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처음 출근하던 날은 아주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8월이었다. 견학으로도 밟아본 적 없는 국회 앞마당 잔디는 눈이 부신 초록이었다.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아직 직원으로 등록되기 전이라 방문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과 함께 내밀었다. 회관 1층 직원은 신청서에 적힌 방문 호수를 보고 전화를 걸어 '너굴님 오셨습니다. 안내해드려요?'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출입증을 받았다.
검색대를 통과한 뒤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층으로 향했다. 각 의원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복도를 지나 내가 일하게 될 의원실 앞에 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안녕하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는데, 정말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기 앉아서 기다려요"
문 앞에 작은 책상이 비어있었다.
그 뚱한 사람은 보좌관님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주 얼굴을 보고 있다. 쌀쌀맞았던 그때의 태도는 내가 사골처럼 우려먹는 보좌관님의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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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300개의 의원실은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아 친구들이 국회생활을 물으면 300개의 회사를 비교하는 것 같아서 뭐라 명확히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많아봐야 7~9명이 근무하는 의원실은(보좌관 2명, 비서관 2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8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 인턴 1명) 사람이 정말 중요한 곳이었다.
의원 복은 물론 나 같은 인턴비서는 보좌관 복이 제일 중요했다. 그래도 내가 근무했던 의원실은 구성원이 많이 바뀌는 곳은 아니었다. 우리 보좌관님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좌관이 자주 바뀌면 의원이 지랄 맞은 것이고, 비서들이 많이 바뀌면 보좌관이 지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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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됐다. 국정감사 준비 시즌이었다. 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는데, 보좌관님이 던져주신 아이템 하나가 얻어걸려 3대 메이저 신문사 중 한 곳에 크게 났다. 이후 보좌관님들은 다른 방 보좌진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방 국감스타야'
아무리 생각해도 난 보좌관 복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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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루틴이 있는 회사와는 달리 너무 들숙날숙한 일상,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몸보다는 심적으로 지쳤다. 그러다 대선시즌이 됐고, 나는 우리 당 대선후보 캠프로 차출되어 나갔다.
내가 간 캠프는 어쩌다 보니 내 또래 비서들이 모이게 됐는데, 아침부터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 함께하며 가까워지니 오며 가며 인사만 하던 때랑은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들 미생 같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할 말이 많았는데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저쪽에서 자기 의원실 흉을 보면 나도 우리 의원실 흉 볼 거리를 툭- 하나 던져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때부터 금수저냐, 친인척이냐 별소리를 다 들었다. (금수저, 친인척 아님)
하루는 점심에 의원실 연락을 받고 나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들어온 날이었다. 캠프에 나가 고생한다고 보좌관님께 스타벅스 카드를 받았다. 혼자 좋은 음식 먹고 들어온 것이 미안해서 받은 카드로 커피를 샀다.
그때부터 '의원실 회식한다고 캠프 나간 비서까지 부르냐', '의원실에서 커피 쏘라고 카드를 주고 갔냐' 웅성웅성하더니 금수저, 친인척 논란은 갓(God) OO 의원실 사랑받는 너굴비서로 일단락됐다.
가끔 보좌관님들을 만나 '저도 그땐 말하지 못한 힘든 일이 있었어요!'라고 하긴 하는데, 정말 직급이 높은 순으로 정신과 체력을 털린 우리 의원실이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덮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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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내가 국회에서 아주 꿀같은 시간만 보낸 줄 알 것 같다. 사실 나는 국회생활을 하는 동안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더랬다. 그 이야기는 글이 너무 길어져 나중에 써야겠다.
국회를 나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다시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쉽게 경험해보지 못할 일을 해보고, 현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스토리가 생겼다고. 언론매체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아는 국회의원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