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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II제이 Mar 20. 2023

꽃을 보고 밥을 떠올린다 (22년 5월 중순의 순간)

무언가를 보며 다른 것을 떠올리는 일은,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것.

5월에 나무를 하얗게 뒤덮으며 존재감을 보이는 꽃나무 아니, 나무꽃. 이팝나무 꽃. 누군가는 이걸 보며 실을 꼬아 장식으로 만든 술(fringe - 영어 이름)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하얀 눈꽃(Chionanthus - 학명)을 떠올렸다고 한다. 봄이 가득한 때다. 아니, 봄을 가득하게 하는 꽃 무리다. 꽃들이 잔뜩 피어 봄이 더 차오른다. 꽃말조차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니 말 다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꽃을 보고 밥을 떠올렸나 보다. 밥을 떠올린 건, 배가 고팠기 때문이겠지. 흰 쌀밥(이밥)을 생각하니 또 흰 꽃이 무더기로 모여 있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5, 6월은 예전에는 보릿고개라고 먹을 것이 없어 힘든 시기였다는 것도 같이 생각해보면 꽃을 보고 밥을 떠올린다는 것은 낭만보단 서러운 일에 가깝지 않나. 아니, 서러운 일이지 않나. 이팝나무 이름이 모르고 듣기에 어쩌면 이국적인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쌀나무라든가, 밥태기나무라든가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고, 혹시 뭔가를 보면서 먹고 사는 일을 떠올려본 적이 있다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테다.


이팝나무는 그 씨앗이 이듬해 봄에 바로 싹을 틔우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을 지내고 나서도 일 년을 땅속에서 묵고 나서야 발아한다니. 쌀 같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적어도 한해 농사짓는 시간만큼은 필요한가 보다. 보릿고개를 직접 넘어본 적이 없는 나는 한창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갈 때 들에 길가에 무더기로 보이는 흰 쌀밥 같은 꽃이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더 배를 고프게 했을지, 아니면 보릿고개를 넘어갈 힘을 얻게 했을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이팝나무가 왜 하필 그때 피는지도 알 수가 없다.


202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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