긋한 방학 숙제의 우두머리가 오늘따라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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