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머니가 먼저 연락을 주시는 것도 퍽 드문 일인데, 전화를 받자마자 뜬금없이 카톡을 사 오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지? 잘 지내셨냐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우선은 다시 여쭈어봐야 했다.
“네? 카톡요? 카톡을 사 오라구요, 큰어머니?”
그러자 큰어머니의 대답 대신,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린데 얼굴마저 떠오른다.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께 전해 들은 자조치종은 이러했다.
여태 구형 폴더폰을 갖고 다니시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형수님들이 큰아버지 내외분께 스마트폰을 선물해 드렸다. 올해 아흔이신 큰아버지는 여전히 사이클을 타시고, 여든일곱 큰어머니는 일상처럼 판소리 공연을 다니신다. 그런 두 분의 바깥 활동을 감안한다면, 굳이 남들의 이목 따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화기 교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일상에서 전혀 문제가 없던 구형 전화기와는 달리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일단 전화를 받을 때부터 여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누르라고 해서 눌렀는데 안 된다. 밀면 된다고 해서 밀었는데 또 안 된다. 그렇게 번번이 어긋나는 통에, 걸려오는 전화를 눈으로 보고도 받지 못하는 일조차 빈번해졌다.
원래 쓰던 전화기를 다시 꺼내자니 며느리들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바쁜 며느리들을 불러다가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스마트 세계를 만끽하고 계신 우리 부모님을 큰어머니가 일부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전화 걸고 받기 수업이 비교적 간단하게 끝난 다음, 메시지 전송 교육을 하려는데 그때 아버지가 예의 장난기가 발동하셨던 모양이다. 우선 카카오톡을 열어서 문자와 사진에다 동영상까지 주고받는 것을 보여드리자 큰어머니는 그게 퍽이나 부러우셨나 보다. 그래서 큰어머니가 말했다. “그거, 나도 하게 해 주라.”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큰어머니, 속으로 쾌재를 부른 아버지가 이렇게 답을 하셨단다.
“이게 카톡이라 하는 건데 마트에서 사서 깔아야 된다. 그런데 부산에는 다 팔리고 없고, 서울에서 사 와야 된다. 빨리 안 사면 남은 게 없을 텐데.”
그 말을 큰어머니가 믿어 버렸다. 진지했던 큰어머니는, 매진 임박이란 말에 서둘러 내게 전화를 하셨고, 아버지는 뒤에서 배를 잡고 웃으셨던 거다. 입대할 때 총 사 오라고 한다더니 이것이 꼭 그 꼴이다. 아버지의 장난이란. 아무리 한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사이지만 그래도 형수님을 이렇게 놀리다니. 하지만 그것이 농담임을 알 리 없는 큰어머니는 다급해진 마음에, 카톡이 들어있는 장바구니에 하나를 더 담으신다.
“카톡 살 때, 유부터도 잊지 말아라. 돈은 내가 줄게.”
유부터? 아하. 아버지가 유튜브도 보여주신 모양이다. 큰어머니께 다시 아버지를 바꿔주십사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번엔 전화를 못 받으신단다. 분명, 거짓말이 탄로 난 뒤의 후폭풍이 두려우신 것이 틀림없었다.
갓 출시된 기기는 나도 어렵기 마찬가지다. 익숙해지려면 반나절은 쉬지 않고 만지작거려야 한다. 하물며 아흔이 가까운 어르신들에게 새 스마트폰이란, 그리고 새 어플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편리하다 하여 가졌지만 편하지 않고, 내 손에 쥐었지만 내 마음처럼 쓸 수가 없다.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됩니다,라고 하던데 때로는 가장 기본적인 전화조차 걸고 받기 어려울 때가 있다.
승객들 눈치 보이니까 버스에선 진동으로 바꾸라던데 뭘 눌러야 되지? 극장에선 끄라고 했는데 끄는 법을 그만 잊어버렸다. 박 씨 전화기는 상대방 목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던데. 김영감은 손주 사진도 보여주고, 최노인은 나훈아 노래도 들려주던데, 내 전화기에는 왜 그런 게 안 나오지? 정말 마트에 가서 따로 사야 되는 건가? 그전에 주민센터에서 스마트 폰 수업한다고 했을 때, 그거라도 들을 걸. 이젠 코로나 때문에 수업마저 없으니.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경로당의 에피소드를 감안하면, 카톡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말을 큰어머니가 진심 믿은 것도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이제 결론이 간단해졌다.
우선 큰어머니께는 조금도 걱정 마시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조카가 반드시 카톡과 유부터를 사서 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서둘러 부산에 다녀와야겠다. 형수님들이 먼저 알고 카톡을 팔기 전에, 후딱 말이다. 그런데 얼마 주고 샀다고 해야 될까? 음, 그건 부산 가는 길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