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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23. 2021

예의 바른 나이키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드디어 운동화 옆구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는 들어서 칠판을 보는 척 하지만, 책상 밑으로 내린 손은 신발 접었다 펴기를 쉼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이게 전부 아버지 때문이다. 사흘 전, 아버지가 이 운동화만 사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이런 수고를 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교문을 나서는데 양말이 축축하게 젖었다. 신발에 구멍이 나서 빗물이 새는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불평부터 쏟아냈다. 낡고 해진 신발 때문에 아이들이 거지라고 놀린다는, 엄마 속을 후벼 파는 말도 일부러 덧붙였다. 엄마는 이리저리 한참을 보더니 결국 찢어진 부분을 바느질로 살짝 꿰매 주었다. 며칠만 더 신으라고 했다. 그 바람에 내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다음날 수업을 마쳤을 땐, 그 구멍 사이로 발가락이 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버지가 새 신을 사 오실 거라는 말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나이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스펙스면 감사하다. 아니, 타이거라도 상관없다. 뭐, 월드컵도 나쁘진 않잖아? 내가 며칠 동안 나스타월, 나스타월 노래를 불렀으니 아버지의 선택은 분명 그 네 개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것이든 괜찮으니 우리 반 아이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이왕이면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거라면 더 좋겠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은, 그런 내 바람과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나이키는 나이킨데, 하늘을 보고 있어야 할 나이키 로고가, 세상에나 땅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이게 뭐냐고. 나는 짜증을 냈다. 짝퉁 나이키를 신고 창피해서 학교에 어떻게 가냐고. 나중엔 울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조금 당황하셨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바느질로 꿰맸던 신발을 찾으려다 엄마에게 등짝을 몇 대 맞았다. 할 수 없이 땅을 향해 엎드린, 예의 바른 나이키를 신고 학교에 갔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신발을 빨리 닳게 하자. 안되면 구멍이라도 내자. 그러면 새 신을 사 주시겠지. 그래서 오전에는 일부러 발을 질질 끌면서 돌아다니다가, 점심시간이 지나고부터는 신발 앞코를 틀어 쥐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제까짓게 이러는데도 안 닳고 버티겠어?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했던 예의 바른 나이키는 사흘 만에 결국 옆구리가 터졌다. 이제 됐다 싶었다. 웃음이 나왔다. 조금 벌어진 틈새로 연필을 쑤셔 넣어 휘휘 저었다. 그러자 처음엔 손톱만 했던 찢어진 자리가 금세 엄지 손가락만큼 넓어졌다. 애꿎은 신발이 조금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달려들어가면서 큰소리를 냈다. 엄마, 이것 보라고, 싸구려니까 삼일 만에 또 찢어지는 것 아니냐고. 엄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신발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저녁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 역시 신발을 말없이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그리고 한참 만에 그러셨다. 내일 좋은 걸로 다시 사주마. 좋은 걸 사 주겠다는 말에 드디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나이키를 신고 공을 차는 꿈을 밤새 꾸었다.


다음날 저녁, 숙제도 일찌감치 마쳐 두고 아버지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졸음을 못 이긴 머리가 방아를 찧으려는데, 익숙한 먼지 냄새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당연히 새 신이겠지? 그런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좋은 신발들은 모두 멋진 종이상자에 담겨 있던데. 봉지를 건네주시면서 아버지가 웃으셨다. “신발 장사가 미안하다고 천 원 깎아 주더라.” 미안하다니? 무슨 말이지? 하며 봉지를 천천히 벌려 보았다. 얼핏 보이는 신발 뒤꿈치부터 불안했다. 꺼냈다. 아뿔싸. 이번에도 나이키가 엎드려 있다. 똑같은 신을 다시 사 오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천 원 깎아 주더라, 미안하다고.




오후에 무심코 바닥을 내려보다가 운동화 옆이 살짝 찢어진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날카로운 것에 긁혔던 모양이다. 마침 길가에 샵이 보여 들어갔다. 특별히 상표를 따지지 않았다. 보기에 깔끔하고 신어서 편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이즈를 고른 다음 계산을 마쳤다. 직원이 물었다. “손님, 신으셨던 신발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네, 버려주세요.”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득 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그 신발이 생각났던 것이다.


265밀리입니다. 두대족소頭大足小. 하하하.


일상의 물건이 낡거나 닳아야만 새 것을 사는 경우는 요즘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쓸모가 없어졌거나, 유행에 뒤쳐졌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새 것이 사고 싶거나 그게 전부다. 그리고 어쩌다 드물게 ‘고장’이 나면 가성비라는 녀석이 먼저 앞장을 서니, ‘고쳐 씁시다’라는 말이 낄 자리가 없다. 쉽게 사고 쉽게 쓰고 또 쉽게 버리는, 그런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물질적 풍요와 함께 자연스레 변화된 모습을 두고, 굳이 ‘라떼 메들리’를 읊을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모습이 사람에게까지 번지는 세태는 조금 염려가 된다. 쉽게 사고 쉽게 쓰고 또 쉽게 버린다. 마찬가지로 쉽게 뽑고, 쉽게 쓰고, 또 쉽게 해고한다. 반복된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곧 의식을 지배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행동. 물건에 대한 행동이 사람에 대한 의식으로 굳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울보 남동생의 신발 타령이 안쓰러웠던지 여섯 살 터울의 누나는 아르바이트로 받은 월급을 쪼개어 결국 ‘국제상사 스펙스’를 사 주었다. 로보트 대신 신발을 안고 잠들었던 날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새 신이 생겼으니 낡은 헌 신은 이제 그만 버리자던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밑창도 벌어지고 옆구리도 찢어졌던 예의 바른 나이키는, 그래서 내게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담겼다. 대문 앞 쓰레기통 옆에다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드디어 내일부터는 스펙스를 신는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대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았다. 낡은 신발에게 미안한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었던, 그저 어린 열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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