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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Jan 31. 2023

거북목 탈출기

독서도 '장비빨'


행동미래학자 윌리엄 하이암박사는 사무직 노동자 3000명을 데이터화해 2040년 인류의 신체 예측 모형 '엠마'를 선보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과 백팩을 멘 것처럼 심하게 굽은 등, 퉁퉁 부어 있는 몸을 가진 모형은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납득됐다. 지금의 생활패턴을 보면 20년 뒤 꼼짝없이 그 모습이 되리란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행동미래학자 윌리엄 하이암 박사와 그가 만든 2040년 미래 인체 모형 '엠마'


우리는 대부분의 업무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통해 처리한다. 이렇게 하루종일 같은 자세로 이뤄지는 업무 방식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미 많은 현대인들이 거북목과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쁜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하루종일 자세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허리를 펴도 고개는 어쩔 수 없이 숙여야 했고, 집에 돌아와 운동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어도 다음날이면 또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해야 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쳇바퀴를 끊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환경 자체를 바꿔야 했다.



거북목 탈출기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면 노트북의 위치를 높여야 한다. 그렇다. 높이 조절 가능한 거치대가 필요했다. 사실 이 거치대를 살지 말지 고민한 건 벌써 수년째다. 난 주로 카페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공장소에 거치대까지 펼쳐놓고 작업하는 것이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학생이나 프리랜서가 카페에서 거치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작업하는 모습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젠 더 이상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게 됐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온라인 검색을 해보니 수많은 종류의 거치대가 판매되고 있었지만 어떤 제품을 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 옆테이블에서 어떤 분이 견고해 보이는 거치대를 사용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분이 자리에서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가방을 집어 들고 자리를 뜨기 전 잽싸게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쓰고 계신 노트북 거치대, 어디 제품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난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이런 상황에선 아주 뻔뻔하다.


제품 브랜드를 받아 적고 검색을 해봤더니 일명 '라벨갈이' 제품이었다. 중국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에 브랜드 이름 붙여서 파는 것이다. 연관 상품 추천 목록에 같은 제품이 뜨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차피 모두 동일한 제품이니 비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 가장 저렴한 걸 구입하면 된다.


처음 사용해 본 거치대는 신세계였다. 노트북을 올려놓고 타이핑을 하면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예상외로 안정감이 있었고, 무게도 생각보다 가벼웠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노트북을 보는 게 익숙해지니 책을 읽을 때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독서도 장비빨


독서대 역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디자인이 있었다. 중복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아야 했고 열흘간 틈틈이 온갖 쇼핑몰과 후기를 뒤져 내 책상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골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책의 높이 조절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원래 사용하던 독서대보다 훨씬 견고한 홀더가 책을 잘 잡아줘서 책을 펴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훨씬 편해졌다. 이렇게 독서가 편해지니 더 자주, 더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쉬워지면서 굳이 없어도 되는, 대체 가능한, 혹은 효용성이 짧은 제품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간혹 이렇게 생활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는 신박한 제품들이 있다.


노트북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트북 거치대와 스탠딩 독서대 구입을 적극 추천한다. 20년 뒤 엠마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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