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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13. 2021

인연 2021

그래도 니하오마, 뒷 이야기


작년 초, 중국 창춘长春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창춘에 있는 둥베이사범대학东北师范大学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는 어느 해 봄부터 몇 차례 들린 적이 있다.

특별한 명분이 없음에도 창춘을 가려고 한 것은, 사업을 하고 있는 의형제 장요우张友가 꼭 한 번 다녀가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극성을 부린 탓도 있지만 그 외에도 그곳에는 나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스물여덟 되던 봄, 나는 처음 창춘에 갔다. 북한에 보낼 옥수수를 수매하기 위한 출장이었는데 서울에서 창춘으로 곧장 가는 비행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부득이 베이징北京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그때 우연히도 공항에서 통웨이童伟와 재회하게 되었던 것이다.


https://brunch.co.kr/@jay147/188


창춘에서는 회사가 지정한 호텔에 묵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베이징 법인 소속인 통웨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베이징 공항에서처럼 이번에도 나란히 붙은 방으로 배정해 줄 것을 당당히 말했고, 프런트 직원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밝은 표정으로 통웨이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복도를 나란히 걸어서 문 앞에 도착했다.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하고는 각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현지 협력업체의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운 것은 통웨이의 전화였다. 같이 아침을 먹자는 것이었다. 전날 술자리가 있긴 했지만 식사를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호텔 식당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옷차림이었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생기있는 발랄함이 묻어났다. 아침을 먹는 동안 통웨이는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잠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얼핏 했던 것 같다. 창 밖에는 어느새 목련이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다. 정녕 봄이었다.


그날 오후, 일과를 마치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또다시 통웨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약이 없으면 같이 산책하러 나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슬슬 외출을 해 볼까 궁리를 하던 참이어서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호텔 문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아 통웨이가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팔을 뿌리치거나 슬그머니 빼는 것은 더 어색할 것 같아서 그녀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길을 걷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 덕분에 조금 전의 불편함은 곧 사라졌다.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느 큰 건물 앞이었다. 통웨이는 그곳이 자신의 모교母校라고 했다. 간판에는 ‘동북사범대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중국의 대학답게 필요 이상으로 크다 싶은, 위압감이 철철 흐르는 붉은 건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나를 끌고 다니면서 학교 이곳저곳을 소개했고, 구석구석 묻어 있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출장을 끝내고 창춘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베이징과 서울로 우리의 목적지는 달랐다. 공항 개찰구에서 통웨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이었을 게다. 가볍게 맞잡는데 갑자기 그녀가 힘주어 손을 당기더니 나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귀에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Thank You, Jay.”

무엇 때문에 고맙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포장이 된 작은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여의도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뒤늦게 상자를 뜯어보았다. 만년필이 들어 있었다. 혹시나 편지나 메모가 있을까 싶어서 바닥을 거꾸로 하고 흔들어 보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내가 그 해 두 번째로 창춘에 갔던 것은 봄이 서서히 끝나갈 무렵이었다. 계약 체결 이후 회차별 공급 물량에 대한 클레임 조건 협의가 주된 목적이었다. 지난번 짜오 Zhao의 사건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는 따롄大连 지사가 아닌 베이징 법인에서 직접 통역 지원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담당자가 하필이면 통웨이, 그녀였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녀는 그전보다 더욱 세련되어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활짝 핀 목련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은 여전했다. 나는 조금은 어색했으나, 그녀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저녁 식사를 하기 전, 같이 산책을 나갔다.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자연스레 둥베이사범대학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 친구는 없느냐고 무심코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다른 뜻은 전혀 없었다. 지갑에 돈이 있는지, 김밥에 단무지가 있는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그녀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남자 친구 같은 것’은 없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호텔로 돌아가자고 했다. 태도가 돌변한 그녀의 속뜻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토라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통웨이와 나는 저녁을 먹고 호텔 로비에 앉아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명수와 관련된, 말도 안 되는 에피소드를 듣더니 허리를 젖혀가며 웃었다. 주윤발과 영웅본색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했던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밤이 꽤 깊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문 앞에서 가벼운 악수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 또 몇 달이 지났다. 여름이 지나는 동안 현지에서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최종 마무리만 남아 있었다. 나는 어쩌다 가끔 그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창춘에서의 단편적인 장면들을 연달아 떠올리는 것에 불과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에 다시 또 출장 지시를 받았다.


출장 마지막 날이었다. 통웨이와 저녁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맥주도 곁들였다. 식사는 길지 않았다.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그녀가 내 팔을 잡았다. 잠시 걷자는 눈빛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왼쪽에 서서 내 왼팔을 잡았다. 역시 걸음폭을 맞추려는 것이니 하며 애써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학교 정문을 곧장 지나치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자취하며 머물렀던 집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딱히 특징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한 연립 주택이었다. 하얼빈이 고향인 그녀가 처음 창춘에 와서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이층 창가에 서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고독감을 노래로 달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살짝 눈가를 훔친 통웨이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혼잣말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일까?”


호텔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술을 사겠다고 했다. 이별주離別酒냐고 놀렸더니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팔짱을 풀고 호텔 라운지로 올라갔다.

손님들의 앉은 자리를 향해 서너 계단 정도 높이의 무대가 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차분한 조명이 아래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필리핀 국적임에 틀림없을 악단이 프레디 아길라 Freddie Aguilar의 아낙 Anak을 한참 부르는 중이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어디로 갔는지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자리로 옮겼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라운지 전체에 울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통웨이가 무대 한가운데서 웃고 있었다. 마이크를 고쳐 잡은 그녀가 다른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想为你唱这首歌(당신을 위해 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끄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해서 내 자리도 아닌 곳에 슬그머니 앉고 말았다. 곧 실내가 어두워지고 한줄기 조명만이 그녀에게 내려왔다. 전주前奏에 이어 그녀가 노래를 시작했다. 귀에 익은 익숙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아, 이 노래는.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그녀의 목소리를 감상했다.


마침내 그녀의 노래가 끝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큰 박수와 함께 내게 답가答歌를 재촉했다. 이걸 어쩐다? 통웨이의 함성도 한몫을 해서 나는 얼떨결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기타를 멘 연주자가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긴장한 탓이었던지 평소 버릇처럼 흥얼거리던 노래의 제목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짜낸 것은 덩리쥔邓丽君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었다. 무대 체질이라고 자부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떨렸던 것은, 노래를 부르는 내내 통웨이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단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며, 상하이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내일이면 다시 각자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 앞까지 팔짱을 낀 채로 내려왔다. 팔을 풀고 잘 자라는 작별 인사까지 마쳤다. 각자의 문 앞에 섰다. 선뜻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슬쩍 왼쪽을 돌아보았다. 통웨이 역시 손잡이를 잡은 채로 오른쪽의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통웨이, 그녀와 나는 창춘에서 세 번 만났다.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난다며 그리워하거나, 그리워하면서도 일생을 못 잊으며 산다거나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는 관계는 전혀 아니었다. 네 번째 만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와 연락이 끊어진 지점을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한다.


그녀가 불렀던 노래를 우연히 들으니 다시 그날이 생각났다. 내년 봄 즈음에는 반드시 창춘에 다녀오려고 한다. 목련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꼭 그때처럼 말이다.


https://youtu.be/bgnviO7y_Bk




* 이 글은 故 피천득 선생님께서 1973년에 발표하신 名수필 '인연'의 문장과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표절이나 모방이 아닌, 글쓴이의 발칙한 창의創意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용 삽입곡 : 채금 "몽중인" (오촌 작사, 임민 작곡)

* The music video inserted in the text is linked from '진이삼촌' at YouTube and is not commercially used in any case.

* Title Image by KIMDAEJEU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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