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2화. 김동훈 외, <중년기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 읽고
김동훈, 기쁘다, <중년기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일에서의 소진이 결혼불안정성에 미치는 영향: 가족소속감의 매개효과>, 가정과삶의질학회, <<가정과삶의질연구>> 38호, 2020.3., 111-125p.
‘당연하다’라는 말의 뜻을 아는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라는 뜻이다.
좀 쉽게 말하면 원래 그냥 그런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기에 놓치고 살 때가 많다.
이번에 보게 된 논문에 대해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당연한 거 아니야?’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갖는
어떤 힘(!)을 당신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 논문은 그런 의미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논문이라는 말을,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식으로
멋있게 포장을… 허허…)
논문은
한국의 노동시간이 길다는
문제의식을 다루며 시작된다.
이 문제의 배경과 함께.
너무 다들 당연하게 알고 있는 내용으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라 벌써 지루할 수 있다.
그리고 과도한 노동시간이
개인의 일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주로 스트레스와 심리적 소진을 중심으로.
역시 뻔하다.
그 다음.
‘중년’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룬다.
논문에서는 ‘중년’ 개념에 대해
단순히 나이로 정하는 것은 어렵고,
다만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위기’, ‘위기감’이 그것이다.
논문은 과도한 노동시간이라는 상황이
이 중년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고 한다.
‘중년의 위기’라는 말도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여기까지 포석을 깔고,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가
과도한 노동시간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으로 이어간다.
특히 중년이 되면 가정(결혼)의 안정감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이
이 경향을 강화 혹은 약화시킬 수 있는
변수가 된다고 하며
연구의 의미를 부여해 나간다.
“결혼 초기에 부부간의 문제를 잘 다루고 넘어간 부부들에게도 결혼 15년에서 19년 사이에 이르면 결혼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경향성을 보일 수 있다”(112쪽)
결혼 15~19년 사이라는 시기는
자녀의 청소년기와 관련된다고도 볼 수 있다.
양육, 직장의 과도한 업무 등의
일종의 스트레스 발생 요인이라는 점을 말하는 듯하다.
“결혼 초기에 부부간의 정서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시기에 이르면 두 사람의 관계 이외의 요인들, 가령 직장 노동의 과도한 증가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결혼 불안정성의 증가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112쪽)
'결혼 불안정성'이 극단으로 가면,
쉬운 말로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결혼의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 중 하나는
‘가족 소속감’이다.
그런데, 과도한 노동시간은
이 가족소속감의 형성 유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하여,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직장 혹은 일에서의 부담감이 결혼불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있다.” (113쪽)
며 주제를 밝힌다.
여기에 더해서,
가족 소속감은 결혼 불안정성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한 논문이라 한다.
이쯤 읽으니,
뭐야, 이게 도대체 왜, 인기 논문에, 올라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매거진에서 다루는 논문들은
DBpia라는 사이트에서 뽑힌 인기 논문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냥 뭐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이 너무 힘들거나
가족에 소속감이 없으면
가족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고
결혼 생활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지.
뭘 당연한 걸 ‘연구’ 씩이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지 따져보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지 않은가…
라고 하며 논문을 더 읽을 동기를
자력으로 생성해 보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부부가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 것이
그 부부의 이혼 가능성을 높일까, 낮출까?
이 질문에 대한 선행 연구가 논문에서 소개된다.
‘이혼’에 관한 경험은
결혼 지속성과 부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부적인 상관관계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반비례 관계라고 생각하면 쉽다.)
즉, 이혼에 관한 경험이 많을수록
결혼 지속성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도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역시나 그렇다.
그건 상식이지, 참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근거로 쓸 수 있지 싶다.
이혼을 막고 싶다면,
이혼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며 협박(?)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찾아보며
감화시키려 하는 편이 낫다는 뭐 그런 이야기.
이어지는 결혼 불안정성에 대한 선행연구를
따라 읽어오자니, 뻔한 이야기의 행진이다.
흔히 이혼 사유를 말할 때 ‘성격 차이’라고 한다.
이 말을 혹자는
‘성’(sex)에 관련된 문제와
‘격’(경제력, 경제적 격차, 쉽게 말해 돈문제)에 관련된 문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논문에서는 이 내용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경제학적 의사결정의 문제’,
‘정서적인 상호작용의 문제’,
‘배우자 이외의 가족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
‘가족에서의 역할에 대한 관점의 문제’ 등등으로 이어지는
결혼 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들은
이미 뻔하디 뻔해 보인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해서
여기서 논문을 던져버리지 말고,
이것이 연구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애써) 기억하자.
예전부터 어느 정도 상식으로 이해되고 있던 내용들에 대해
연구를 통해 그 확실함의 강도를 더해 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그만 읽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이렇게 해보자.
직장에서 수모를 당하더라도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혹은 남편)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떠올리며
‘버티는 가장의 이미지’를
혹시 한 번이라도 떠 올려본 적이 있다면?
가정의 따뜻함이 바깥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라는 이야기도
당연한 말이지만,
혹 다음과 같은 마귀 빌런 같은 질문은
어떻게 보이시는지?
“결혼을 무너뜨리려면 직장 일을 얼마나 더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가?”
논문에서는 위의 질문을 둘로 좀 더 자세히 쪼갠다.
하나는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
다른 하나는 ‘일 자체가 너무 과도한 경우’이다.
어쨌든 둘 다 가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서도.
또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도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가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로 나눠본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디테일을 늘려야 하는군.
“본 연구에서는 직장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직장에서 역할이 가정에서의 역할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결혼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또한 가족소속감에도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또한, 직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소진이 결혼불안정성과 가족소속감에 주는 영향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일과 관련된 정서적 문제들로부터 가정과 부부생활이 받게 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115쪽)
논문에서는 ‘가족 소속감’을 중요하게 짚어 다룬다.
‘소속감’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라는 점에서 시작하여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공동체로
‘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것도 좀 뻔한 이야기긴 하다. (젠장!)
중간에 통계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와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여기서 자세히 풀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말 더 구체적인 연구 과정을 보고 싶다면,
논문 본문을 직접 읽으시면 된다.
논문에서 제시되는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일 갈등의 경우 결혼 불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정생활이 자신이 수행하는 직장에서의 과업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20쪽)
논문에서 ‘가정-일 갈등’과
‘일-가정 갈등’을 구분하고 있다.
이 둘은 가정과 일 중
무엇에 더 우선순위가 있느냐는 점에서 달라진다.
‘가정-일 갈등’은 가정이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즉, 가정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라고 봐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첫 번째 결론도 뻔하다는 생각이…
다만, 가족 소속감이 강한 경우
불안정성이 약화된다는 점도 확인된다.
이를 쉬운 말로 정리하면
‘중년에 힘들어질 때
이혼까지 가지 않으려면
평소에 가족과 잘 지내야 한다’가 되겠다.
네, 넘 당연하군요.
“둘째, 일-가정 갈등의 경우 가정-일 갈등의 경우와는 달리 결혼 불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20쪽)
일이 가정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결혼 불안정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당연히) 높겠지.
네. 역시. 그렇군요.
“셋째, 일과 가정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직장생활에서의 소진 역시 결혼 불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120쪽)
네. 역시 일이 너무 힘들면
결혼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군요.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을 꾸리면서
가정을 안정적으로 잘 지켜나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가정을 세워나가면서 만나는 육아 문제,
가정과 일의 갈등 문제를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소속감,
일보다는 가정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는 관점 등
어찌 보면 뻔하여 심심하기조차 한 이런 내용이
한 번 더 진실에 가까운 것임을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싶으면서도,
이 논문이 왜 인기 논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일-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많은가
생각할 따름이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필자가 편집을 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