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Oct 29. 2021

오십에 뺨을 맞았다

세 번째는 아니 맞았어야 좋았을 것이다


철썩,이었는지 짜악,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남자의 솥뚜껑 같은 손은 나를 향했고, 그 손이 멈춘 곳은 내 뺨이었으며, 호텔 직원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순간, 모든 이들은 일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1987년 봄, 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다.


체육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들이 교실에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음악’ 과목만큼은 모두가 음악실로 이동해야 했다. 녹색 칠판과 커다란 피아노가 앞쪽에 있고 교회에서 흔히 보았을 법한 나무 의자들이 인원수에 맞게 줄지어 놓였다. 결석한 학생의 자리를 비워두고 나머지는 자신의 번호에 맞춰 자리를 채웠다. 그것이 음악 선생님의 원칙이었다. 공부를 방해하려는 요인이 있어도 자리 바꿈 따위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2번 태효와 4번 명석이가 그날의 방해 요인이었다.

두 녀석은 아침 등교 때부터 실없는 장난을 주고받더니 이교시 수업 시간이 되었음에도 투닥질을 멈추지 않았다. 반장의 차려 경례 때만 잠시 조용했을 뿐, 음악 선생님이 출석부를 가져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장난질은 더욱 심해졌다. 두 녀석의 가운데 끼어 앉은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결국 나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임마, 그만 좀 해!”

하필이면 그걸 음악 선생님이 들었다. 굵은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소리 지른 놈, 앞으로 나가.”

그날은 철썩 이었다. 철썩, 철썩. 첫 번째는 왼쪽에 있는 태효가 시선에 들어왔고 두 번째는 오른쪽에 앉은 명석이를 보게 되었다. 두 번 모두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억센 고개 돌림이었다.




1994년 봄, 전역을 불과 두 달 남겨두었을 때였다.


당시 부대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장교들과 사병들이 편을 갈라 축구 시합을 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된다는 말년 병장이었지만 군 생활이 끝날 때까지 모범을 보이겠다는 어쭙잖은 영웅심 덩어리는, 점심을 먹자마자 일찌감치 축구화 끈부터 동여맸다.

그날 시합에서 나의 오른발에는 호날두가, 왼발에는 손흥민이 다녀간 것 같았다. 언제나 패배가 기본이었던 장교팀을 상대로 그날은 사병팀이 무려 사대 일로 이겼고 심지어 그중 두 골을 내가 넣었던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샤워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왔는데 상황실에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처 머리를 다 말리기도 전에 서둘러 달려갔다. 상황실에 붙은 작전장교 방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눈앞에 불이 번쩍 했다.

그날은 분명 짜악,이었다. “이 새끼가!”라는 욕설은 덤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뺨을 맞은 것은 분명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똑같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뺨을 맞은 것이다.




만취滿醉한 사람은 숙박을 거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취객은, 다른 손님들의 휴식과 숙면을 방해할 수도 있고, 객실 내의 시설과 비품을 무단 훼손할 수도 있으며,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을 지키지 못해 정상적인 객실 운영에 차질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취객에게는 호텔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었다. 오후 세 시를 갓 넘긴 시각, 멀쩡한 모습으로 결제를 하고 객실을 배정받은 다음, 저녁 식사를 다녀오겠노라며 기분 좋은 인사까지 남기고 떠난 그가, 저렇게 완전히 돌변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폭음과 광란의 자리에 동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하나가 그를 로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고 가버렸다. 문을 나서는 그로부터 얼핏 혼잣말 비슷한 욕설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프런트 매니저 준현 군이 우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대로 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빨리 객실로 옮겨야 했다.

나는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준현 군에게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라고 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와 다음 날의 다툼을 막으려면 증거가 될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로비 전체를 비추는 CCTV가 있긴 하지만, 음성 녹음은 되지 않는다. 준현 군이 서둘러 전화기를 꺼냈다. 나는 마치 재연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듯 천천히 대사를 읊으며 손님에게 다가갔다.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저녁 10시, 아무개 호텔 305호실에 투숙 중인 아무개 고객님이 만취하신 채로 돌아오셨기 때문에 우선은 호텔 직원들이 객실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남깁니다.”

우선 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 단추 두어 개도 풀었다. 예상했던 대로 취객은, 일단 무거웠다. 의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체중을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했다. 양팔을 몸 밑으로 넣어 끌어안을 준비를 하는데 그 와중에도 타인의 손길을 느끼는지 그가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갑자기 욕설을 한다. 달랠 수밖에 없다.

“네, 고객님. 조금만 정신을 차리시고, 제가 일단 업겠습니다.”

순순히 그렇게 따라주면 좋으련만 지나친 기대였다.

“놔, 임마.”

임마, 소리에 촬영을 하는 준현 군의 표정이 불안해진다. 진정시켜야 할 사람이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더 힘들어진다. 다시 한번 팔에 힘을 주고 손님의 상체를 일으키려고 한다. 내 몸을 돌려 손님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내 팔을 집어넣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진짜 무겁다. 이젠 왼팔 차례다. 가누지 못하는 그의 머리가 내 뒤통수에 와서 부딪힌다. 빠악. 그리고 또다시 그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뭐 하는 거야, 임마. 놔두고, 한잔 더 해, 임마.”

숫자 욕이 줄줄이 들린다. 역시나 빨리 옮겨야 할 상황이다. 다시 한번 힘을 주려는데, 땀에 젖은 그의 셔츠 때문에 몸이 그만 주르륵 미끄러지고 만다. 그는 다시 소파에 널브러졌다. 나도 이마에 땀이 꽤나 맺혔다.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간다.

“매니저님, 제가 하겠습니다.”

“아녜요. 준현 씨는 이 분을 못 업어요.”


다시 한번 그의 팔을 잡으려는데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아, 다행히 정신을 차린 건가? 수월해지겠는데? 자, 정신이 드십니까? 객실로 가셔서 쉬셔야죠,라고 내가 말할 참이었다. 그때였다.


짜악.


그가 내 뺨을 때린 것이다. 짜악. 맞다, 지금 생각해보니 철썩이 아니고 짜악이었다. 열일곱 살 때처럼, 스물넷의 봄처럼 내 눈앞에 불이 번쩍 했다.


“짜식이 어디서 사람 몸에 손을 대고 있어?”

그 말과 함께 그는 소파에 누인 몸을 저쪽으로 돌려 버렸다. 분명 나는 뺨을 맞았다. 그것을 준현 군이 보았고, 로비의 손님들이 보았고, 둘리 이모 김춘희 여사가 바로 옆에서 보았다.

나는 저만치 날아간 안경을 말없이 집어 들었다. 안경의 오른쪽 렌즈가 깨졌다. 지금, 지금이 중요하다. 나는 준현 군을 향해 시익 웃어주었다.

“오늘 좀 힘든데?”


서너 번의 시도 끝에 그를 업는 데 성공했고, 한참의 실랑이를 거쳐 마침내 객실의 침대 위에 그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든 준현 군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나는 준현 군 들으라는 혼잣말을 했다.

“저 손님 덕분에 옛날 생각이 나네?”

내가 말한 옛날 생각이 무엇인지 준현 군은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한바탕 소동 끝에 얼추 퇴근 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에게 마무리를 부탁한 다음, 호텔 문을 나섰다. 가을밤의 공기가 유독 차게 느껴졌다.




안경 렌즈를 새로 맞추느라 다음날 아침의 출근은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차에서 내리니 준현 군이 호텔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준현 군이 먼저 말했다.

“어제 그 손님이 매니저님을 지금 기다리고 계세요. 촬영한 것도 다 보여드렸어요.”


군데군데 어젯밤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의 잘못을 거듭 사과했다. 그가 용서를 구하겠다며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야기는 기시감 가득한, 상당히 익숙한 내용이었다.

“원래 그렇지 않은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다 보니, 평소에는 멀쩡한데 어쩌다 과음을 하면,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촬영의 취지를 설명한 다음, 전날 밤의 녹화 영상을 그로 하여금 직접 삭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안경 수리비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가 더 미안해했다.

내가 건넨 커피를 힘들게 마신 그가, 한참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텔 문을 나서기 전에 그는 내게 명함을 주었다. 누구나 알만한 꽤나 큰 기업의 중간 간부였다.


“이유 없이 사람에게 손을 대는 놈들은 무조건 혼쭐을 내줘야 해. 안 그러면 다른 데 가서 또 그런다니까?”

호텔 마당을 가로질러 그가 사라질 때까지 둘리 여사는 고무장갑 낀 소매를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화를 참지 못했다. 여사를 다독거려서 안으로 먼저 들여보냈다.


혼자 서 있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늘은 변함없이 파랗다. 고등학교 때의 그날도, 병장 때의 그날도 하늘은 저렇게 파랬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찍 호텔을 떠나는 손님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나는 뺨을 한 번 슬쩍 만져보았다. 그리고 곧장 로비로 들어갔다. 입가로 흘러나오는 웃음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Image by Google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몽타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