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남들의 단점을 잘 파악하는 고약한 감각을 타고났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극히 드물다. 주변에 소위 말하는 '금수저'나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이 가진 풍족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이 부럽지는 않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내면적인 결핍이 뚜렷이 보이거나,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 성공을 발전시키거나 오랫동안 유지할 내공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등 이면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작 나 자신만 해도 그렇다. 지금이야 표면적으로 자유롭고 부족함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년시절엔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고 사춘기 시절엔 삶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며, 20대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이런 나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 자신조차도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살겠냐고 하면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유명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가진 삶의 자유, 자기 통제감,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 따위를 봤을 때 딱히 나보다 더 큰 충만함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공이 부족한 너무 어린 나이에 얻게 된 돈과 명예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눈빛이 보인다.
물론 존경하는 인물은 많지만 그들의 인생도 딱히 부럽진 않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위대하지만 그것을 창조하기 위한 강박이 그를 평생 편하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J. D. 샐린저는 지독한 은둔자였으며, 짐 캐리는 고질적 우울증을 가졌다.
하루키와 김혜자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부러운 사람이 두 명이나 생겼다. 바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배우 김혜자다. 둘은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어땠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평생 모든 면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평가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내뱉은 말이기도 하다. 본인의 입으로 '난 평생 운이 좋았다', '부족함 없이 살았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너무도 쉽게 작가가 됐기에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었다'라고 쓴 것을 보고 질투심마저 들었다. 누군가에겐 평생을 바쳐도 이루기 힘든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도 쉬운 일 일 수 있다니.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배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재무부장관 아버지 덕에 과하게 풍족하게 살았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한 배우 김혜자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아무리 열망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이 두 분은 아주 특별한 재능까지 가졌다. 김혜자 배우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연기했던 수많은 감동적인 캐릭터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 코끝이 찡해지고, 하루키의 에세이는 날 소리 내 웃게 만든다. 이런 재능을 지닌 그들은 분명 작가와 배우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어도 어느 분야에서든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도 사랑받는 능력을 타고났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얻게 된 막대한 부와 명예를 편안하게 다룰 줄 알고, 자존감과 이타심까지 갖춘 완벽한 그들. 어떻게 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부럽지가 않아
그들을 부러워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 얻으려 노력하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들이 타고났다는 사실이 내 노력을 억울하게 만든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보다 힘들게 쟁취한 것이 더 가치 있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당연히 누구나 힘들기보다는 편안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해 힘든 일을 겪거나 고생한 것이 나중에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되면, 힘들었던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했던 소중한 시간이 된다. 내가 그 둘보다 타고난 것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정해진 것이고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나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타고난 재능과 물질적 자산은 물론이고 매일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까지, 현재의 내가 모든 면에서 그들보다 가진 것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먼 훗날엔 나도 그 정도 위치에 다다를 거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훗날 방향을 바꿔 걸어갈 길이든, 내가 하루하루 발전해 올라가는 길이든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결국 비슷한 위치에서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남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 순 없어도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순 있다. 하루키와 김혜자를 언젠가 같은 길에서 마주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