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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Sep 06. 2021

옛이야기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1. 옛 얘기하듯 말할까 바람이나 들으렴


   “딴생각 하지말고 그냥 같이 가자. 고집부리지 말고. 애들이랑 함께니까 어색할 것도 없다 아이가.”


   전화기 너머의 유철이는 벌써 십 분이 넘도록 나를 설득하고 있다. 수현이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은 작년에 얼핏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병문안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잘 알았으니 천천히 생각해서 곧 답을 하겠노라 몇 번을 되풀이했지만 녀석의 고집은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다그침 끝에 결국 유철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니 기분은 충분히 안다. 니랑 수현이랑 특별한 사이였다는 거,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노?”

   유철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버럭 화부터 냈을 말이었다. 후우 하고 한숨이 밀려 나왔다.


   특별한 사이.


   그랬다. 수현이는 내 여자 친구였고, 첫사랑이었으며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지던 순간이 수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벌써 십칠 년 전, 1994년의 일이다. 이제 수현이는 그저 흔한 대학 동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녀가 투병 중이라는 것은 어쨌거나 알고 있던 사실이다. 병문안을 가든 안 가든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 그러나 친구들에 섞여 함께 가자는 유철이의 말에, 그러겠다는 답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거절하는 쪽으로 중심이 기울었다. 서울에 산다는 것, 바쁘다는 것, 그 정도면 그럴듯한 핑계가 되지 않을까? 그것을 거절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내게 유철이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카는데, 진우 니,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나?”


   마지막? 마지막이라니. 대답할 생각은 않고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렇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했었지. 아침에 들었던 일기 예보가 새삼 떠올랐다. 내리는 눈처럼 머릿속에서도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병문안, 암 투병, 그리고 수현이.


2. 거품 같은 사연들 서럽던 인연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온 아내는 연초부터 갑자기 무슨 지방 출장이냐며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 부산에 본사를 둔 협력업체의 대표가 급히 만나자고 해서 서둘러 가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겸사겸사 본가에 들러 아버지, 엄마도 살펴보고 올 것임을 덧붙였다.

   “케이티엑스 KTX 타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직 눈도 녹지 않았는데.”

   여전히 불안한 표정의 아내 옆으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손을 잡고 섰다.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겨드랑이가 간지러운지 아들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앞니가 벌써 두 개나 빠졌다. 미운 일곱 살을 내려놓고 아내를 살짝 안아준 다음, 천천히 차에 올랐다.


   아내의 말처럼 제설차가 밀쳐낸 눈들이 길 옆에서 작은 등성이를 이루고 있었다. 판교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까지 차는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이었다. 안성 휴게소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속도가 제대로 나기 시작했다.

   버튼을 눌렀다. 기상 캐스터가 먼저 인사를 했다. 계속해서 눈이 올 거라는 지난 며칠 동안의 예보가 들어맞아 신이 난 건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힘이 잔뜩 들어간 것 같았다.

   “2011년 1월 7일,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오늘 오후부터는 남부 지방으로도 폭설이 예상됩니다. 십칠 년 만의 눈이라 엄청 반가우시겠지만요, 한편으로 사고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 주실 것을 꼭 당부드립니다.”

   십칠 년만의 눈, 십칠 년만의 만남. 나는 발 끝에 힘을 주었다. 힘을 제대로 받은 차가 눈 쌓인 풍경들을 시선 뒤로 빠르게 밀쳐내기 시작했다.


3. 눈물에 너는 싸인 채 가시밭 내 맘 밟아


   1990년 삼월, 대학 신입생이 되었지만 고교 담임의 강권强勸에 못 이겨 선택한 경제학과는 역시나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퇴와 재수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유철이가 그랬다. 학과 공부 외에 다른 것에도 재미를 붙여보면 어떻겠냐고. 그러면서 나를 데려간 곳이 동문 동아리였다. 내가 졸업한 고교와 인근에 위치한 여고 졸업생들이 동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한데 여 친분을 나누는 모임이라고 했다.

   뒤늦게 가입한 나를 위해 환영회가 열리던 날, 고교 동창 윤창이와 호민이가 주먹다짐을 벌였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 삼 년 동안 짝이었던 윤창이와 호민이가 코피까지 터져가며 싸움질을 하다니, 나는 그런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툼의 원인은 수현이라는 여자 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동기로 인해 쌓인 감정이 결국 터져버린 것이라는, 유철이의 친절한 설명도 들었다. 그날의 다툼은 물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입학 때부터 이어진 두 녀석의 경쟁적인 애정 공세는 수현이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수현이가 대체 누구길래 내 친구들이 싸움까지 하게 된 것인지 살짝 화도 났다.

   환영회가 끝나갈 무렵, 뒤늦게 수현이라는 친구가 왔다. 하지만 내 눈에 수현이는, 그저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신입생일 뿐이었다. 굳이 부연하자면 공대를 다니는, 그저 조금 예쁘장한 아이? 딱 그 정도의 말로 당시의 수현이를 설명할 수 있겠다.


4. 내 너를 만난 그곳엔 선홍빛 기억뿐


   내가 부산에 왔다는 말에 친구들 몇몇이 퇴근길을 재촉했다. 90년의 봄처럼 학교 앞 주점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올 것임을 무조건 확신했다며 유철이가 잔부터 채웠다. 오랜만에 보는 윤창이와 호민이도 소매를 걷어 올렸다. 캬아, 커헉, 으어. 한껏 젖혀진 고개를 바로 세우면서 각자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흔 살, 우리도 어느새 술맛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눈앞에 차려진 안주보다 친구들이 꺼내놓는 이야기가 더 맛있었다. 주식에서 출발한 화제는 회사로 옮아갔다가 군대와 군대 축구를 잠시 훑었고 자녀 교육을 슬쩍 건드린 다음, 정치 언저리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얼굴이 불콰해진 윤창이가 등을 기댄 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암이라 하더노? 수현이 말이다.”

   판을 휘어잡던 정치가 서둘러 퇴장하고 모두가 조용해졌다.

   “췌장암이라 하더라.”

   수현이의 고교 동창 은지와 결혼한 유철이가 다시 잔을 들었다.

   “하필이면 췌장암이가? 그거는 발견하는 순간, 이미 끝이라 하던데. 니미.”

   호민이가 말끝에 욕을 섞었다. 윤창이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다 하더노?”

   유철이가 대답은 않고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유철이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육 개월이라카데, 그것도 길면.”


   남부 지방에 눈이 올 거라고 했는데 창 밖의 하늘은 어둡기만 할 뿐 여전히 맑았다.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슬쩍 들었다. 호민이가 소주병을 들어 내 잔을 톡톡 쳤다. 어느새 잔이 비어 있었다.


5. 널 마중 나가 있는 내 삶은 고달퍼


   대학교 일 학년의 오월, 그때 내 별명은 ‘언니’였다.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서 자기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먼저 고민거리를 들고 오는 선배도 있었다. 속사정을 잘 들어주고 나름의 조언도 곧잘 하는 것으로 나는 유명해졌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비밀 누설이나 뒤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믿음직하고 편안한 진짜 언니가 된 것이다.

   고객 중에는 물론 수현이도 있었다. 당시 수현이가 무엇을 묻고 내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좋을 그저 평범한 이슈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술을 싫어하는 대신,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눈 다음,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일어서는 것이 좋았다. 당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자댕 Jardin이니 가비방可鼻芳이니 하는 곳들이 나의 주요 카운슬러 장소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여름 방학 동안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일한 커피숍의 이름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밀양이 고향인 사장님은 성실한 나를 좋아했다. ‘언니’가 메트로폴리탄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나자,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단골이 늘어난 만큼 매출이 올라가니 당연히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사장님도 매일매일 찾아오는 내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중에 수현이도 있었다.

   학교 앞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수현이는 은지와 함께 오전 열 시가 지날 무렵이면 보캐뷸러리 Vocabulary 교재를 품에 안고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갓 볶은 커피에 뜨거운 물을 내려 잔에 부어주면 그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나는 수현이와 은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틀어 주었다. 신승훈과 이승환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였다.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더 진한 향기를 가진 소녀가 매일 아침 커피숍에서 야발라바히기야 소리 지르며 덩크슛을 쏘아댔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에 맞추어 동기들과 함께 MT를 떠났다. 신입생 환영회 때는 부산에서 멀지 않은 양산으로 단체 엠티를 가기도 했지만, 동기들끼리 떠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략 스무 명이었던 것 같다.

   목적지는 청도 운문사였다. 절을 지나 십여 분쯤 걸어 올라간 곳에 제법 폭이 넓은 냇물이 옆으로 흐르는 평지가 나타났다. 그곳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던 중에 유철이가 갑자기 웃통을 벚어젖히더니 냇물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계절이 지나버린 쓸쓸한 바닷가에 언제나 부서지는 파도 만이.’

   이정석이 부른, ‘여름날의 추억’이었다. 안무를 곁들이려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그만 빠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스무 살. 말 그대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여름의 풍경이었다.


6. 짓무러진 서러움 내 어깨에 춤추며


   “사는 건 어떻다 하드노?”

   질문은 각자의 입에서 앞다투어 나왔지만 답을 하는 것은 결국 유철이에게로 귀결되었다. 은지와 결혼한 유철이가 그나마 수현이 소식에 정통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철이가 자꾸만 내 눈치를 보았다. 그래서 답을 들을 차례가 되면 나는 일부러 창 밖을 보거나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그때 진우랑 헤어지고…”

   유철이가 아차 싶어 또 말을 끊었다. 나는 괜찮다고 다시 한 번 눈짓을 했다.

   “음, 그러고 나서 결혼한다고 우리에게 소개했던 남자, 그래, 그 직장 동료. 알고 보니 글마가 완전 개차반이었던갑더라. 의처증에 가정 폭력에. 결국 사 년 만에 도장 찍고 헤어졌다 아이가.”

   “벌써 구 년이 지났네? 아들 하나 있다고 안 했나. 그때 돌잔치에도 우리가 갔잖아.”

   “갸는 수현이가 맡아서 키우는 갑더라. 올해 오 학년인가, 육 학년인가?”

   “이혼하면 그래도 위자료랑, 그 머시고, 양육비, 그런 것도 받지 않나?”

   안쓰러운 표정의 호민이가 계속해서 물었다.

   “위자료는 개뿔, 처음부터 빈털터린데 그것마저도 주식한다고 다 날려버리고 나중엔 배 째라 하는갑더라.”

   “그래서 수현이가 보험 회사에 다녔는갑네. 몇 년 전에 나한테도 찾아왔었는데.”

   윤창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철이가 다시 매듭을 지었다.

   “젊은 여자가 애 키우면서 살아 볼라꼬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다가 그라다가 암에 걸렸다 하는 것 같더라. 자기 몸은 돌보지도 않고. 원래 수현이가 악착같았다 아이가. 학교 때부터.”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기시감 가득한 케이블 드라마의 흔한 장면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잔을 든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7. 갈 테야 그 하늘가, 나를 추억하는 그대


   저녁을 먹고 나니 운문사 골짜기에 어둠이 드리웠다. 몇몇은 텐트 안에서 카드놀이를 했고, 또 몇몇은 물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그릇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건 언니가 해야 된다며 유철이가 내게 떠맡긴 결과였다. 대충 정리를 마쳤을 때 누군가 내 등을 슬쩍 찔렀다. 돌아보았다. 수현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데 수현이가 조용히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여전히 각자의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바지춤에 손을 닦으며 일어났다.


   운문사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었다. 수현이와 보폭을 맞춘 천천한 걸음이었다. 수현이가 꽤나 많은 말을 했다. 고교 시절부터 입학, 지난 삼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사소한 것들까지 죄다 제멋대로 섞여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느라 텐트를 친 물가에서 운문사 입구까지 서너 번도 넘게 오갔던 것 같다.

   앉아서 잠시 쉬어갈까 싶은 산책길의 중간 즈음에서 수현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나를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달빛에 비친 수현이 얼굴이 고왔다. 수현이가 예뻐 보인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진우야, 우리 사귈래? 나 혼자 오랫동안 생각했던 거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이었다. 수현이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달은 여전히 밝았고, 냇물은 그대로 찰랑거렸다.


   다음날 부산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수현이 옆자리에 앉았다. 눈치를 챈 당대 최고의 여우 유철이가 내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얼레리 꼴레리.”


   우리는 그날부터 커플, 연인, 애인, 하여튼 그런 것이 되었다. 학교와 동문들 사이에 금방 소문이 났다. 언니가 연애한다. 이제 상담은 끝이 났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수현이가 좋았고, 수현이도 나를 좋아했다. 백일이 되었을 때, 사랑 고백과 함께 커플 반지도 서로 맞춰 끼었다.

   사랑에 빠지는 속도만큼 우리의 시간 빠르게 지나갔다. 이학년 이 학기 기말고사 성적표와 함께 군 입대 영장이 나왔다. 나는 수현이를 우리 집에 데려가서 소개를 했다. 이전부터 수현이의 존재를 알았던 부모님은 며느리 왔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도 며칠의 사이를 두고 수현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임서방이라고 부르는 수현이의 어머니가 내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 주었다. 신변 정리를 마친  1992년 이월, 나는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다.


8. 손수건만큼만 울고 반갑게 날 맞아줘


   “우리 그만 헤어져.”


   94년 유월, 학교 앞 커피숍이었다. 제대를 했지만 짧은 머리가 미처 제대로 자라기 전이었다. 불길한 조짐은 지난봄, 병장 휴가를 나왔을 때부터 느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묻지 않았으나 그전과 달리 수현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생겼음은 분명했다. 다툼의 직전에 겨우 자리를 수습하고 부대로 복귀를 했다. 전역 후에도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오랜만에 걸려온 수현이 전화에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나간 자리였다. 그런데 커피가 식기도 전에 수현이는 헤어지자는 말부터 한다.

   표정은 단호했다. 앙다문 입술이 나름의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이유는 따로 묻지 않았다. 먼저 졸업한 선배가 집요하게 따라다닌다는 소문 역시 재차 확인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소개로 선을 보러 다닌다는 이야기도 내 머리 속에서만 되짚었다.

   헤어지자고 하니,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애정의 변화가 아니었다. 나는 변함없이 수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향이 다르다면 그 사랑은 이어질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애원하고 구걸한다 해도 이미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한 사람을 돌릴 수는 없다. 그 노력의 과정이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것인지, 이별과 극복의 과정을 나는 책으로 이미 배웠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알았다고 했다.

   이유라도 물어보지 않느냐는 수현이의 말에, 헤어지자는 그 말이 모든 것을 이미 설명해주지 않았냐고 힘없이 말했다. 사귀자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로부터 정확히 4년 만에 나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이 내가 수현이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9. 왜 이리 늦었냐고 그대 내게 물어오면


   내일 만날 시간과 약속 장소를 다시 확인한 다음, 윤창이와 호민이는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다. 유철이만 옆에 남았다. 머뭇거리는 것이 자꾸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십 년을 줄곧 봐 온 사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왜 자꾸 쳐다 보노. 내가 그렇게 잘 생겼나?”

   그 말에 유철이가 피식 웃었다.

   “좀 걷자.”


   김유신 장군의 말도 아니면서 우리는 술 취한 발이 이끄는 대로 대학교 교정을 향해 걸었다. 비틀 걸음으로 중앙 도서관 앞에 도착했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와, 여기는 그대로구나. 이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야.”

   벤치를 놔두고 굳이 계단에 털썩 앉았다.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온 유철이가 내게 말했다.

   “괜찮나?”

   “뭐가?”

   “그냥. 뭐 그냥.”

   커피는 여전히 달콤했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 만에 유철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진우야, 사실 얼마 전에 수현이가 우리 집사람, 은지한테 먼저 전화를 했더라. 그래서 나도 은지랑 같이 병문안을 한 번 갔었다.”

   “……”

   “수현이가 진우 니 이야기를 하더라. 잘 사는지도 묻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묻고.”

   “가시나, 웃긴데이.”

   “그래서 니를 억지로 부산 내려오라고 한 거다. 그건 수현이 부탁이 아니고, 내 부탁이라고.”

   “그래, 그래서 내가 왔잖아. 니 부탁이니까.”

하마터면 건강하더냐고 물을 뻔 했다. 췌장암 환자에게 건강하냐니. 술 기운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묻자면 꺼낼 말이 그것 밖에 없었다.

   말없이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남아있던 커피가 손에 묻었다. 끈적끈적했다.

   “진우야.”

   “왜?”

   유철이가 몸을 돌려 부스럭거리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서류 봉투였다.

   “수현이가 이걸 주더라. 혹시 나중에라도 너 만나면 주라고. 혼자 고민했는데 수현이가 니 주라하니까, 지금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뭔데? 내가 보냈던 연애편지 돌려준다 하더나? 그냥 불 질러 태워버리지.”

   애써 태연한 척, 봉투를 받아 들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매정하게 했다. 유철이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봉투를 열었다. 실수로 그만 내용물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스프링이 달린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의 탁상 달력이었다. 달력? 이게 뭐지? 첫 장을 넘기려는데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오늘부터 우리 이거 쓰자.”

   서면에서 첫 데이트를 하던 날,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던 때였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수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환하게 조명을 밝힌 아트박스가 있었다. 코너 사이를 빠르게 오가던 수현이가 바른손 탁상 달력 하나를 집어 들어 내게 펴 보였다.

   “달력? 그거 뭐하게?”

   “여기다가 데이트 한 내용도 쓰고, 같이 본 영화도 적고, 같이 먹은 음식도 기록하고.”

   “일기처럼?”

   “일기보다는 간단하게. 그래야 나중에 보기도 쉽지.”

   수현이가 웃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제대로 기록을 해 둔다면 기억하기도 쉬울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던 날이니까 충분히 가능했던 의미다. 수현이 말대로 우리는 그날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모든 일상을 그 달력에 적었다. 특별한 날에는 빨간펜도 모자라 스티커를 사서 붙였다. 어떨 땐 ‘싸움’이나 ‘다툼’도 기록되었다. 극적인 화해의 순간에 그 달력과 메모가 도움을 주었고, 또다시 예상되는 분란의 상황에서도 달력이 충분히 조정자의 구실을 했다. 90년에 시작한 달력은 네 권에서 끝났다. 이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11.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서야 왔다고


   “편지는 예전에 다 버렸는데 이건 어쩌다 한 개를 여태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더라. 니한테 꼭 전해 주라길래.”

   유철이가 담배를 다시 꺼냈다.

   나는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마지막 기록은 ‘쉰들러 리스트 / 부산 극장’이었다. 병장 휴가 때 함께 본, 우리에게는 마지막 영화였다.


   한참 만에 달력을 덮었다. 유철이가 담배 한 개비를 내게 내밀었다. 몇 년 전에 담배를 끊었었다. 하지만 라이터를 달라고 유철이에게 손짓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진우야.”

   라이터 불빛에 눈물을 비쳤는지 유철이가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 개월밖에 못 산다 하니, 갈 때까지 그냥 마음 편하게 해 주라.”

   “마음 편하게? 내가?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건데?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옛날 남자 친구 주제에.”

   유철이는 답이 없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어두운 하늘로 피어올랐다. 손에 쥔 달력을 다시 한번 천천히 넘겨 보았다. 서류 봉투에 다시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유철이에게 도로 건넸다.

   ”돌려줘라. 이건, 수현이 달력이다. 나랑은 상관없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틀려서 다행이었지만 틀려서 속상했다. 눈이라도 내렸어야 그래도 나름의 명분이 되었을 밤이었다.


12. Epilogue


   2012년 5월 23일, 새 사무실로 이사를 하던 날이었다.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새 건물로 이주하는 것이어서 며칠 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덩달아 바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봄에 입학한 아들을 서둘러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니 아내 역시 외출 준비에 한창이었다.

   “얼마나 걸려?”

   “십분, 오빠.”

   잠시 한숨을 돌려야겠다 싶어 소파에 앉으려는 찰나, 식탁 위에 올려둔 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유철이었다. 전화기를 집어 드는데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설마?

   

   언제나 틀린 적이 없는 슬픈 예감. 그날만큼은 차라리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될 일이었을 것이다.

   오래전의 헤어짐은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영원한 이별만큼은 상상도 못했던 내게, 그 전화는 달력에 적힐 정말 고약한 마지막 기록을 전할 작정이었다.



https://youtu.be/OpXkA0Y-gaQ




* Image by Willfried Wende from Pixabay 

* 표제 및 소제 인용 삽입곡 : 김규민 "옛이야기" (박주연 작사, 하광훈 작곡, 현대 음향, 1991)

* The music video inserted in the text is linked from YouTube and is not commercially used in any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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