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목소리로 말하는 법
말투를 한번 바꿔볼까
말투를 한번 바꿔 볼까
난 항상 영화 <블루 재스민>의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목소리가 부러웠다. 귀족처럼 차분하고 우아한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를 매료한다. 나도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내 말투는 그보단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에 가까웠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상당히 매력적인 배우이고 개인적으로 그의 팬이기도 하지만, 그가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저 상대방의 허점을 낱낱이 드러내겠다는 의지로 여유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말투는 누가 들어도 호감형은 아니었고, 심지어 반사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배우이기 때문에 이런 말투가 그를 유일무이한 캐릭터로 만들었고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어딘가 묘하게 비호감인 배역을 맡기에 적격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인 프리랜서기에 호감가지 않는 말투를 가진 것은 내 인생에 명백한 마이너스였다. 이런 목소리로 30년을 넘게 살아왔으니 이제 한번 바꿔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속도는 무게를 만든다
두 배우가 가진 말투의 차이는 말의 '속도'와 '높이'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와 높은 목소리를 가진 반면 케이트 블란쳇은 여유로운 속도와 동굴 같은 저음의 목소리를 가졌다. 빠르고 높은 목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여유로운 말투와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내 귀에 캔디'처럼 들린다. 케이트 블란쳇의 목소리가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라면 제시 아이젠 버그의 목소리는 2000년대의 EDM 같았다.
신이 나거나 흥분한 채로, 그러니까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말을 하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목소리가 높은 사람은 발랄하지만 가벼운 인상을 주고, 목소리가 낮고 말의 속도가 여유로운 사람은 화를 내거나 흥분을 해도 차분한 인상을 준다.
내가 말을 빠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혹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내가 말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대답을 해버려 맥이 끊길 것 같기도 하고,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버릴 것만 같았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 한구석에 항상 이런 조바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제시 아이젠버그도 이런 조급함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더 집중하게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말을 천천히 해야 한다. 내가 말을 급하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급해지고, 내 말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신 케이트 블란쳇처럼 여유로운 속도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하면 상대방도 차분하게 내 말에 집중을 할 수 있다.
좋은 목소리 내는 법
말투를 바꿔보기로 결심한 뒤, 혼자서 여러 가지 목소리를 연습해 봤다. 목소리의 높이를 낮추고 싶었기에 처음 며칠간은 무작정 억지로 목소리의 높이를 낮추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목이 살짝 쉰듯한 느낌을 받았다. 목에 무리가 간 것이다.
제대로 된 발성법을 알아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You선생'을 찾아갔다. 유튜브엔 전 세계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24시간 365일 항시대기하고 있다.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수업료는 단 몇 초의 광고 시청시간으로 지불한다. 수업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다른 선생님을 만나볼 수도 있다.
'목소리 발성'이라고 검색하자 수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 두세 개를 골라 시청해 보니 내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내 목이 아팠던 이유는 억지로 '목을 누르며' 말했기 때문이었다.
유 선생님은 좋은 발성은 소리가 목이 아닌 배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프로듀서 박진영의 유명한 유행어, '공기반 소리반'과 비슷했다. 그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리를 내보니 목소리가 깊어진 느낌이 들었고, 목이 편안해졌다. 동굴 목소리를 억지로 내려고 무작정 낮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나오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긴, 동굴은 낮은 게 아니라 '깊은' 거니까.
내 말투 녹음해서 들어보기
내가 말하며 스스로 듣는 목소리는 남이 듣는 목소리와 다르다. 내 말투가 어떤 느낌인지도 당사자인 나 자신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정확한 내 목소리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내 목소리를 외부에서부터 들어보는 것이었다.
먼저 하루에 5분에서 10분씩 내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봤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다시 녹음해 보며 연습했다. 읽은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따로 적어놓은 필사본을 한 두 단락씩 읽으며 연습하니 일석이조였다. 녹음해서 듣는 내 목소리가 언제나 만족스럽진 않지만, 간혹 '어, 이거 괜찮은데?' 싶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발성으로 말을 하는 것이 어렵고 어색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말이 빨라지거나 발음이 뭉개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점을 파악했고 정확한 방향을 알았으니 그대로 연습만 하면 될 것이다. 몇 달 뒤면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