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23년 4월 중순의 순간)

신비한 걸까, 불쌍한 걸까.

by 제II제이

신비한 걸까, 불쌍한 걸까?


대나무.




대나무는 풀인데,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나무가 스스로

줄기를 단단하고 굳게 만든

이유가 있지 않을까.

풀인데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기보다는,

풀인지 나무인지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그 자연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인간의 한계가 아닐는지.




대나무는 여러 개체가 모여 있는 것 같지만,

땅속으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한 개체이다.

겉으로는 여럿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인 것.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부를 보는 일은 아주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은

과거에는 좋은 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일을 개화‘병’이라고 부른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일은

식물이 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일인데.

그걸 사람들은 제 입맛에 따라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거나,

아니면 ‘병’이라거나 하며 부른다.

아니, 어쩌면

꽃을 피우는 일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이라 부르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대나무는 길게는 12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120년에 한번은, 인간에게는

극적인 시간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니 대나무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꽃을 피우고는 죽는 그런 식물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식물에게

고작 ‘일임성’ 식물이라는

볼품없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대나무 꽃은 화려하지 않다.

눈길을 끌지 않는다.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대나무에게

꽃을 피우고 죽는 일은

어쩌면 비밀스러운 특수 작전일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피우는 꽃인 만큼

- 그만큼 더 화려하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인간의 것인가.

대나무꽃은 그냥 대나무꽃이다.




대나무는 한 번에 죽어 스스로 양분이 되고,

떨어뜨린 씨가 발아할 수 있게 하여

완전한 세대교체를 한다.

이 완전한 세대교체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이 아닐까?

가장 적절한 순간에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죽이는 리더십의 마무리.




우리나라 군대 계급장에도 대나무가 쓰인다.

대나무 잎 9개를 붙인 모양이

영관급 계급장에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무기로도 많이,

오래전부터 쓰였다.

그런데, 악기로도 쓰였다.

무기와 악기. 참 다양하게도 사용되었다.




대나무 숲은 불에 탈 때

‘팜팜’하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것이 영어 bamboo의 어원이라는데

진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