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재 Jan 28. 2023

가끔은 네 발로 달려야 할 것만 같아

내 몸에 선조의 생활습관이 남아 있는 걸까


동굴은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장소다. 자연 동굴들어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집에 온듯한 안락함 동시에 느껴진다. 류가 그동안 거쳐온 수많은 주거형태  수억 년의 세월을 견뎌 집은 동굴뿐이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그 어떤 건축물도 동굴만큼 오래 살아남진 못할 것이다.


동굴은 우리가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들, 집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자연적으로 갖추고 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냉난방은 물론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가구 구비되어 있다. 동굴 속을 여기저기 관찰하다 보면 불규칙하게 굳어진 다양한 모양의 암석에서 침대, 책상, 의자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풀옵션 주택을 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수억 년 동안 인간과 맹수를 비롯한 많은 생명체가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굴 탐험은 더흥미로워진다. 그동안 여기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고 태어났을까? 몇 세대의 가족이 이 집을 거쳤을까? 저 넓고 평평한 돌을 침대로 사용했겠지?


어떤 날은 내가 두 발로 걷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른발을 땅에 딛으며 왼발을 떼고, 다시 왼발을 앞으로 딛으며 오른발을 떼고. 이런 다리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의식하며 걷다 보니 걸음이 점점 이상해졌다. 내 사지가 어색해지고 급기야 걷는 법을 까먹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양손까지 이용해 네발로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땅과 가까이에서 바람을 가르며 맹수처럼 네발로 달리고 싶어졌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행동 제어력 덕분에 실제로 네 발로 달려볼 순 없었지만, 만약 그랬다면 두 발로 걷는 것보다는 훨씬 능숙했을 것이다.


 간식으로 시리얼을 먹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이걸 꼭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양이나 강아지가 음식을 먹듯 혀로 시리얼을 말아 올려 먹어봤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 행동이 부끄러울 때가 있는데, 이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진작 이렇게 먹었어야 했던 것처럼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 몸에 격세유전으로 받은 선조의 생활습관이 남아있는 걸까? 혹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 만약 혼자가 아니라면, 이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남의 시선 탓에 하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원시의 습관대로 행동해 보는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규칙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수컷들을 쫓아내고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면 곤란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와 김혜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