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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15. 2022

환생 일기 (3)

시간의 터미널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알려줄 기세였던 루시는, 하지만 내 등에 업히자마자 금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쌔근쌔근 숨소리도 들렸다. 배만 닿으면 잠들어버리는 단순함이란, 루이나 루시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대로 두었다간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여정이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루시의 엉덩이를 살짝 흔들었다.

   “선배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깜짝 놀란 루시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쳐들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대체 어딘가요?”

   루시는 앞발을 길게 뻗으며 늘어진 하품부터 했다.

   “아함, 쩝쩝. 여기는 환계換界야.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바뀌고 교체되는 공간이랄까? 이전과는 상관없이 다음 단계로 바뀌는 곳이지. 죽음을 맞이한 생명체는 무조건 여기로 오게 되어 있어.”

   “다음 단계라면?”

   “이 다음의 생生인 거지. 이미 죽었으니까 이젠 다시 태어나야지.”

   “그렇다면 여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저승이라는 곳인가요?”

   “할할할.”

   갑자기 루시가 웃으면서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건 애당초 없어. 저승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개념이야. 죽음이 무서우니까, 겁이 나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애써 위안으로 삼으려는 거지. 여기는 이전의 세상과 다음의 세상을 이어주는, 시간의 터미널 같은 곳이야.”

   “시간의 터미널…”

   강아지 주제에 꽤나 멋진 표현을 썼다.


   “따지고 보면 인간계만큼 행복한 곳도 없고, 인간계만큼 불행한 곳도 없어. 그보다 더 즐거운 천국과 더 슬픈 지옥이 과연 있을 것 같아? 할할할.”

   “다음 세상에 대한 결정은 그럼 누가 하나요?”

   “당연히 환주님이시지.”

   “환주님이라면?”

   “환생還生과 환신換身을 결정하는 분?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여기에 도착한 생명체들의 다음 여정旅程을 결정해주시는 분?”

   “하느님이나 옥황상제 같은?”

   “할할할. 진우야, 그것 역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야.”

   “……”

   “너무 궁금해하지 마. 곧 만나 뵙게 될 거니까. 그리고 너 환생과 환신이 뭔지 물어보려고 그러지?”

   “네.”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다.


   “잘 들어. 조금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루시가 말을 이었다. 강아지의 습관은 사람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환생은 자기가 살던 생生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환신은 몸을 바꾸는 것, 즉 다른 생명체의 삶으로 가게 되는 거야. 환주換主님께서 너를 환생시키신다면 너는 죽기 전 진우의 시간으로 가게 될 것이고, 만일 환신을 명령하신다면 진우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제3의 존재가 되는 거지.”

   “아. 환생을 하게 된다면, 그럼 저는 죽지 않은 것으로 되나요? 사고를 당했다 하더라도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건가요?”

   사고의 순간과 함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아냐. 넌 분명 죽었어. 네가 환계로 왔다는 것은, 죽은 지 이미 49일이 지났다는 거야. 물론 다른 종교를 가졌다면 그것이 7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3년일 수도 있겠지. 환계의 입구에서부터 환주님을 만나는 거리는 영원불변永遠不變인데, 인간들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각자 편한 대로 가늠하는 거지.”

   “그러면 제가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네가 죽은 이후의 시간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 흘러가고 있어. 너의 가족들은 너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고 다들 열심히 노력하고 있겠지. 그들은 그 이후의 시간을 사는 것이고, 환생을 한 너는, 네가 죽기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다시 네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거야. 물론 네가 이미 죽었었다는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한 채로 말이야.”

   알듯말듯 했다.

   “1971년 8월로 돌아가 부모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난데없이 과거의 어느 날로 불쑥 돌아갈 수도 있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그때, 아니면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기 위해 눈을 감는 그 시간일 수도. 정확히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내가 죽기 전의 과거의 시간으로만 갈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죽은 이후의 시간도 흘러가고, 죽기 전의 시간도 흘러가고. 말하자면 평행우주나 다중 차원 같은, 그런 개념인가요?”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몰라. 진우야, 난 개라구.”

   “모든 것은 환주님 마음이군요?”

   “할할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나중에 환주님은 너에게 정수를 주실 거야. 정수淨水는 이전의 모든 기억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물이야. 그걸 마시면 너는 환생을 한 뒤에도 환계의 일들을 포함해서 전생의 일까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게 되는 거지."

   "그럼 선배님은 어떻게 그 전의 일까지를 다...?"

   "짐승으로 환신하거나 동물이 환생할 때는 정수를 마시지 않아도 돼. 인간과 말이 통하질 않으니까 굳이 기억을 지울 필요가 없지. 그 말은 곧, 동물들은 전생을 고스란히 기억한다는 뜻이야.”

   어쩌다 루이가 베란다에 나가 먼 산을 바라며 멍하니 서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루시는 다시 내 등에 코를 묻으려고 했다. 잠들 모양인 것 같았다. 나는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환생은 대충 알겠는데 그럼 환신은 무엇인가요, 선배님?”

   “으응, 그건 말 그대로 타인의 몸으로 들어가서 그의 인생을 사는 거야.”

   “타인의 몸? 그러면 역시 갓난아기로 다시 태어난단 말인가요?”

   “환생과 환신은 돌아가는 시점만 놓고 보자면 서로 비슷해. 신생아로 태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인생의 중간으로 가게 되면 그의 인생을 이어받아 계속 살게 되는 거지. 어쩌다 그런 경우가 있잖니.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했다는. 어제까지는 무지하게 나쁜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서 둘도 없이 착한 사람이 된다거나, 어제는 분명 빈털털리였는데 갑자기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되는, 그런 경우들 말이야. 모두 환신을 한 생명체들인 거지. 반대로 개차반 막장 행동을 하는 재벌 3세 같은 경우도 있지.”

   루시가 타악 침을 뱉었다.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던 소나무 풍경들이 잠시 꿈틀거렸다.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환생은 자기 몸, 환신은 다른 사람의 몸…”

   그걸 루시가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그렇지. 아참, 진우 너도 그런 경험이 있잖니?”

   “어떤 거요, 루시 선배님?”

   “분명히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인데도 마치 이전에 다녀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기시감? 데자뷔 말인가요?”

   “그래그래, 바로 그거. 그 데자뷔가 바로, 네가 살았던,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인 거야. 분명하지는 않지만 왠지 낯익은 공간, 상황, 사건, 그리고 사람… 넌 분명히 이전의 삶을 사는 동안, 그 공간에 있었던 거지. 정수淨水가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효과가 조금 약해질 때가 있거든.”

   “……”

   “그리고 환신은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일단 백 번의 환생을 거친 다음에만 가능한 거야. 물론 그것도 환주님께서 최종적으로 결정해 주시는 거지만. 환신은 사람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결정되기도 해. 나처럼 말이야.”

   “네? 선배님도 사람에서 환신을 하신 거라구요? 처음부터 개가 아니라…”

   말을 뚝 잘랐다. 또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루시는 뒷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눈치였다.

   “기억이 닿는 맨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원래 노르웨이의 기사, 이름은 아비드 세바스티앙이었어. 용감한 독수리라는 뜻이지. 왕을 지키는 친위대 수장이었는데 어느 날 전쟁터에서 칼을 맞고 죽은 거야. 눈을 떠보니 환주님 앞이더라고. 물론 기사로 죽기 전에도 오랫동안 여러 번 환생을 했다는 건 뒤늦게 알았지. 환주님께서 물어보시더군. 이제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냐고. 나는 특별한 답을 하지는 않았어. 그냥 맡기겠다고, 환주님께서 알아서 해 달라고.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니 강아지가 되어 있던 거야.”

   용감한 독수리로 불리었다는 루시가 하필이면 개로 태어난 이유는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저 직장 선배 몇몇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런데 한 번 강아지로 살아보니까 이게 또 나한테 잘 맞는 거야. 예쁜 여자 아니, 좋은 인간들도 많이 만났고. 무엇보다 환계로 오는 주기周期가 짧아서 좋아. 만약 인간으로 환신했다면, 자연사라 하더라도 얼추 백 년 정도는 기다려야 되잖아. 개는 길어야 15년이더라고. 그래서 난 그때부터 개로 살아왔지.”

   평생을 충실한 개로 살 거라고 내게 다짐하던 박 부장이 생각났다.

   “그런데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선배님은 어떻게 전생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셨던 건가요?”

   루시가 발등에 침을 발랐다.

   “환신은 내 것이 아닌, 남의 몸을 빌려 쓰는 거야. 마치 공동 유니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언제든 다시 돌려주기 위해 전생의 모습 그대로 환계에 오는 거지. 진우 너는 환신이 아닌, 환생을 했으니 어떤 모습도 없는, 무형정령無形精靈의 상태, 오직 심장만을 가진 빛 덩어리였던 것이고. 넌 아마 이번이 스무 번째 환생일걸? 지난번에 환계에서 나랑 만난 때로부터 말이야.”

   뭐? 내가 벌써 스무 번씩이나 진우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아쉽게도 기억에 남을만한 매듭은 없었다.

   "개들이 가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짖는 건, 길을 잃은 무형정령을 보았기 때문이야. 가끔 멍청한 것들이 있더라고. 환계의 입구를 못 찾아서 그저 맴돌고만 있어. 살았을 때나 죽은 다음에도 어떤 것들은 똑같이 멍청해."


   오솔길의 좌우로 난 풍경들은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

   “응?”

   “이번에는 어쩌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셨는지…”

   그 말을 듣고선, 루시가 내 어깨에 올린 발에다 힘을 살짝 넣었다.

   “주인이 날 버렸어.”

   “네? 그런 나쁜…”

   “아냐.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뉴욕 맨해튼에서 혼자 살던 할머니, 이름은 도로시였어. 그런데 당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알고 주위에다 나를 부탁했었지. 그런데 마땅한 곳이 없었던지 어느 날 밤, 센트럴 파크에 날 두고 가 버렸어. 며칠 고민했지. 집을 찾아갈까 하다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할머니의 마음이 점점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서 찻길로 그냥 뛰어들었어.”

   “아아, 그런 일이……”

   잠시 동안 말이 없던 루시가 다시 코에다 침을 묻혔다.

   “기억을 간직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지만 때론 그래서 힘들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 십만 년 넘게 환생과 환신을 되풀이하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되니 말이야.”


   “선배님, 저는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게 될까요?”

   “아까 말했잖아. 그건 환주님께서 결정해 주신다고. 나도 잘 몰라. 진우 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데?”

   나는 대답 대신 팔을 돌려 루시를 앞으로 안았다. 루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촉촉한 코는 여전했다.

   “만일 환주님께서 저를 어린 시절로 보내주신다면, 그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과거는 결정된 것이지만 미래는 언제나 정해지지 않은 것이라서, 진우 네가 돌아간 시점에서의 과거는 불변이지만, 그때를 기준으로 한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

   “진우 너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아, 드디어 다 왔다. 진우야, 나 좀 내려줄래?”

   하늘을 올려다보며 앞을 가늠하던 루시가 한참만에 반가운 소리를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드디어 환주님을 만나는 것인가?


   풍경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더니 곧 완전히 멈추었다. 저 앞 오솔길이 끝나는 곳으로 밝은 빛이 다시 모였다. 여기로 오는 내내 깔려 있던 옅은 안개도 서서히 걷히고 무언가가 제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아주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지붕은 높았고, 마찬가지로 담장 또한 그 높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출입구로 여겨지는 곳에는 광화문처럼 커다란 대문이 솟아 있었다.


   땅에 내려선 루시가 앞발에 다시 침을 바르고는 몸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대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나도 침을 꿀꺽 삼키고 루시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문 앞에서 선 루시가 두 발을 이마에 댄 채로 큰절을 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다시 일어선 루시가 내게 눈짓을 했다. 자기처럼 절을 하라는 뜻일 게다. 부랴부랴 나도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굽혔다.

   세 번째 큰절을 마치고 일어서자 대문이 소리를 냈다. 끼이이이이익. 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루시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 들어가자.”


(계속)



*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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