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2월 중순. 아직 두툼한 겨울 패딩을 미련 없이 정리하긴이르지만 햇볕이 따사로운 한낮이면 아스라이 불어오는 봄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기다. 봄냄새에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봄이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다른 모든 계절은 오직 여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봄은 곧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며 설레게 하고, 가을은 여름 내내 공중에 둥둥 떠다니던 두 다리를 땅에 디딜 수 있게 하며, 겨울은 여름을 더 애원하게 만든다. 그렇게 모든 계절에서 여름을 떠올린다.
한여름의 에펠타워는 겨울보다 15센티미터 더 높아진다고 한다. 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금속을 팽창시키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에펠타워와는 달리 내 마음은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열기에 맘이 온통 흐물흐물해져서 여기저기 맘을 뚝뚝 흘리게 된다.
해 질 녘 여름 노을에,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푸른 여름밤에, 함께 신나게 여름 바다를 즐기다가 눈이 마주치는 타인에게 마음을 기꺼이 흘려버린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서늘한 바람이 불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녹았던 마음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도심에서 벗어나 생명의 꽃을 피우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초록색 나뭇잎이 빼곡히 달린 나무들이, 오늘 막 태어난 풀벌레가, 여름에만 허락된 시원한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도시는 인공적인 구조물이 온통 자연을 덮고 있다. 흙을 덮어버린 아스팔트와 도보블록, 여름 하늘을 독차지한 고층 빌딩들.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은 매일 같은 모습이다. 모두 죽어있다. 도시에선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공허하고 죽은 영혼들만이 가득하다.
자연은 매일, 매 순간 모습을 바꾼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같은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 자연 속에 있으면 매 순간이 소중해진다.
이 순간을 놓쳐버릴까 봐, 여름이 인사도 없이 가버릴까 봐, 밤사이 바닷물이 차가워질까 봐,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까 봐. 매일 아침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확인하고 저녁마다 지는 해를 아쉬워한다. 새로운 계절은 늘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성큼 와있으니까.
눈부신 여름날엔 다른 모든 것은 내팽개쳐두고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마치 오늘이 생의 마지막 여름인 것처럼, 다신 바다에 들어가지 못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